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제조업 밸류에이션 공식 뭐길래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6. 4. 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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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주가 기준은 이젠 PBR보다 PER?

증권가에서 제조업을 바라보는 밸류에이션 공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와 전자부품 같은 주요 제조 업종은 ‘사이클 산업’이라는 이유로 ‘주가순자산비율(PBR·잠깐용어 참조)’이 기본 공식처럼 쓰였다. 실적 변동성이 큰 업종일수록 이익보다 자산가치를 보는 게 더 안정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최근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변화가 감지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기 같은 대표 제조업 종목의 목표주가 산정에 PBR 대신 ‘주가수익비율(PER·잠깐용어 참조)’이나 ‘사업부별 가치 합산(SOTP·잠깐용어 참조)’ 방식을 적용하면서다. 인공지능(AI) 시대와 맞물려 제조업이 단기 사이클이 아닌 장기 성장 흐름에 올라탔다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증권가의 평가 잣대도 자산 중심에서 이익 중심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AI가 산업 패권으로 떠오른 시대, 반도체 등 제조업을 향한 증권가의 밸류에이션 판단도 달라지고 있다. (연합뉴스)
목표주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업종별 산정 방식 제각각

증권사 리포트를 보다 보면 늘 따라붙는 숫자가 있다. 바로 ‘목표주가’다. 앞으로 주가가 이 가격까지 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막연한 희망으로 만들어진 숫자는 아니다. 애널리스트가 기업 실적과 자산, 산업 흐름을 종합해 “이 회사는 지금 시장에서 얼마 정도로 평가받는 게 적절한가”를 계산한 결과다. 이 과정을 금융권에서는 ‘밸류에이션 산정’이라고 부른다.

밸류에이션 산정은 업종별로 제각각이다. 이 회사의 가치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갈린다. 공장과 설비·재고처럼 이미 쌓아놓은 자산이 중요한 회사가 있고,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이 더 중요한 회사가 있다. 여러 사업부를 묶어놓은 지주사나 플랫폼 기업처럼 한 가지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회사도 있다.

그래서 증권가는 업종마다 다른 계산법을 들이댄다. 통상 은행이나 증권은 PBR을 많이 쓴다.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굴리느냐가 중요해서다. 통신은 EV/EBITDA(잠깐용어 참조)가 자주 쓰인다. 투자 규모가 크고 감가상각 부담이 커 영업현금창출력을 보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나 지주사는 사업부별 가치를 따로 계산해 더하는 SOTP가 익숙하다. 덩어리째 보기보다 조각내서 보는 게 정확할 때가 많아서다.

제조업은 오랫동안 PBR의 영역에 가까웠다.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전자부품 같은 업종은 큰돈을 들여 공장을 짓고 설비를 돌려야 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이익이 크게 늘지만, 업황이 꺾이면 실적도 빠르게 흔들린다. 이런 업종에서 당장 1~2년 이익만 보고 값을 매기면 숫자가 너무 출렁인다. 그래서 이 회사가 지금 손에 쥔 공장과 설비, 즉 순자산이 얼마냐를 보는 PBR이 안정적 평가 기준으로 여겨졌다. 쉽게 말해 제조업은 ‘얼마나 잘 버느냐’보다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를 먼저 보는 업종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형태다. 1년 전 SK증권이 내놓은 삼성전자 리포트를 살펴보자. 당시 SK증권은 삼성전자의 2025년 예상 ‘BPS(주당순자산·잠깐용어 참고)’는 5만9239원으로 잡고, 여기에 최근 2개년 평균 PBR 범위 중간값인 1.3배를 적용했다.

계산은 단순하다. BPS에 목표 PBR을 곱하면 적정 주가가 나온다. 즉 5만9239원×1.3배=약 7만7000원이다. 실제 리포트의 목표주가도 7만7000원으로 제시됐다. 당시 주가가 5만4400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승 여력은 약 42%로 제시했던 것이다. 이 방식이 전형적인 제조업 밸류에이션 공식이다. 당장 올해 이익이 얼마 늘어날지를 촘촘히 따지기보다, 삼성전자가 쌓아놓은 순자산에 시장이 어느 정도 프리미엄을 붙여줄 수 있느냐를 보는 접근이다.

