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헤드, 바질, 모닝글로리... 정원 가꾸며 계절 건너는 법
[조미선 기자]
지난 주말, 모종을 사 왔다. 돌계단을 내려가다가 계곡물에서 바위로 샤샤샥 숨는 버들치를 본다. 돌멩이를 한번 던져 볼까 하다가 발길을 돌린다. 그곳에 면한 자투리땅에 퇴비 흙을 섞고 모종을 심어준다. 버터헤드, 바질, 모닝글로리… 그리고 치커리를 마저 심을 계획이다.
올해는 4년 묵은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하리라. 매년 공작의 날개처럼 한껏 펼쳐진 잎을 보며 '도대체 언제 먹을 수 있어?'라고 묻곤 했는데, 드디어 때가 왔다. 어느새 전원주택에 산 지 5년 차가 되어간다. 처음 이 집을 보고 조경에 반했다. 담장 하나 없이 탁 트인 공간에 잔디 마당이 있고 경사면으로 자연스럽게 야생화가 심어 있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한눈에 반했다. 집이 아니라 정원에.
이미 조경이 되어 있는 집이라 손댈 곳이 거의 없었지만 비어 있던 옆집에 이웃이 들어오면서 경계면을 채워야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심었다. 꽃을 만지는 일을 4년 넘게 했지만 내가 아는 꽃은 절화였다. 식물마다 폭과 길이가 얼마나 될지, 꽃은 얼마나 오래 보여줄 것인지와 관련한 데이터가 없었다. 결국 옆집과 경계면은 '예쁜 거 다 나야' 하는 식물이 가득한 욕망의 화단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균형이 뭔지 몰랐다. 심는 것만 알았지, 여백과 한계를 줄 줄을 몰랐다.
"가지를 자르는 일을 '정원 관리'라는 좁은 틀로만 보지 않고 나무와 내가 서로의 한계 안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일들이 조금씩 의미를 갖는다."
정원을 가꾸는 노동
이제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알겠다. 나무와 꽃, 그라스들이 제 자리에서 예쁘게 자라려면 그만큼의 노동과 지식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봄에는 묵은 잔디를 긁고 그라스와 꽃대들을 정리해줘야 한다. 그라스를 자르는 때가 오면 "아, 조경 사장님 너무 많이 심으셨어!" 하며 툴툴대곤 한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잡초를 뽑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태양과 함께 폭풍 성장한 넝쿨이 그라스들 머리채를 잡아당길 것이다. 각설이도 아닌데 때 되면 찾아오는 선녀벌레와의 전쟁도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내가 하는 듯이 썼지만 사실은 남편이 거의 7할의 일을 한다. 우리 집 정원은 그렇게 남편의 땀과 손끝으로 가꿔진다. 그러니 저자가 일 년 열두 달의 정원을 빼곡히 기록한 시간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업으로 하는 일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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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호의 <영국 정원 일기> 책표지 |
| ⓒ 판미동 |
그 순간을 저자는 "마음 한편에서 무엇인가가 허물어졌다"고 썼다. 학명으로 쌓은 거리가 허물어지는 순간, 이방인의 정원이 조금씩 자기 것이 되어가는 순간이다. 낯선 땅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게 동화되고자 했던 그가 마침내 자신의 언어로 나무를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반가움과 안도감이 얼마나 컸을지.
"벽이 허물어진 뒤로 정원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꽃과 나무는 이렇게 긴 추위는 너무하지 않냐고 따질 만도 한데 조금이라도 볕이 들면 새순을 낸다.(…) 그러니 나도 꽃과 나무처럼 속없이 실실거리고 살고 싶다. 이해받지 못해도 무얼 탓할 필요 없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가고 싶다. 작년에 내린 서리의 기억은 거기 두고 지금 온 계절에 꽃을 피워야겠다."
작년에 내린 서리의 기억을 켜켜이 쌓아두고 곱씹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던 내가 나무와 산에 마음이 가던 이유도 비슷하다. 사람의 마음은 물결이 일렁이듯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그러나 꽃과 나무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다. 지나가는 이에게 곁을 내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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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추와 모종들 버터헤드,바질,모닝글로리,아스파라거스 |
| ⓒ 조미선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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