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제 역할 했네" 어떻게 이런 댓글이 달렸냐면요
[이영광 기자]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된 KBS 8부작 과학 프로그램 <사이언스 워>가 종영 후에도 입소문을 타며 역주행하고 있다. 배우 조우진씨가 스토리텔러로 나선 <사이언스 워>는 과학사를 수놓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사이언스 워>가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살펴보고 치열했던 제작기에 대해 듣고자, 지난 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승용·신은주 PD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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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언스 워> 포스터 |
| ⓒ KBS |
김승용 PD(이하 김): "처음에는 시청률이 낮아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학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한계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유튜브나 OTT를 보니 과학 콘텐츠를 원하는 시청자층이 분명히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안방 TV' 너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그 판단이 적중했습니다. 꾸준히 올라가는 조회수도 반갑지만, 무엇보다 'KBS가 제 역할을 했다'는 시청자들의 댓글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신은주 PD(이하 신): "8부작 장기 시리즈라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편수가 누적될수록 입소문이 퍼지면서 홍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저희 프로그램은 한 번 보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교육 현장에서 자료로 쓰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콘텐츠의 유효 기간이 길다는 점이 <사이언스 워>만의 큰 강점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분이 이 프로그램을 찾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사이언스 워>는 과학을 다룬 프로그램이잖아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김: "<사이언스 워>는 조영중 CP가 2021년 다큐멘터리 <마이크로바이옴>을 연출하며 정립한 '지식 전달 방법론'에서 출발했습니다. 방대한 정보량과 제작 시간 등 과학 콘텐츠 특유의 난관을 효율적으로 담아낼 그릇을 고민해 온 결실입니다. 오랜 숙성 과정을 거친 이 기획은 지난해 한국과학창의재단 프로그램 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제작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 과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김: "솔직히 과학 분야의 문외한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사이언스 워>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 도전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최근 TV 콘텐츠가 점차 연성화되면서 깊이 있는 지식 전달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습니다. 과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넘어, 그 안에서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을 찾아낸다면 시장성이 충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 "저는 이 프로그램을 맡기 전에 <다큐인사이트> '인재 전쟁' 편을 제작하면서 수많은 과학자를 만났고, 우리나라 과학 기술이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과학이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갈증을 느끼던 차에 운 좋게 연출 제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고민하던 화두를 본격적으로 풀어낼 기회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 맨 처음에 뭐부터 했나요?
김: "<사이언스 워> 기획의 최우선 과제는 난해한 과학 지식을 매끄럽게 이끌어갈 '스토리텔러' 찾는 일이었습니다. 콘텐츠의 무게감을 상쇄할 만큼 강력한 주목도와 신뢰감을 갖춘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내건 1순위 조건은 인물 자체의 화제성을 넘어, 어려운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독보적인 '전달력'이었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검증 끝에 탁월한 연기력과 발성을 겸비한 조우진 배우를 섭외하며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조우진 배우는 주목도와 전달력을 동시에 갖춘, 제작진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특히 과학사의 결정적 장면 속으로 직접 들어가 상황을 재현해야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그의 탁월한 연기력은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복잡한 지식을 명료하게 각인시키는 독보적인 발성과 톤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조우진 배우의 깊은 관심 덕분에 성사된 이 만남은, 결과적으로 <사이언스 워>가 거둔 최고의 선택이자 신의 한 수였습니다."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섭외는 어땠나요?
김: "지식 전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작진이 선택한 전략은 '전달자의 이원화'였습니다. 모든 전문 지식을 배우의 입으로만 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렇다고 학술적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대중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제작진은 대중의 언어로 과학을 풀어내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를 섭외해 전문성과 친숙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조우진과 궤도라는 강력한 두 축이 세워지면서, 난해했던 과학 콘텐츠의 전개는 비로소 활로를 찾게 되었습니다."
- 대결을 콘셉트로 잡은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신: "과학은 흔히 숫자와 이론의 집합체로 여겨지지만, 그 본질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제작진은 과학사 속 거인들이 벌였던 치열한 대결과 서사에 주목했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이언스 워'라는 제목을 채택했습니다. 천재와 천재 간의 충돌, 혹은 한 천재가 시대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역동적인 서사 구조를 발굴하여, 과학을 정적인 지식이 아닌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로 재구성했습니다."
김:"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뉴턴의 법칙' 같은 과학 이론 자체를 중심에 두려 했으나, 이는 대중에게 높은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제작진은 이론의 결과값이 아닌 그 이론이 정립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에 주목했습니다. 하나의 진리가 세워지기까지 수반된 의심과 대립, 충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흥미로운 지적 여행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특정 이론의 단순 해설을 넘어, 그 지식이 탄생한 시대적 맥락과 인물 간의 필연적 충돌을 정리함으로써 과학 발전의 도도한 흐름을 입체적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 우주전쟁, DNA 전쟁, 핵전쟁, 미생물 전쟁, 전기 전쟁 등을 주요 주제로 했는데요. 주제 선정은 어떻게 했나요?