AI가 바꾼 반도체=PBR 공식

삼성전자도 삼성전기도 PER

최근 들어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제조업, 특히 반도체와 전자부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AI 패러다임과 맞물린 결과다. AI 시대 장기 고성장 국면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제조업도 자산보다 이익의 지속성을 더 중시하는 ‘이익 장세’에 들어섰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앞서 SK증권은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PBR 밸류에이션 공식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산정 방식을 바꿨다. PBR에 배수를 붙이던 기존 방식 대신 예상 이익에 목표 PER를 곱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공장과 설비의 ‘감정가’를 보던 계산에서 앞으로 이 공장이 얼마나 꾸준히 돈을 벌어줄지를 따지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PER 방식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시장이 더 이상 해당 기업을 단기 업황에 따라 흔들리는 사이클 산업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익이 일시적으로 튀었다 꺾이는 구조라면 PER은 숫자가 쉽게 왜곡된다. 반대로 앞으로 몇 년 동안 안정적인 수익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PER은 훨씬 설득력 있는 기준이 된다. 당시 SK증권도 “AI 사이클 내 메모리의 장기 성장과 안정성 제고의 동반 전망을 근거로 PER 방식으로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SK증권은 SK하이닉스 밸류에이션 산정 역시 PBR에서 PER로 변경했다.

최근에는 일부 전자부품 업종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인쇄회로기판(PCB) 사업자인 삼성전기가 대표적이다.

현대차증권은 4월 1일 삼성전기 리포트를 내고 밸류에이션 산정 방식을 기존 PBR에서 PER로 바꾼다고 밝혔다. 김종배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방 시장의 AI 관련 설비투자 등 자본적지출(CAPEX)이 지속되는 가운데 MLCC와 FC-BGA의 구조적 이익 상승이 포착된다”며 “향후 가파른 이익 성장이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려면 PER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김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비교기업(피어그룹)인 일본 이비덴 등의 PER을 근거로 목표 PER을 36.2배로 적용, 목표주가 54만원을 제시했다.

한발 더 나아간 SOTP 방식도 눈에 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한 회사 안에서도 AI 수혜 강도가 사업부마다 크게 다른 기업은 하나의 PER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쉽게 말해 건물 전체를 평당 같은 가격으로 매기기보다, 1층 핵심 상가와 일반 사무실 층의 가치를 따로 계산해 더하는 방식이다.

하나증권이 대표 사례다. 하나증권은 4월 2일 SK하이닉스 목표주가 160만원 산정 과정에서 일반 메모리와 HBM 사업부를 분리해 각각 다른 ‘멀티플(기업 몸값 기대치)’을 적용했다. 일반 메모리에는 목표 EV/EBITDA 3.8배를, AI 핵심 사업부로 꼽히는 HBM에는 8.9배를 부여했다. 여기에 비상장 지분 가치와 순현금을 따로 더해 최종 주주가치를 계산했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하나증권은 4월 8일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0만원으로 제시하면서 SOTP 방식을 적용했다. 메모리 사업에는 목표 EV/EBITDA 3.6배를, AI 핵심 축으로 떠오른 HBM과 파운드리·LSI에는 각각 8.5배를 적용했다. 디스플레이(SDC)는 4.9배, 모바일·가전(DX)은 4배, 하만은 6배로 따로 계산했다. 이렇게 사업부별 가치를 각각 산출한 뒤 상장·비상장 지분 가치와 순현금을 더해 최종 주주가치 1720조원을 도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목표주가 30만원을 제시했다.

