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논란’ 물러서지 않는 李…1973년 ‘오일쇼크’ 참고했나

오현석 2026. 4.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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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 겸 제5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전쟁 당사국들도 보편적 인권 보호의 원칙,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세계가 간절히 바라는 평화를 향해서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디뎌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특정 국가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최근 이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떨어뜨리는 영상을 공유하며 시작한 ‘국제 인권 보호’ 메시지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새벽엔 “오목 좀 둔다고 (바둑) 명인전 훈수하는 분들, 훈수까지는 좋은데 판에 엎어지시면 안 된다”며 “집안싸움 집착하다 지구 침공 화성인 편들 태세인데, 일단 지구부터 구하고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X에 적었다. 자신의 X 메시지를 ‘외교 사고’로 규정하고 연일 비판하는 야당에 맞대응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에도 “사욕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자들을 매국노라 부른다”며 “심지어 국익을 포함한 공익추구가 사명인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도 매국 행위는 버젓이 벌어진다”라고도 지적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이 대통령이 국가 간 관계를 두고 정쟁이 벌어지는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국제무대에선 글로벌 공급망과 각국의 이해관계가 치밀하게 얽혀 있는데, 야권에선 이를 너무 쉽게 정쟁의 소재로 삼는다”며 “한·미 관세 협상 때부터 그런 불만이 누적됐다”고 말했다.

야권의 비판은 이날도 계속됐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그 참을 수 없는 손가락의 가벼움, 언제까지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돼야 하나”라며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게시글은 외교·안보 라인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서 신중하게 작성하고 관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도대체 왜 자정을 넘긴 시각에 이런 트윗을 올려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날을 세웠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회의에서 참석자들과 토론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이 대통령이 민감한 시점에 이스라엘 인권 문제를 거론한 배경을 놓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여권 일각에선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제자문회의에서 박원주 국가경제자문회의 성장경제분과장의 발표 내용을 주목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난 박 분과장은 회의에서 “1973년에 우리나라는 서방과 한 몸이면서도 친(親)아랍 성명을 발표했다”며 “동맹 안에서도 에너지는 실용적 예외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4차 중동 전쟁으로 ‘오일 쇼크’가 닥친 1973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른바 ‘아랍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이스라엘을 겨냥해 “1967년 당시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하라”고 촉구한 걸 거론한 것이다.

이란 정부와의 물밑 협의도 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외교부는 지난 9일 조현 장관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부 장관 간 통화에서 중동 특사 파견에 상호 교감한 지 하루 만인 10일 곧장 정병하 특사를 현지에 급파했다. 정 특사는 아라그치 장관 등과 만나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된 국적선 26척 통항 문제를 협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위군 영상을 처음 올린 시점은 10일 오전이었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인사들은 “보편적 인권 자체가 이 대통령의 핵심 가치”라는 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정계 입문 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전쟁 속 폐허가 된 마을에서 오열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부자(父子)의 모습이 담긴 보도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을 정도로 ‘인권’에 진심이었다. 이 대통령은 훗날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잔인함에 대한 분노를,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한없는 연민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기사를 찢어 지갑에 집어넣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꺼내 보았다”(2006년 1월 2일, 블로그)고 회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샤나나 구스마웅 동티모르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구스마움 총리는 인도네시아 강제 합병 시기 동티모르민족해방군 총사령관을 지낸 독립 영웅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APEC 정상회의에서 인도네시아군에 의한 동티모르 유혈사태를 공론화했다. 연합뉴스

2021년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3국 내 미군 기지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택 미군기지가 위치한 경기도의 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난민 문제도 국제적인 숙제가 되고 있다”며 “인권과 세계평화, 성별·종교·사상 등에 대한 차별금지, 생명존중, 폭력과 억압으로 유린되는 기본권 보호란 원칙을 지키며 공동체 의식이 발휘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과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같은 국제 무대에서 주요 교역국인 인도네시아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동티모르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으냐”며 “이 대통령이 구상하는 외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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