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토모 150억 vs 백남준 6억6000만원… 이상한 미술시장

서울옥션의 지난달 경매에서 일본 작가 나라 요시토모(67)의 ‘낫싱 어바웃 잇’(2016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 194×162㎝)이 150억원에 낙찰되며 국내 경매 시장 최고가를 갈아 치웠다. 작가 특유의 치켜뜬 큰 눈매의 소녀를 담은 대작이다.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저항과 순수, 그리고 현대인의 근원적 고독을 상징하는 소녀 이미지로 해석되며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았다.

문득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작품 가격은 지금 미술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궁금했다. 초기 플렉서스 운동 시절 피아노를 부수고 넥타이를 자르는 행위 예술은 좀 어렵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한 ‘TV 로봇’ 연작은 ‘로베스 피에르’ ‘장영실’ ‘콜럼버스’ 등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붙이기도 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지 않나.

가격은 참혹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경매 최고가가 10억원을 넘지 못했다. 2017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당시 환율로 6억6000만원에 낙찰된 TV 로봇 ‘수사슴’(1996)이 역대 최고가였다. 2018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팔린 ‘알렉산더 대왕’의 가격도 6억2000만원(454만 홍콩달러, 수수료 포함)이었다. 수수료(15∼27%)를 빼면 낙찰 가격은 더 낮아진다. 2014년 백남준이 세계적인 메가 갤러리 가고시안의 전속이 된 뉴스가 나오면서 거래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도 이랬다.

물론 경매에 나오지 않아 공개되지 않은 거래도 있다. 미술계에서는 2022년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이 소장품 1호로 구입한 초대형 비디오 조각 ‘거북’이 30억원으로 역대 최고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내 1층 전시 공간 APMA캐비닛. 미국 갤러리 가고시안이 국내 처음으로 백남준 특별전 ‘백남준: 리와인드/리피트(Rewind/Repeat)’를 열었다. 가고시안은 국내 지점이 없어 2024년 9월부터 이곳을 대관해 봄·가을 두 번 전시를 연다. 가고시안의 아시아 담당 디렉터 닉 시무노비치는 “백남준은 미래를 예견하는 선지자적인 작가였다. 그가 말한 전자 고속도로 개념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스마트폰, 줌, 채팅 같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시대를 예고한 것”이라며 백남준의 미술사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날은 백남준 사후 에스테이트(유산관리재단)를 만든 일본인 기업가인 조카 하쿠다 켄도 함께했다. 백남준 작품에 대한 저작권 소유자인 그는 “한국 미술계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세간의 인상을 날려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시종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전시된 작품 10여점을 한 점 한 점 돌아가며 설명했다.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 앞에서는 샬롯 무어만과의 일화를 전했다. 음악가이자 퍼포먼스 작가인 무어만은 백남준의 예술 작업 파트너로 1969년 뉴욕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 전시에서 이 작품을 처음 착용하고 대중 앞에서 연주했다. 그때 하쿠다는 무어만의 부탁으로 연주에 앞서 TV 브라 착용을 도왔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삼촌 백남준은 격노했다. “어떻게 그 어린 애 앞에서 가슴을 노출할 수 있냐”고 했다는데, 조카를 걱정하는 삼촌의 마음이 담겼다. 하쿠다는 그날 갤러리에서 두 사람이 마치 고함지르기 시합(the yelling match)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미술계는 이번 가고시안의 백남준 특별전이 형편없이 저평가된 백남준의 작품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마르셀 뒤샹이 캔버스를 찢었다면, 백남준은 TV 화면을 캔버스로 삼아 시공간을 재구성했다.”
20세기 미술사에서 백남준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 비유로 요약할 수 있다. 뒤샹,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요셉 보이스와 함께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빅5’에 꼽힌다. 전시 이력 자체도 역사다. 생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2000년)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사후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 (2019~2021년)을 시작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으로 이어진 순회전을 했다. 미대 필독서인 잰슨의 ‘서양미술사’에도 20세기 후반 미술을 설명하는 작가로 거명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를 예고한 백남준이 사후 8년이 지난 2014년 가고시안의 전속이 된 이유일 것이다.
크리스티 코리아 이학준 대표는 백남준을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가격이 가장 차이가 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므로) 미술관에서 정책적으로 구입하지만 대중적인 수요는 여러 이유로 약하다”며 수요 측면에서의 제약이 가격 상승을 막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백남준의 TV 로봇 등은 초기 브라운관 TV의 CRT 모니터를 사용해 제작한 ‘비디오 조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이 불룩한 CRT 모니터가 단종됨에 따라 평면 디스플레이로 교체되는 데 따른 ‘원본성’에 대한 불안감, 고장이 났을 때 수리 문제에 대한 염려 등이 대중적 선호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1988년부터 백남준과 함께 작업해온 세운상가의 기술자 이정성씨는 “기계라는 건 고장 나면 고치면 되는 것 아니냐”며 “회화도 칠이 벗겨지면 복원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백 선생님이 굉장히 오픈 마인드를 가진 분이라 ‘모니터 새 모델이 나오면 그걸로 바꾸면 되지 뭘 걱정이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
현재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2008년 개관 때부터 이정성씨의 아들 기준씨가 기술팀을 진두지휘하며 작품 수리 요청에 응하고 있다고 백남준아트센터 박남희 관장이 밝혔다. 이런 이유로 한국 컬렉터들의 인식이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공급 측면에서도 유통 시장의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백남준의 작품은 생전 국내에서는 갤러리현대와 박영덕화랑이 취급했다. 하지만 가고시안 전속이 되는 것과 동시에 가고시안 외 다른 딜러(중개 화랑)의 취급이 에스테이트에 의해 배제됐다.
박영덕화랑의 박영덕 대표는 “국내 컬렉터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국내 갤러리가 없어 수요자와 공급자의 접점이 사라진 것도 가격 하락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갤러리현대 도형태 대표는 “2006년 작가 사후 국내 갤러리들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과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프로모션이 안 되는 등 시장성이 약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남준을 잇는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1951~2024)의 경우 사후 미국에서는 제임스 코한 갤러리,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있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초대 관장은 위작의 판정 문제, 해외 켈렉터의 작품 수리 요구 대응 문제 등도 저평가 요인으로 언급하면서 백남준의 예술적 가치와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국제적 수준의 백남준연구소의 설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글·사진=손영옥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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