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 하나 들고 뛰어든 세상, 열세 살 소녀가 사는 법
[김상목 기자]
'키키'는 마녀의 혈통을 이어받은 소녀다. 오랜 전통에 따라 13살이 되면 수습 마녀는 집을 떠나 다른 마을에 정착해 1년 동안 부모의 보살핌 없이 자립해야 한다. 어느새 소녀에게 수행의 때가 다가온다. 다른 마녀가 머물지 않은 곳을 찾아 반려고양이 '지지'와 여행을 떠난 키키는 바다가 보이는 대도시에 도착한다. 그녀가 알던 모든 이웃이 한 식구와 다를 바 없는 고향과 달리, 이 큰 도시엔 꼬마 마녀를 반겨주는 이가 통 없다.
홀로서기가 가능할까 풀이 죽은 키키는 정처 없이 헤매던 중 우연히 인심 좋은 동네 빵집 사장님 '오소노'와 만난다. 빵집 일을 도우며 호구지책을 마련한 소녀는 자신이 가진 마녀로서의 유일한 능력, 빗자루 타고 하늘 날기를 활용해 택배 사업을 개시한다. 새로운 고장에 자리를 잡고자 애쓰며 키키는 여러 사람과 인연을 통해 마녀 수행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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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녀 배달부 키키> 스틸 |
| ⓒ 대원미디어 |
<이웃집 토토로>에서 <마녀 배달부 키키> <추억은 방울방울>로 연속되는 이 시절 지브리 작품군은 이후 작가주의 지향이 좀 더 짙어진 작업과 다른 결이 엿보인다. 신생 제작사가 지속 가능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는 훗날의 시선과 달리 당시 다양한 외부 의뢰에 적절히 대응하며 '고객 수요'에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런 압박과 작가적 모색이 어우러진 결과는 현재까지도 지브리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지브리의 경이로운 성취를 대표하는 작품은 따로 있지만,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은 바로 이 시기 흐름에 속하는 영화들이다. 지브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뭘까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토토로'가 첫 손에 꼽힐 테다. 그렇다면 다음은? 늘 후보 중에 <마녀 배달부 키키>가 있다.
이 견습 마녀의 일화를 담은 영화는 치명적 매력을 뽐낸다. 대개 일본 국내 인기로 그치던 지브리 초반 작품 중 유독 해외에서 고른 인지도를 가질 만큼 본 작품의 보편적 매력은 만만찮다. 일찍이 외주 하청 제작 시절 주축 스태프를 먹여 살렸던 '세계명작동화' 시절부터 갈고닦은 내공이 빛을 발해 남녀노소 국경 초월 통하는 진입장벽 없이 감동과 웃음을 선물하는 특유의 색깔 덕이다.
초보 마녀 수행기는 '마법'이란 요소만 제외하면 그저 평범한 소녀 성장기다. 다들 지금 겪고 있거나 경험했던 기억이다. 그렇기에 '그땐 그랬지' 씩 웃으며 방울방울 떠오르는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 여행에 빠져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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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녀 배달부 키키> 스틸 |
| ⓒ 대원미디어 |
수행의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정착'이다. 둘은 차원이 다르다. 예전 살던 마을보다 좀 많이 크긴 하지만, 이 도시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야 진짜 마녀가 될 수 있다. 13살이면 아직 어리긴 해도 어엿한 주민으로 인정을 받아야 가능한 과제다. 빵집 주인아주머니 호의에 무작정 기댈 순 없는 노릇. 자신의 생활을 해결하기 위한 (임금)노동은 그 첫 관문이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식과 기술이 자신에겐 전무하단 걸 깨닫고 좌절하는 키키. 내가 할 줄 아는 게 뭘까?
'유레카!' 문득 소녀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마녀라 해봐야 책에서 봤듯 마법이나 묘약 같은 기술 하나 모르는 키키이지만, 혈통의 특권 하늘을 날 줄은 안다. 교통이 혼잡하고 다들 시간 내기 힘든 이곳에선 '물류'가 관건이다. 마녀의 택배 창업 분투기가 개시된다. 그와 함께 낯선 이들과 인연이 싹튼다. 처음 들어온 일감 배송 과정에 우연히 접한 자유로운 여성 화가 '우르술라'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태도를, 저택의 자상한 할머니 고객은 키키가 그리워하던 가족의 자상함을 채워준다. 물론 빵집 가족의 따스한 후원도 포함해서.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경구처럼, 13살 견습 마녀의 수행을 위해선 도시 곳곳의 숨은 자원이 총망라될 수밖에 없다. 부모의 가르침에 의지하던 소녀는 이제 스스로 롤 모델을 정하고, 심보 고약한 고객이나 난처한 주문 의뢰를 소화하며 성장통을 헤쳐 나간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저지른 사고와 실수, 타인의 오해를 견디고 화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반려묘 지지도 먹여 살리고, 자기 건강도 챙기며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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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녀 배달부 키키> 스틸 |
| ⓒ 대원미디어 |
주인공은 엄마 마녀가 그랬던 것처럼 첫사랑을 만나고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 수습 마녀를 보살피게 된다. 현실과 딱 들어맞진 않는 평행세계이긴 하지만 20세기 중반쯤 유럽 도시를 연상케 하는 공간에서 마녀의 삶은 바람 잘 날 없다. 오해와 신비에 싸인 '마녀'라는 존재가 과거 공동체에서 담당한 역할을 재해석한 키키의 자리 찾기는 아이들 동화라고 우습게 볼 수 없는 삶의 본질과 각박한 세태에 가려진 공동체 가치를 일깨운다.
특이점이라면, 이후 동화 연작의 방향이 애니메이션이 추가하고 확장한 내용과 동일한 지향을 선보인다는 것. 여느 판타지 동화가 내세울 현란한 마법 기술이나 초자연적 능력치는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뻔한 호기심 유발 요소를 대신해 여성의 사회참여와 권리 고양, 도시화에 잊힌 마을 공동체의 가치가 넘실거린다.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 (원래 연출로 내정되었던) 카타부치 스나오의 합력에다 지브리 OST 하면 자동재생 지경인 히사이시 조의 음악까지 모두가 힘을 더해 전설을 창조하던 시절의 문제의식과 아이디어가 영화에 가득하다. 모두가 믿던 밝은 미래가 불투명한 요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뇌가 장렬하지만, 그래도 툭툭 털고 씩씩하게 아침을 맞이하고플 때 <마녀 배달부 키키>는 더 좋을 수 없는 마녀의 만병통치약처럼 다가온다.
<작품정보>
마녀 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Kiki's Delivery Service
1989|일본|애니메이션, 드라마, 가족, 판타지
2026.04.15. (재)개봉|102분|전체관람가
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
목소리 출연 타카야마 미나미, 사쿠마 레이, 야마구치 캇페이, 카토 하루코, 토다 케이코
원작 카도노 에이코,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 (1985)
음악 히사이시 조
주제가 아라이 유미 -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수입 대원미디어
배급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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