신: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을 망라한 과학계 거장들의 업적을 고루 배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자문과 심층 연구를 거치며 더 선명한 주제의식을 갖춘 아이템으로 틀을 조정했습니다. 제가 연출한 '핵전쟁' 편 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급격히 팽창한 과학 기술의 이면과 그 시대 특유의 치열한 대결 구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에디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에디슨이란 이름은 잘 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도 많이 다루셨는데요.
김: "우리가 흔히 아는 과학적 사실들이 왜 중요한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 <사이언스 워>의 재미입니다. 가령 DNA 발견처럼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성과들도, 사실 그 이면에는 기성 세대의 관성이나 시대적 편견과 싸워온 숱한 번민이 녹아 있거든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위대한 업적으로 우뚝 서는 과정을 시대적 맥락 안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템을 고민할 때도 단순히 유명한 소재를 찾기보다, 이런 서사적 깊이가 충분한 지를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 다루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다루지 못한 아이템이 있을까요?
김: "고민할 시간조차 사치였다고 할까요. 8편을 불과 6주 만에 전부 찍어내야 했거든요. 보통 신규 기획은 1편의 반응이나 편집본을 보며 형식을 다듬어갈 여유가 있는데, 저희는 방송 시작 전 전 회차 촬영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그럴 여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정해진 기한 내에 완벽한 결과물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지만, 그 간절함이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아이템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요?
신: "결국 양자 역학이 문제였죠. 리처드 파인먼조차 '양자 역학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저 역시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교수님들께 자문을 구했지만, 초기에는 당혹스러울 만큼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함께 제작한 PD와 작가 네 명이 이해한 양자 역학이 저마다 달랐다는 거예요. 원고 회의 때마다 뜨거운 언쟁과 토론이 이어졌죠. 하지만 서로 다른 해석이 부딪히고 다듬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훌륭한 공부가 됐어요.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 AI와 CG를 많이 활용하셨는데요. 과학적 팩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방송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했던 지점이 있을까요?
김: "유튜브 댓글 중 'AI가 범람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져 좋았다'라는 평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역설적으로 <사이언스 워>는 AI와 CG 기술을 적극 활용해 과학 지식을 시각화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아날로그적 온기를 느낀 이유는 조우진 배우의 독보적인 스토리텔링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제작진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에 힘을 실었고, 의도적으로 컷을 나누지 않는 '원테이크 기법'을 고집했습니다. 이러한 연출적 선택이 기술적 화려함 너머의 인간적인 긴장감과 몰입감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신: 처음에는 AI가 참 유용하다고만 생각했어요. 프롬프트만 잘 입력하면 촬영보다 훨씬 쉽고 리얼한 영상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진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결국 우리가 직접 촬영하며 쏟아부은 정성이 시청자에게 닿는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사이언스 워>에서는 AI를 배경으로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대목은 AI로 재미있게 표현해 보겠다'는 선언적인 장면에서만 대놓고 사용하며 제작진의 진심을 담아냈습니다."
김: "콘텐츠의 완급 조절을 위해 유머러스한 AI 영상을 배치했습니다. 지식 전달에만 치중하다 보면 수용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위트'였던 셈입니다."
신: "다만 경계해야 할 지점도 있습니다. 최근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실물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니까요. 실제로 유명한 솔베이 회의 아카이브 사진을 편집에 활용했는데, 알고 보니 AI로 만든 이미지였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무분별한 사용이 자칫 심각한 정보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죠. 이제 PD들에게 AI는 편리함을 넘어, 그 사용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 <사이언스 워>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뭐였나요?
김: "최근 아르테미스 2호의 우주비행사가 달 너머로 사라지기 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광활하고 텅 빈 공간 속에서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며, 결국 같은 존재로서 이 시간을 함께 지나가야 한다'고요. 저는 여기서 '함께'라는 단어에 매료되었습니다. <사이언스 워> 8부작을 마친 뒤 깨달은 점도 같아요. 과학적 진보나 발견은 어느 한 천재의 독무대가 아니라, 선대 인류가 쌓아 올린 생각의 토대 위에 새로운 생각이 겹겹이 층을 이뤄 만들어낸 '축적의 결과물'이었어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 프로그램은 인류가 서로 갈등하고 영향받으며 정진해 온 기록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씨앗을 심어 어떤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가. 그 질문의 씨앗이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 혹시 이후 시즌제나 정규편성 계획도 있나요?
김: "현재 8부작으로 제작은 종료되었지만, 뒤늦게 작품을 접하고 응원을 보내주시는 시청자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특히 종영을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높은 만큼, <사이언스 워>를 통해 쌓은 제작 노하우와 독창적인 시각을 녹여낸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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