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4년의 성과와 한계… 신현송 한은은 더 어렵다
물가는 잡았지만 성장률은 둔화
가계부채 낮췄지만 환율 불안도
금리 한계 확인, 구조개혁 과제
신현송호, 복합위기 시험대 올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오는 20일 퇴임한다. ‘미스터 오지랖’이라 불리며 사회구조 개혁을 강조해온 이 총재의 재임 기간 4년은 고물가·고금리, 성장 둔화, 환율 불안이 겹친 복합위기 속에서 중앙은행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드러낸 시간이었다. 물가 안정에는 성과를 냈지만 금리만으로는 성장·금융안정·환율이 얽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 총재의 뒤를 이을 신현송 총재는 금리 너머의 시장과 금융시스템 위험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6명의 총재 재임 기간 중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직후 재임한 전철환 총재가 3.7%로 가장 높았다. 이후 박승·이성태·김중수 총재를 거치며 점차 낮아졌고, 이주열 총재 때는 1%대 초반까지 내려가며 물가 안정 흐름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 총재 재임기의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3.3%로 다시 높아졌다. 숫자만 보면 지난 30년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다만 이는 임기 초반의 고물가 충격이 반영된 평균치다. 흐름으로 보면 이 총재는 급등하던 물가를 점차 낮춰 임기 말에는 2%대 초반 수준으로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확대와 공급망 충격, 전쟁 여파가 겹치며 물가가 급등하던 시기에 취임했다. 당시 한국 경제의 최우선 과제는 성장보다 물가였다. 이 총재 취임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에 육박했고, 이후 같은 해 여름에는 6%대까지 치솟았다. 한은은 곧바로 긴축에 나섰다. 이 총재가 당시 꺼낸 카드는 한은 사상 첫 ‘빅스텝’이었다. 2022년 7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린 데 이어 10월에도 같은 폭의 인상을 단행하며 기준금리를 3.50%까지 끌어올렸다. 약 9개월 만에 2% 포인트를 올린 강한 대응이었다. 그 결과 치솟던 물가는 점차 둔화해 안정권에 진입했다.

가계부채를 낮춘 것도 이 총재 재임기의 대표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과도한 부채가 거시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실제로 이 총재 취임 전인 2021년 3분기 99.1%였던 경제성장률(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89.4%까지 낮아졌다.
다만 물가를 잡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도 생겼다. 고금리는 내수와 투자에 부담을 주며 성장률 둔화로 이어졌다. 실질 GDP 성장률은 2022년 2.6%에서 2023년 1.4%로 낮아졌고, 2024년 2.0%로 반등했지만 다시 지난해 1.0%로 떨어졌다. 다만 한은이 금리 인하로 곧바로 방향을 틀기에는 제약이 컸다. 금리를 너무 빨리 낮출 경우 집값과 대출이 다시 자극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따라붙었다.
환율도 이 총재 재임기의 부담 요인이었다. 원·달러 환율은 취임 당시 1200원대에서 재임 말 1500원대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오르며 큰 변동성을 보였다. 다만 환율은 미국 통화정책과 달러 강세, 국제유가, 지정학적 리스크, 외국인 자금 흐름이 함께 작용한다. 환율 불안은 이창용 체제의 실책이라기보다 통화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대목에 가깝다.
이 총재가 임기 내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금리로 물가를 잡을 수는 있어도 성장률과 생산성, 잠재성장률까지 끌어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통화정책을 넘어 노동과 교육, 부동산 등으로까지 확장됐다. 금리정책만으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을 풀 수 없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인식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차기 신현송 체제의 부담도 크다. 고환율과 저성장이 겹친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용할지가 첫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금리를 낮춰 경기를 살리자니 원화 약세와 자산시장 불안이 다시 커질 수 있다. 반면 긴축 기조를 길게 유지하면 내수와 투자 위축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가와 환율, 주택시장, 성장 흐름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만큼 차기 한은은 기준금리 결정 자체보다 그 파급효과를 더 정교하게 따져야 하는 국면에 놓이게 됐다. 이전처럼 물가만 보고, 혹은 성장만 보고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뜻이다.
신 후보자도 이런 현실 인식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한은이 직면한 가장 큰 통화정책 리스크로 중동 전쟁 이후 커진 물가 상승 압력을 꼽았다. 물가 안정을 우선하되 경기와 금융안정도 함께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차기 한은이 출범 직후 금리 완화 쪽으로 방향을 틀기보다 물가와 환율 흐름을 먼저 살피며 신중하게 움직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신 후보자는 한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3대 현안으로 중동 리스크와 부문 간 양극화, 높은 주택가격과 가계부채를 제시했다. 특히 자영업자와 한계기업, 지방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취약 부문의 부실 확대 가능성을 우려하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임기 초 과제로 거시경제 안정과 원화 국제화, 디지털 금융 혁신에 맞춘 미래 통화 생태계 구축, 구조개혁 과제 분석 등을 제시했다. 물가와 성장 대응에만 머무르지 않고 통화정책의 외연을 금융 인프라와 구조 문제까지 넓게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5일 열리는 인사청문회에서는 이런 정책 구상과 함께 최근 불거진 이해충돌·재산 관련 논란도 함께 검증대에 오를 전망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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