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군비 통제 질서 완전히 붕괴… 핵 전쟁 위험성 고조”

김지훈,이강민,김판 2026. 4. 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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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문턱이 낮아졌다] 틸먼 러프 호주 멜버른대 교수
틸먼 러프 호주 멜버른대 교수가 지난달 30일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러프 교수는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기구 핵무기폐지공동행동(ICAN)의 창립자다. 그는 “핵 분야의 군비 통제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며 증가하는 무력 분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화상 인터뷰 캡처


“세계의 핵무기 군비 통제 질서가 완전히 붕괴했다.”

2017년 노벨평화상 수상 단체인 핵무기폐지공동행동(ICAN)을 설립한 틸먼 러프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현재의 국제질서를 이렇게 평가했다. 핵무기 보유국이 다른 국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핑계 삼아 공격을 가하고, 또 이를 본 국가들은 생존을 위해 결국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는 핵전쟁의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각기 다른 글로벌 조사 기관의 데이터가 분쟁 증가라는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PRIO), 웁살라대학 분쟁 데이터 프로그램(UCDP),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통계 방향이 모두 일치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인도주의 전망 보고서에서는 분쟁에 따른 사망자의 증가도 확인된다. 충분한 기간을 두고 살펴봐도 전쟁은 증가 추세가 분명하다.”

-2차 대전 이후 합의된 국제 질서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현재 관측되는 무력 분쟁은 2차 대전 이후 사상 최대 수준이다. 많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권위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러시아에서 시작한 이 같은 역행은 동유럽과 미국으로 번지고 있다. 국제법을 지키는 대신 ‘힘이 곧 정의’라는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앞세운 지도자가 늘고 있다.”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무력을 쓰는 게 ‘뉴 노멀’이 됐다.

“이 세상에서 전쟁은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과 이에 따른 피해도 확대되고 있었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전쟁 위협이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동시다발적인 전쟁,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이런 무력 분쟁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된다. 핵전쟁 위험 아래에선 그 어떤 국가도, 국민도 안전하지 않다.”

-다시 핵 개발을 경쟁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가.

“핵전쟁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러시아는 유엔헌장을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의 원자력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전쟁으로 이런 위협은 더 커졌다. 핵무기가 국가 간 분쟁을 억제한다는 것이 핵보유국의 명분이었는데, 반대로 핵무기 개발 저지가 약소국에 대한 침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소국들은 오히려 핵무기를 보유하면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왜 핵보유국인 북한은 살아남았는데 이라크와 이란은 침략 대상이 됐는가’라는 의문이 확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는 무제한적 군비 경쟁에 돌입했고 핵 분야의 군비 통제 질서는 붕괴했다.”

-미국이 이란·이라크처럼 북한의 핵시설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을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북한을 이란처럼 공격할 확률은 낮다.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이 크고 한국·일본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북한은 이미 이동식 지상·해상 시스템을 개발했기에 선제 타격으로 북한의 핵시설을 무력화하기 어렵다. 또 이란과 달리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이다. 현재로서는 핵무기에 대한 효과적 방어가 불가능하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전쟁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대만 침공은 중국이 그간 구축해온 책임감 있고 절제된 국가로서의 이미지와 상반된다. 중국은 글로벌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평화와 국제법에 대한 존중이라는 큰 기회를 부여받았다. 또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려면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에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큰 재앙이다.”

-향후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가능성은

“현재 동북아 지역은 핵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국가 간 대규모 전쟁의 발화점이 곳곳에 존재한다. 남중국해의 분쟁 도서와 중국 근해에서 종종 발생하는 미군과 중국군의 군사적 대치는 전쟁으로 이어지기 쉬운 도화선이다. 의도된 무력 분쟁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사고나 충돌, 군사 훈련조차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독단적 태도와 군사력 증강 기조, 미국의 강력한 대중 정책은 이런 위험을 더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 국제적 갈등에서 유엔은 무력한 모습이다.

“유엔의 가장 큰 약점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점이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는 가장 적극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 유엔은 없어서는 안 될 기구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탈퇴를 우려해 조직이 매우 위축된 상태다. 유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유엔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5개국이 문제다.”

-기술의 발달로 전쟁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자폭 드론 같은 기술은 적은 돈으로도 광범위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과거에는 정규군이 미사일을 쏴야만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반군이나 범죄조직도 손쉽게 같은 수준의 공격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 역시 빠르게 군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분야에서의 AI 규제를 도입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인도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법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기에 대한 투자가 매년 늘어나지만, 민간인 보호와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 틸먼 러프 교수는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기구 핵무기폐지공동행동(ICAN)의 창립자. 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반핵 분야의 실천적 학자로 평가된다. 201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핵전쟁 방지 국제 의사회(IPPNW) 공동회장으로 취임했다. 러프 교수는 핵무기 폐지와 동남아시아 지역 예방접종 프로그램 확산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호주 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9년에는 핵 비확산 및 군축에 기여한 공로로 호주 훈장 오피서(AO)를 수여받았다.

이슈탐사팀=김지훈 이강민 김판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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