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장면도 잊을 수 없는 4월 16일 그 날

김효숙 2026. 4. 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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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를 읽고

[김효숙 기자]

두툼한 털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냉기가 스미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연초록 잎사귀가 점점 짙푸르러진다. 다채로운 꽃의 향연이 날마다 벌어진다. 햇살을 받은 꽃잎과 나뭇가지는 그 자체로 눈부시다. 하지만, 이 눈부신 봄 잔치에 가슴이 미어져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다.

올해 초 20년 지기 친구가 세월호를 다룬 소설이라며 김탁환의 <거짓말이다>를 건넸다. 처음엔 망설였다. 그날의 아픔과 슬픔을 다시 들춰내기 싫었지만, 꽃이 흐드러지게 필수록 자꾸 마음이 갔다. 4월이 시작되는 날 용기 내어 책을 펼쳤다.

잊을 수 없는 그날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4년 4월 21일부터 7월 10일까지 맹골수도에서 선체 수색과 실종자 수습에 참여한 잠수사 나경수(37세)입니다. 형법 제268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류창대(60세) 잠수사를 위하여 탄원서를 씁니다. -11쪽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감정을 잡아끄는 구절이 하나도 없는데 가슴이 턱 막혀 책을 덮어 버렸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아침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생협에서 활동가로 일하던 나는 그날 오전 조합원들과 수세미를 뜨고 있었다. 누구는 촘촘하게 또 누구는 성글게 수세미를 떴다. 서로의 작품을 보며 뜨개질하면서도 성격이 나온다며 웃음꽃이 한창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진도 앞 바다에서 큰 배가 뒤집혔대요."

그런데 곧,

"전원 구출했다네요."

우리는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수세미 뜨느라 여념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사의 발표는 모두 거짓이었다. 허울 좋은 '골든 타임'에 국민이 모두 속았다.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배가 뒤집혀 있고 그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이들이 300명이 넘었다. 우리는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며 구조를 바랐지만, 정부는 눈속임과 언론을 통제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표지
ⓒ 북스피어
세상에 아깝지 않은 목숨은 없겠지만 그날 세월호라는 여객선에 탄 이들 대다수는 수학여행 길에 오른 내 아이들 또래의 고등학생이었다. 내 아이가, 내 아이 친구들이 그 배에 탈 수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간다는 설렘에 들떴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라는 선내 방송을 믿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구조를 기다리다 배가 침몰하면서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09년 1월 해운법 시행규칙을 고쳐 낡은 배를 30년까지 운항하도록 허락했다.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출발을 허가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보인 이상 신호를 관제 센터에서 파악하지 못했다. 출동한 해경은 승객을 구출하지 않고 그저 배 주위를 맴돌았다.

배가 가라앉고 가족은 오열했다. 더 이상 구조의 희망은 없었다. 정부는 희생자를 수습하기 위해 잠수사를 파견했다. 잠수사들의 사고 수습 과정은 지난했다. 국민들은 수습 과정을 알지 못했기에 그저 빨리 희생자를 가족의 품에 돌려주지 않는 것에만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다 잠수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는 2014년 봄 여객선 침몰 후 맹골수도에서 실종자 수습을 위해 일했던 잠수사 나경수의 눈으로 이끌어간다.

잠수사들은 하루 한 번 잠수하고 쉬어야 하지만 그들은 두 번 세 번도 기회가 닿으면 선내에 들어가 실종자의 유해를 모시고 나오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해경은 교대로 일하며 재충전했지만, 잠수사들은 바지선에 머물며 쉬는 날은커녕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바지선엔 그들의 망가진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사 한 명 없었다.

인간된 도리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밤낮없이 선내에 흩어진 시신을 찾아 한 명 한 명 꼭 끌어안고 모시고 나왔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건 잠수병과 비난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까지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그들 대부분 몸과 마음이 상해 사회에 적응하고 살기조차 어려워진다. 동료들을 다독이고 격려하며 팀을 이끌던 류창대 잠수사는 동료 잠수사의 죽음으로 재판받는다. 책 처음에서, 잠수사는 입이 없다던 나경수 잠수사는 결국 입을 열어 재판장에게 탄원서를 보내 맹골수도의 힘겨웠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너무도 사실과 닮아 꼭꼭 씹어 읽지 않으면 넘기기 어려웠다. 정부는 희생자와 유가족, 잠수사에게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광장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며 촛불을 들고 목청껏 외쳤지만, 지금까지도 그 거짓말은 낱낱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돌아가신 8인을 기리는 51주기 추모제가 있었다. 지난 겨울 사형수 부인 중 한 명인 강순희 여사를 인터뷰하고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니다>를 출간한 유시민 작가도 함께했다. 유 작가는 그 자리에서 애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껴안은 우리는 억울하게 떠난 이들을 추모하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애도하는 시간을 온전히 갖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거짓말이다>를 펼쳐 읽으려는데, '애도'라는 두 글자가 가슴에 콱 박혀서 한참 움직일 수 없었다. 유가족과 잠수사들, 봉사자들, 정부와 맞서 싸운 변호사들 그리고 그 아픔을 오래 오래 지켜본 국민이 모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우리는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정작 우리를 위해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책 속에서 나경수 잠수사는 몸과 마음을 다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했지만, 유족들을 만나고 재판에 참여하며 다시 희망의 끈을 잡는다. 하지만 현실에선 책 속 모델이 된 김관홍 잠수사는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봄이 오니 꽃이 핀다.
꽃이 피니 슬프다.
잔인하구나, 이 봄!
-112쪽

지난주에 내린 비로 꽃잎이 흩날리더니 곳곳에 꽃무덤이 가득하다. 찬란해서 더 아픈 봄이다. 잊어서는 안 되지만 아픔을 꾹꾹 눌러서도 안 된다. 떠난 이를 보내며 눈물 흘렸던 만큼 남아 있는 우리를 위해서도 울어주자.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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