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항행의 자유 배신…시진핑이 따라할 빌미 줬다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이 자유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13일(현지시간)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 작전이다. 이런 미국의 ‘변심’이 국제 규범이 아닌 힘에 의해 좌우되는 해상 질서의 변질로 이어질 경우 궁극적으로 수출입 대부분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한국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 해군의 대이란 해상 봉쇄가 “오전 10시 정각부터 시작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 1척과 구축함 11척을 포함해 최소 15~16척의 군함을 배치했다. 미국은 이란으로 가거나 이란에서 출발한 모든 선박, 이란에 통행료를 지불한 선박 등은 국적과 관계없이 단속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전날 34척의 선박이 호르무즈를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압박이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여는 효과를 보고 있다는 취지인데, 실제로는 이런 작전이 항행의 자유라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항행의 자유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확립된 규범이며, 미국 역시 이를 존중해 왔다. 미국은 그간 이런 원칙을 대중 압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는데, 2015년부터 남중국해에서 이어오고 있는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는 이런 기조를 뒤집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란을 경유하지 않는 선박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보편적으로 적용받는 통항권을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제한하는 것 자체가 항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호르무즈 역봉쇄 작전은 이란에 대한 일종의 제재로 볼 여지가 있는데, 국내외적으로 이에 필요한 법적 절차가 선행되지 않았다”며 “미국의 양면적 태도를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고 짚었다.
향후 중국이 비슷한 식의 해양 검문에 나서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중국 역시 특정 국가의 불법적 활동이 의심된다는 명목으로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 선박 운항을 제한할 가능성이다.
강대국들이 힘으로 지배하는 ‘중세식 바다 질서’는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지하는 한국에는 큰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남중국해·대만해협 등 한반도 인근에 ‘플래시 포인트’(충돌 지역)가 있다는 점도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 우려를 키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법치주의가 아닌 투박한 힘의 논리가 우선시될 경우 한국은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유사한 상황에 놓인 국가들과 협의를 통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유엔 등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이란에 총 50만 달러(약 7억40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레바논에 총 200만 달러(약 29억40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데 이은 중동전쟁 개시 뒤 정부 차원의 두 번째 인도적 지원이다.
심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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