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원래 트럼프 전공인데 반격 만만찮네… 美-이란 ‘밈의 전쟁’

임성수 2026. 4. 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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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은 지난 2월 개전 이후 소셜미디어에 서로를 조롱하는 ‘밈(Meme)’을 게시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짐바브웨 주재 이란 대사관은 지난 7일 오후 8시를 ‘문명 말살’의 데드라인으로 예고한 트럼프에게 시간 변경을 요구하며 비꼬았다. 엑스 캡처

석기시대 협박에 ‘원시인 트럼프 밈’
이란, 주재국 반발 않는 대사관 이용
미국 겨냥 소셜미디어 글 집중 게시
NYT “젊은 세대에 영향 미치려는 것”

“오후 8시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또는 가능하다면 오전 1시에서 2시로 변경해줄 수 있나요? 이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I.E.Z.”

짐바브웨 주재 이란 대사관이 지난 6일(현지시간) 엑스 계정에 올린 글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이란에 대한 ‘문명 말살’을 경고하며 데드라인을 “화요일(7일) 오후 8시”라고 올리자 이를 비꼰 것이다. 글 마지막 부분에 짐바브웨 주재 이란 대사관이라는 뜻의 약자 ‘I.E.Z’까지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 게시물마다 자신의 이름 약자 ‘D.J.T.’를 넣는 습관까지 패러디한 것이다. 이 게시물은 조회수가 660만회를 넘었다. 해당 대사관은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요구하자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글을 올리며 응수하기도 했다.

지난 2월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온라인에서도 미국과 이란 간의 ‘밈 전쟁(Meme Wars·인터넷 유행 게시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와 백악관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을 협박하고 조롱하는 데 맞서 해외 주재 이란 대사관들은 엑스를 활용해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 주재 이란 대사관은 자국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원시인으로 묘사한 인공지능(AI) 사진을 배포하고 있다. 엑스 캡처


태국 주재 이란 대사관은 트럼프가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위협한 데 대해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문명을 이어온 나라”라고 반박하며 트럼프를 원시인으로 묘사한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를 첨부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 10일 트럼프를 조롱하는 해당 계정들이 공식 이란 정부 계정에 부여되는 인증 배지는 없지만 모두 이란 대사관이 운영하는 진짜 계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외교적 소통 관행을 무너뜨렸고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조롱과 협박은 원래 트럼프의 전공 분야다. 트럼프는 전쟁 이후 이란을 향해 “지옥문을 열겠다” “석기 시대로 보내겠다” “문명을 없애버리겠다”고 말해왔다. “빌어먹을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라”라며 욕설을 남기기도 했다. 백악관은 소셜미디어에 할리우드 액션 영화 장면과 이란 공습을 편집해 합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AI를 이용해 이란 정권을 볼링 핀으로 묘사하고 미군이 이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골프 게임 영상에서 골프공이 날아가다 마지막에 실제 미군 미사일 폭격 영상으로 바뀌는 식의 영상도 올렸다. 참혹한 전쟁을 가벼운 이미지로 소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애나 켈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런 영상에 대한 입장을 묻는 FP에 “주류 언론은 미군의 놀라운 성과를 부각시킨 것에 대해 우리가 사과하기를 원하지만 백악관은 이란의 탄도 미사일과 생산 시설, 핵무기 보유 야망이 실시간으로 파괴되는 수많은 사례를 계속해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트럼프식 온라인 ‘전쟁’은 이란의 만만치 않은 반격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란이 AI와 소셜미디어 등 신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 대중을 향해 트럼프 못지않은 선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주재 이란 대사관들이 미국을 공격하는 게시물들을 부지런히 올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이란 대사관은 옛 소련 해체를 업적으로 말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나는 미국을 파괴했다”고 답하는 트럼프 그림을 올렸다. 엑스 캡처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재 이란 대사관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해임한 여러 군 고위 인사들의 사진 위에 X 표시를 덧씌운 이미지와 함께 “정권 교체는 이미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썼다. 트럼프가 이란 지휘부를 제거해 정권교체를 했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친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와 악수를 하며 “나는 소련을 파괴했다”고 하자 트럼프가 “나는 미국을 파괴했다”고 하는 ‘밈’도 게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 당국이 주재국 정부로부터 부정적 반발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현지 여론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대사관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나서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레고’ 모양의 광대로 그려내는 식의 인공지능(AI) 영상을 배포하고 있다. 틱톡 캡처


이란 대사관뿐 아니라 이란 지지 단체로 보이는 이들도 온라인 선전전을 이끌고 있다. 이란을 지지하는 ‘익스플로시브 미디어’라는 단체는 엑스에 계정을 만들어 트럼프와 이란군을 ‘레고’ 모양의 노란 인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쟁 중인 지난 3월에 계정이 생성됐지만 벌써 팔로워는 5만명이 넘는다. 하루에도 트럼프 행정부를 비난하는 영상이 수차례 올라온다.

2분 45초 분량의 한 영상에서는 레고 모양의 트럼프가 침대에 누운 채 트루스소셜에 “이란의 모든 군 함대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적는다. 이를 본 이란 해군 지휘관은 웃음을 터뜨린 뒤 기뢰와 미사일, 드론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미 해군 함정을 폭파한다. 다른 영상에서도 이란 미사일이 미군 기지를 타격하고 해협의 항행이 멈추자 트럼프가 점점 격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상 설명에는 “트럼프는 전 세계를 결집해 이란에 맞서려 했지만 결국 홀로 남겨졌다”고 적혀 있다.

J D 밴스 부통령과 종전 협상 담판에 나섰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프 이란 국회의장도 소셜미디어에서 ‘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공군기지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미군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사진을 올리며 “아주 경미한 손상만 입었다”는 글과 함께 손가락을 꼬집는 모양의 이모티콘 3개를 덧붙였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도록 트럼프식의 ‘밈’을 게시한 것이다.

이란의 온라인 선전전은 미국을 향한 조롱과 비난이 대부분이지만 미군의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오폭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의 전쟁 범죄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진지한 규탄을 하기도 했다. NYT는 “이란이 정보전을 펼치기 위해 온라인 세대의 언어를 차용하고 있다”며 “이란 내 반체제 세력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나 서방과의 수십 년에 걸친 지정학적 긴장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트렌드에는 매우 민감한 젊은 세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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