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직면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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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실 기자]
대략 3년 전, 큰맘 먹고 집 전체 인테리어를 한 적이 있다. 기둥만 빼고 거의 다 철거하고, 주방 구조까지 바꾸는 대공사였다. 공사가 끝난 뒤 가장 먼저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카톡방에 날짜를 정하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여행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예의없다"는 답톡이 날아왔다.
순간 머리가 띵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서둘러 사과 메시지를 남기고 그 방을 나왔다. 한참이 지난 시간에 페이스북 검색을 해보고는 나를 차단했다는 걸 알았다. 차. 단. 그 단어가 떠오르자 더 애써 이유를 묻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예의없다'는 네 음절은 손톱 밑에 박힌 가시 같아서,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하게 나를 찔렀다.
그러다 용기를 낸 건 6월 13일, 방탄소년단의 데뷔 기념일이었다. 끊임없이 되감기는 질문을 품고 스스로를 찌르며 사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 기획사의 보호도 없이, 언제 데뷔할지조차 모른 채 무대를 기다리던 방탄소년단의 시작을 떠올렸다.
그들의 용기를 생각하며 지인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다. "오랜만이에요. 페이스북에서도 차단하신 것 같은데, 제가 뭐 섭섭하게 해드린 게 있을까요?" 잠시 기다렸지만 카톡의 1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자를 보냈다. 역시 답이 없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곧 짧은 답장이 왔다. "정확히 너의 이런 성향이 싫어. 카톡하고 문자하고 바로 전화하고. 전화할 필요 없고 앞으로는 안 보고 살면 좋겠다." 문자를 읽는 순간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이상할 만큼 오래 내 안에 남았다.
처음에는 그저 차갑고 잔인한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단호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그렇게 불편한 사람이었을까. 억울함과 수치심이 뒤섞인 채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자꾸 되뇌었다. 감정이 밀려오는 빈도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한 번 밀려올 때의 강도는 여전히 나를 휘저었다.
그때는 몰랐다. 나를 오래 아프게 한 것은 그 사람의 거절 자체만이 아니라, 그 말 속에서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내 자신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는 나, 나의 진심은 결국 이해받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나.
내가 본 것은 단지 상처가 아니라 그림자였다.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연약함, 거절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나의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이거나 피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음악 속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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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곡 정보. |
| ⓒ 네이버 바이브 |
그러나 < Persona >에서는 그 균열을 두려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 곡은 자아의 혼란을 말하는 노래이면서 동시에, 그 혼란까지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은 더 통합된 존재, 더 온기 있는 존재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노래한다.
이어지는 < Interlude : Shadow >는 < Persona >가 던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더 깊고 어두운 자리로 끌고 간다. 이 곡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더 크게 빛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욕망의 뒤편에서 함께 자라나는 불안과 공포 또한 정직하게 드러낸다.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말처럼, 성공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두려움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 Black Swan >은 그 모든 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가장 깊은 공포를 보여준다. 이 곡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더 이상 외부의 비난이나 성공의 압박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가장 오래 살아 있게 했던 것이 더 이상 자신을 떨리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곧 예술가로서의 내면이 텅 비어 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중심에 놓인다.
결국 < MAP OF THE SOUL : 7 >은 자아를 묻는 데서 출발해, 욕망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끝내 상실의 공포를 응시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내면 서사를 완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에서 말하는 그림자는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끝내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지를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처럼 느껴진다.
함께 살아가는 일
이렇게 보면 방탄소년단의 진짜 세계관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배척받던 시절에는 상처의 형태로, 성공한 이후에는 상실의 형태로, 그리고 세계화의 한가운데에서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형태로 그림자는 계속 돌아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림자를 없애 버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음악으로 말하고 선택으로 드러내며 자기 삶의 일부로 끌어안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제 나의 그림자가 무엇인지 조금은 안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 나의 방식이 언제나 진심으로 이해받기를 바라는 기대. 나는 그것이 내 그림자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어떤 말 앞에서 흔들리고, 어떤 관계의 끝 앞에서 오래 아파하며, 어떤 순간에는 다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로 돌아간다.
결국 그림자는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가야 할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것은 때로 나를 아프게 하고, 때로 나를 부끄럽게 하지만, 동시에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은 자기 파괴가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반환점이 된다. 어쩌면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이런 불편한 진실 앞에서 끝내 도망가지 않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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