그로시 IAEA 총장 "한국 핵잠 도입은 10년에 걸칠 장기과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5일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추진에 대해 “다량의 핵물질이 (IAEA) 사찰망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철통 같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의 초청으로 전날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한 그로시 총장은 이날 조 장관과 만나 한국의 핵잠 도입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
그로시 총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핵잠수함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사찰 사각지대’ 문제를 부각하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잠수함은 장기간 임무를 수행하는 특성상 잠수함에 사용되는 다량의 농축 우라늄이 사찰단의 감시망에서 배제된다”며 “핵잠 도입국은 IAEA와 특별한 절차에 합의해 출항 때 있었던 선박 내 핵물질이 어디론가 은닉되거나 전용되지 않았단 걸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엔 일반 핵 사찰과는 다른 활동과 기술이 수반되며 이 지점에서 한국과 IAEA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현행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의 포괄적 안전조치 협정(CSA) 14조에 따른 절차를 지적한 것이다. 통상 원전의 핵물질은 카메라나 사찰 요원 파견을 통해 상시 감시를 받지만, 장기간 바다 밑을 운항하는 잠수함은 실시간 사찰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규정은 군함 추진용 핵물질을 일시적으로 사찰 대상에서 제외하되, 도입국이 이를 무기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할 별도의 ‘핵연료 안전조치 약정’을 IAEA와 체결해 대체 검증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력 하에 추진하겠다는 결정은 매우 명확히 했으나, 실제 잠수함 건조와 선박 연료 확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규명되어야 할 의문점(question marks)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한·미 양국 간 실무협의를 시작하지 못한 가운데 핵연료 농축도나 공급 방법 등 세부적 로드맵이 마련되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시 총장은 그러면서 “핵잠 도입은 연구·제작·테스트에 상당한 세월이 요구되며, 향후 10여 년에 걸쳐 수많은 단계를 밟아야 하는 장기 과제”란 말도 덧붙였다
다만 그로시 총장은 정부의 비확산 규범 준수 의지에는 신뢰를 보였다. 그는 조 장관이 지난 1일 아시아태평양핵비확산군축네트워크(APLN) 기고를 통해 ‘한국의 핵잠 도입은 철저히 NPT 테두리 내 조치’라고 강조한 것을 언급하며 “조 장관이 비확산 의무를 최고 수준으로 준수할 것이라고 밝힌 점은 매우 명료하고 중요하다”며 “이러한 조치는 다른 국가들이 한국을 핵무기 경쟁에 돌입한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막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 현황도 짚었다. 그로시 총장은 “2009년 이후 사찰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 핵 활동을 살펴봐 왔다”며 “영변뿐 아니라 주변 시설까지 가동되는 등 핵 활동이 확대됐고, 이는 핵탄두를 수십 개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 생산능력이 크게 증대됐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북·러 간 원자력 협력 우려에는 “작년 양국 합의문에는 핵무기가 아닌 민간 원자력 프로젝트만 언급돼 있었다”면서도 “실제 협력이 이뤄지더라도 그 범위가 민간에 국한되기를 희망하지만, 아직 단정하기엔 시기상조”라고 했다.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 과정을 두고는 “모라토리엄(핵 활동 중단) 기간은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신뢰의 문제”라며 “매 그램 단위의 핵물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철저히 추적할 수 있어야 하며, 검증 없는 합의는 한낱 종잇장”이라고 평가했다.
2027년 임기가 시작되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거 입후보 의사도 재확인했다. 그는 “현재 유엔은 주요 기여국인 미국조차 분담금 지급을 제한하는 등 대대적인 신뢰도 위기에 직면했다. 국제 분쟁에 개입해 해결책을 마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날 그로시 총장은 조현 장관과 만나 핵잠 도입과 관련한 양측의 논의를 시작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은 NPT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고 있으며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해온 국가로서 핵추진 잠수함 도입 과정에서도 IAEA와 투명하고 긴밀하게 소통해 나갈 것”을 재확인하며 IAEA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한국이 그간 충실히 이행해온 비확산 및 안전조치 의무들을 지속 준수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자”고 호응했다고 한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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