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타고 간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 거기서 든 생각
[이병철 기자]
봄이지만 겨울 채비로 오길 잘한 것 같다. 포천을 지나면서부터 몸은 속까지 차가워졌다. 겨우 만난 길가 편의점에 들러 한숨을 돌렸다. 입에서는 담배연기가 아닌 하얀 입김이 새 나왔다. 갓 내린 편의점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다독였다.
오토바이 여행자에게 국도변 편의점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요즘 들어서는 진짜 오아시스처럼 만나기 힘들어진 것도 같다. 지방은 소멸 중이라는 사실을 서울에서 가까운 이런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그래도 드문 손님을 위해 가게를 열 순 없는 노릇이다.
철원쯤 올라가다가 동쪽으로 길이 크게 꺾였다. 백운산을 오른쪽에 두고 한참을 달리니 강원도로 들었다. 화천이다. 길은 굽이치고 곳곳에 낙석이 보였다. 산세는 가팔랐다. 점점 오지로 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따라 오토바이가 이상하게 가볍다.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니 마음이 살짝 설렌다. 하지만 이런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신호가 바뀜을 다시 확인한 뒤에야 출발한다.
주유등에 불이 들어왔다. 혹시 가벼운 이유가 이것? 그건 아닐 거라 고갤 저으며 기름통을 가득 채웠다. 유가가 한창 오르는 때지만 내 저배기량 엔진은 식탐이 그리 크진 않다. 다행이다. 날이 좀 풀려가는 듯하다. 구불지기만 한 산길을 계속 따라가다 마지막 터널을 빠져나왔다. 갑자기 열린 하늘에 살짝 눈이 부셨다. 텅 빈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곧게 뻗은 길이 내달리고 있었다. 거대한 구조물 위를.
내 어린 학창 시절. 그때는 궐기대회라는 것을 참 많이도 했던 것 같다. 물자절약 궐기대회부터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여객기 격추에 대한 규탄 궐기대회. 그중 가장 흔히 했던 것은 반공궐기대회였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전국에 공포감이 광풍처럼 불어닥친 일이 있었다. TV의 모든 채널(그래봐야 3개?)에서는 모형까지 보여주며 그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이용해 이른바 수공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댐을 폭파해 물을 쏟아내면 서울이 모두 물에 잠기고, 심지어 63빌딩까지도 거의 잠긴다는 내용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연이은 규탄궐기대회가 이어졌고, 수공을 막을 대응댐을 건설하자고 했다. 모금운동이 이어졌다. 관에 의해 주도됐건 민에 의해 주도됐건 모금은 전국규모로 이루어졌고, 나 역시 어머니를 졸라 몇 푼의 성금을 학교로 가져간 기억이 있다.
지금 눈앞의 구조물, 평화의 댐이다. 내가 낸 돈도 저 콘크리트벽 어딘가를 이루고 있겠지만, 알 순 없는 노릇이다. 높고 가파른 양쪽 계곡을 가로질러 세워진, 삼각형의 단면을 가진 댐이었다. 치수용이 아니라 오로지 방어를 위한 댐이기에 물을 가둬두진 않은 것 같다. 댐의 이쪽과 저쪽 물 높이는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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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댐 경사면. 저 곳 한 틈에도 내 손길이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 우리 모두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
| ⓒ 이병철 |
난 처음 와본 곳인데, 제법 찾는 이들이 많아 보였다. 속속 라이딩을 마친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커다란 관광버스도 몇 대인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내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동년배거나 혹은 그 위 세대인 것 같았다. 저들도 나와 동시대의 경험을 했을 것인데, 이곳에서 저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삼삼오오 무리 지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서로 그 기억들을 열심히 나누고 있지 않을까.
세계 각지에서 모은 탄피로 만들었다는 평화의 종을 한참이고 들여다 봤다. 손가락으로 톡톡 쳐보기도 한다. 이 종이 앞으로도 영원토록, 이자리에 이모습 그대로 남아있길 빌어본다.
정오가 지나지 않았는데, 서울로 복귀하는 길이 정체되고 있었다. 저 속에 탄 이들은 어떤 기억들을 쌓아가고 있을까. 역사의 진보를 믿지만, 짧은 구간만을 놓고 보면 반복되는 경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오늘의 사람들이 수십 년 전과 비슷한 기억을 갖게 된 듯해 안타깝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이렇듯 빨리, 훌륭하게 극복해 내고 있다는 것도 경험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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