여전히 대다수는 PBR 고수

막대한 설비투자 고려해야

다만 여전히 다수 증권사는 PBR을 기준 축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신한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12개월 선행 주당순자산가치(BPS)에 목표 PBR 2.2배를 적용해 27만원으로 제시했고, 다올투자증권은 2026년 예상 BPS에 목표 PBR 3.7배를 적용해 35만원을 산출했다. 한화투자증권 역시 2026년 예상 BPS에 목표 PBR 3배를 곱해 30만원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KB증권·삼성증권·DS투자증권·iM증권·NH투자증권 등 대부분이 PBR 지표를 활용했다.

결국 AI 수혜로 이익이 급증하는 국면에서도 대형 메모리주의 가치 산정 바닥은 여전히 순자산이라는 인식이 주류인 셈이다.

특히 반도체 업종 특유의 대규모 설비투자(CAPEX) 부담은 여전히 PBR 논리를 지지하는 근거다. 공장과 장비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산업 구조상 결국 기업가치의 바닥은 순자산이 결정한다는 시각이다. AI라는 새로운 성장 축이 생겼더라도 제조업의 본질인 자본 집약 구조까지 바뀐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나타나는 변화는 PBR의 종말이라기보다 PER·SOTP의 영역 확장에 가깝다”며 “제조업 밸류에이션 공식이 하나로 수렴하기보다, AI 수혜 강도와 실적 가시성에 따라 여러 공식을 오가는 혼합 국면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PER로 본 저평가 AI 수혜주는

삼성·하닉 여전히 재평가 가능성

PER만 놓고 봤을 때 투자자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곳은 단연 메모리 반도체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6년 추정 PER은 각각 5.9배, 5.1배다. 두 회사 모두 2026년 영업이익이 수 배 뛸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시장은 여전히 과거 ‘사이클 산업’ 할인 프레임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이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모건스탠리는 4월 7일 보고서에서 “최근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향후 실적 증가폭을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의 규모를 감안하면 추가 리레이팅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씨티의 시각은 더 직설적이다. 2026년 삼성전자 주당순이익(EPS)이 전년 대비 455% 급증하는데도 예상 PER은 5.3배에 그친다고 봤다.

반면 반도체 후방 업종은 상대적으로 PER이 높은 구간이다. 대표적인 게 한미반도체다. 한미반도체 2026년 추정 PER은 67.4배다. JP모건 등 일부 외국계 IB가 지난 3월 리포트에서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다”며 투자의견으로 ‘비중 축소’를 제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밖에 삼성전기와 대덕전자도 각각 35.3배, 29배로 높은 편이다. 다만 글로벌 피어그룹(비교기업)인 일본 이비덴과 대만 유니마이크론의 2026년 추정 PER(35~36배)을 고려하면 적정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잠깐용어]

*PER(주가수익비율)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주가가 이익 대비 몇 배로 평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PBR(주가순자산비율)

PBR은 주당 시장가치를 주당 장부가치로 나눈 값이다. PBR이 1이면 시장이 해당 기업을 장부에 적힌 자산 가치 수준에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익을 잘 내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는 기업일수록 PBR은 높아진다.

*SOTP(사업부별 가치 합산)

SOTP는 기업을 하나로 보지 않고 사업부별로 쪼개 각각의 적정 가치를 따로 계산한 뒤 모두 더하는 방식이다. HBM처럼 특정 사업부 가치가 급등할 때 기업의 재평가 폭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EV/EBITDA

EV는 기업의 총시장가치를 의미한다. 시가총액에 부채총액을 더한 뒤 현금성 자산을 빼는 형태로 계산한다. 현금을 차감하는 이유는 단순한데, EV가 과도하게 부풀려지지 않기 위함이다. EBITDA는 이자비용과 감가상각비 등을 차감하기 전 이익이다. 즉 EV/EBITDA는 EV를 EBITDA로 채우는 데 몇 년의 기간이 걸리는지 확인하는 지표다.

*BPS(주당순자산가치)

BPS는 기업의 순자산(자산-부채)을 발행주식 수로 나눈 값이다. 기업을 지금 청산했을 때 주주 몫이 주당 얼마인지 가늠하는 지표다. 현재 주가를 BPS로 나누면 PBR이 나온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5호(2026.04.15~04.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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