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힛 포 더 사이클' 대신 '힛 포 더 팀'을 택한 삼성 박승규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하는 사이클링 히트는 한국에서만 쓰는 표현이다. 메이저리그에선 통상 '힛 포 더 사이클(Hit for the cycle)'이라고 한다. KBO리그 역사상 32번 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 그러나 이걸 거부한 선수가 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승규(26)다.
박승규는 지난 10일 대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홈 경기에서 세 타석 연속 안타를 때렸다. 3루타-단타-홈런.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하기 위해선 2루타가 필요했다. 7회 네 번째 타석에선 3루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5-5로 맞선 8회 말 2사 만루에서 다섯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박승규는 NC 김진호의 빠른 공을 때렸다. 중견수 천재환의 키를 넘긴 타구는 담장을 맞고 굴렀다. 주자 세 명이 모두 홈을 밟았고, 박승규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달렸다. 이종욱 3루 코치는 멈추라는 사인을 냈지만 박승민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 몸을 날렸다. 8-5를 만드는 결승 3루타. 더그아웃의 동료들은 기뻐하면서도 펄쩍 뛰었다. 스스로 사이클링 히트 달성 기회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박승규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멈출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일단 승리가 먼저라고 생각했고, 3루에 가야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영광스러운 기록이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과론적으로 박승규의 추가 진루는 효과가 없었다. 류지혁이 좌중간 2루타를 날렸기 때문에 2루에 있었어도 여유있게 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박승규는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이클링 히트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팬들이 좋아하시니 더 좋다"고 했다. KBO 공식 SNS는 '힛 포 더 팀'이란 찬사를 보냈다.
베테랑 강민호는 박승규에게 "남자에게 반한 건 오래간만이다"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글씨를 썼다. 박승규는 "우리 선수들이 모두 보는 곳이다. 영광이다"라고 웃었다.

박승규는 2019년 2차 지명 9라운드 전체 82번으로 삼성에 입단했다. 낮은 지명순위에서도 보듯 구단의 기대가 크진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투수였지만 뒤늦게 타자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박승규는 "어깨가 아파 쉬었다 다시 하다를 반복했다. 야구를 그만둬야 할 정도였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입단하자마자 1군 경기를 뛸 수 없는 육성선수로 전환됐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2군에서 맹타를 휘둘러 8월에 정식 선수가 됐고, 1군 데뷔전도 치렀다. 롤모델 박해민을 본받아 외야수비 능력을 끌어올리면서 백업 외야수로 자리잡았다. 붙박이 1군 선수는 아니지만 4년 동안 226경기에 나섰다.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 상무에서 뛰다 허리 디스크가 도졌다. 2024년 7월 전역 이후에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박승규는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멘털적인 부분을 가다듬었다. '챔피언의 마인드' '미움받을 용기'처럼 마인드 셋에 필요한 책들을 읽었다"고 했다.
박승규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지난 시즌엔 데뷔 후 가장 높은 타율(0.287)을 기록했고, 홈런(6개)과 도루(5개)도 가장 많았다. 그런데 또다시 부상이 다가왔다. 지난해 8월 투구에 엄지를 맞아 부러졌다. 지난 10일 경기는 223일만의 1군 복귀전이었다. 인상적인 복귀전을 치른 그는 "포스트시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동료들을 응원했다. 그런 힘든 시간들이 있어 내가 더 성장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제 시작이다. 어려움과 시련이 올텐데 잘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하겠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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