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 유채꽃밭에서 만난 봄바다

김종신 2026. 4. 1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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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성심원 봄소풍... 어르신들과 함께 떠난 따뜻한 여행길

[김종신 기자]

산청 성심원 어르신들과 포항으로 봄소풍을 다녀왔습니다(관련 기사 : 산청성심원 봄소풍, 포항을 먼저 보고 왔습니다). 지난 14일 아침, 공기는 아직 서늘했지만 가정사 예수상 앞 분위기는 일찍부터 들떠 있었습니다. 바다를 함께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출발 하루 전에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진 한 어르신이 끝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딸과 같이 가고 싶다던 바람도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밝은 아침 한쪽에 조용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는 유의배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기도도 이어졌습니다. 안전한 여행을 바라는 짧은 기도가 버스 안 공기를 먼저 다독였습니다.

포항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먼저 풀린 웃음

버스가 움직이자 분위기는 금세 풀렸습니다. 동숙의 노래 같은 대중가요가 잔잔하게 흐르고, 어르신들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말이요~" 하고 시작한 말이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번졌습니다. 컬컬한 목소리도 이날은 더 정겹게 들렸습니다. 한 분이 말을 꺼내면 옆자리에서 맞장구가 붙고, 다시 다른 기억이 따라 나왔습니다. 버스 안이 이미 여행지 같았습니다.

TV에서는 MBN <현역가왕>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가수 김태연이 "영원한 동반자여~" 하고 노래를 부르자 몇몇 어르신들은 고개를 살짝 흔들고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췄습니다. 크게 나서지는 않아도 흥은 몸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그 모습이 오래 눈에 남았습니다.
 산청 성심원 봄소풍, 포항 호미곶 유채꽃밭에서 만난 봄바다
ⓒ 김종신
점심은 죽도시장에서 맞았습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바다 냄새와 사람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수족관 앞에서는 대게를 보며 웃음이 먼저 터졌습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한 상 가득 오른 회가 다시 말을 불렀습니다.

"저녁도 여기서 먹자."
"한잔 더 먹고 천천히 가보자."
"네 이웃의 물회를 탐하지 마라. 회가 많다."

식당 안은 몇 번이나 웃음으로 흔들렸습니다.

바다 곁에 남은 봄 풍경

점심을 먹고 어시장에서 건어물과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산 뒤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호미해안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달렸습니다. 차창 너머로 바다가 한동안 곁을 따라왔습니다. 물빛은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제 빛을 잃지 않았고, 해안선은 길게 이어졌습니다.

호미곶에 닿자 노란 유채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꽃밭은 바람을 따라 한꺼번에 출렁였고, 그 뒤로는 바다가 길게 열려 있었습니다. 꽃 가까이 다가가는 걸음은 느렸지만 표정은 빠르게 밝아졌습니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꽃밭 앞에 나란히 서고, 다시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보행이 힘겨운 아흔의 어르신을 위해 실버카를 몇 번이나 관광버스에 싣고 내리는 손길도 있었습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쪽을 모두가 먼저 택한 날이었습니다. 산골에서 올라온 어르신들에게 그 수평선은 오래 바라보게 하는 풍경이었습니다.

상생의 손 앞에서는 발걸음이 한 번 더 머물렀습니다. 바다 위 손과 육지의 손이 마주 보는 풍경은 호미곶을 대표하는 장면입니다. 그날에는 서로 기대어 살아온 시간처럼도 보였습니다. 바람은 생각보다 셌습니다. 옷깃이 자주 흔들렸고 말소리도 바람결에 조금씩 흩어졌습니다. 오래 서 있기보다 잠깐 걷고, 잠깐 쉬고, 다시 움직이는 흐름이 더 잘 맞았습니다.
 산청 성심원 봄소풍, 포항 호미곶 유채꽃밭에서 만난 봄바다
ⓒ 김종신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에서는 걸음의 속도가 한 번 더 느려졌습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라고 적힌 나무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풍경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양옆으로는 목조 건물과 흰 벽, 푸른 지붕이 이어졌고, 골목 바닥은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지만 분위기는 오래 묵은 시간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목조 건물 아래 낮게 드리운 처마와 벤치 하나에도 시간이 켜켜이 쌓인 듯했습니다. 골목 끝 계단은 생각보다 길고 가팔랐습니다. 거리 가운데 구룡포공원으로 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길고 가팔랐습니다. 한 어르신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난간을 잡고 천천히 한 칸씩 내려오셨습니다. 곁에서는 최동인 선생님이 보폭을 늦추며 함께 걸었습니다.

하루가 천천히 접히던 시간

저녁은 고령 쪽 식당에서 맞았습니다. 종일 바다 바람과 골목을 지나온 뒤라 따뜻한 국물이 먼저 반가웠습니다. 테이블 위 냄비에서는 국물이 부글부글 끓었고, 얇게 썬 고기는 거품 사이로 익어 갔습니다. 팽이버섯과 청경채, 버섯과 채소가 국물 안에서 천천히 숨을 바꿨습니다. 곁들여 나온 잡채는 참기름 윤기가 은근했고, 나물과 김치, 생선구이는 소박했지만 손이 자주 가는 맛이었습니다. 솥밥 뚜껑을 열자 흰 쌀밥 사이로 검은콩과 호박, 은행이 보였습니다. 바다를 보고 돌아온 날의 저녁답게 한 상은 화려하기보다 단정했고, 몸을 먼저 쉬게 하는 쪽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창밖은 어느새 저녁빛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산 능선은 어둑하게 겹쳤고, 들판과 물가의 윤곽은 천천히 흐려졌습니다. 멀리 켜진 불빛 몇 점이 먼저 밤을 불러오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버스 창에 스치는 풍경은 또렷하게 붙잡히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날의 끝처럼 보였습니다.

환하던 바다와 노랗던 유채꽃, 나무문 안쪽의 골목과 저녁 식탁의 온기가 한 장면씩 뒤로 밀려났습니다. 성심원 도착을 앞두고 유의배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마침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에도 차 안의 온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나 이야기꾼 해찬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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