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6년차 가수는 공연중 인이어가 빠지면 어떻게 할까? [송원섭의 와칭]

2026. 4.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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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로시컴퍼니

지난 11일, 가수 신승훈의 ‘리미티드 에디션’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신승훈에게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타이틀의 공연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2009년, 2014년에 이어 12년 만이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다 똑같은 콘서트일 수도 있지만, 36년차 가수와 팬들에게는 의미가 각별합니다. 신승훈의 ‘리미티드 에디션’ 콘서트는 ‘평소보다 좀 작은 공연장에서, 평소 콘서트에서 자주 들을 수 없는 노래들을 선곡하는' 공연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 아트센터에서 총 6회에 걸쳐 열립니다.

사실 가수의 입장에서는 수천 수만번 부른 ‘그 히트곡’을 또 부르는 것 보다, 이미 발표한 곡 중에서 잘 알려지지는 않은 게 아쉬운 노래들을 부르고 싶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관객들은 '이미 1000번 들은 그 노래'를 다시 듣기를 원하죠. 예를 들어 빌리 조엘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피아노 맨’을 안 부른다든가(실제로 그런 적이 있어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김광석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사랑했지만’이 안 나온다든가(공연 연출과 이 문제로 자주 다퉜다고 전해집니다) 하는 경우라면, 대부분의 관객은 서운할게 뻔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승훈이 ‘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브랜드를 만든 이유입니다.

사진 도로시컴퍼니

“오래된 팬들, 애정이 깊은 팬들일수록 ‘나만의 애청곡’이 많고, 그런 노래들도 공연에서 듣고 싶어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 데뷔 앨범에서도 ‘돌아봐줘’ 같은 노래는 히트곡은 아니지만, 은근히 열성 팬이 많아요. 매번 콘서트 때면 ‘이번엔 그 노래도 듣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요.”

그 밖에도 ‘나처럼(1993)’, ‘운명(1996)’, ‘그대 떠나갈만큼(2002)’, ‘애이불비(2002)’, ‘헤이(2008)’ ‘온도(2009)’ 같은 노래들이 이번 공연을 앞둔 팬들의 신청곡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관객에겐 ‘오 이런 노래도 좋은데’, 소수의 열성 팬들에겐 ‘그래, 이 노래야’ 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곡들입니다. 11일 공연에선 이런 노래들 외에 ‘별의 순간’, ‘With Me’ 등 지난해 발표한 12집 수록곡들, 그리고 ‘우연히’, ‘날 울리지 마’, ‘처음 그 느낌처럼’ 같은 빠질 수 없는 히트곡들이 망라돼 3시간이 짧았습니다.

사진 도로시컴퍼니

이날 공연에서는 두번의 하이라이트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12집 수록곡인 ‘She was’를 부를 때였죠. “소녀가 숙녀가 되고, 숙녀가 엄마가 되어 한동안 잊고 지낸 꿈을 다시 찾으려고 할 때, 그 시절의 그 오빠가 다시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한다”는 신승훈의 말이 딱 그 자리에 있는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한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그래요, 삶은 짓궂은 농담처럼/지나고 보면 미소로 남죠/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선 그날엔/날 위해 모처럼 웃어요’ 라는 가사처럼 말입니다.

사진 도로시컴퍼니

또 한번은 신승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발라드 히트곡 메들리 때였습니다. ‘가잖아’,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보이지 않는 사랑’에 이어 ‘그후로 오랫동안’을 열창할 때, 모든 음악이 정지하고 신승훈은 반주 없이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불렀습니다. '하늘이여 나를 도와줘, 그렇게 울고 있지 말고'라는 그 유명한 구절이죠. 우연이지만 인이어(가수가 자신이 부르고 있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장비)가 빠져나간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음정 하나 틀리지 않는 묘기를 보여주자 거의 자동으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신승훈 본인도 “오래 기억될 상황 같다”며 감격스러워한 대목입니다.

총 6회의 공연이지만 매회 새로운 노래가 들어가고 무대 연출도 모두 바뀌는 공연. 신승훈은 10~12일 3회 공연을 마치고 잠시 휴식 사이, 17~19일의 후반 3회 공연을 위한 스태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작은 공연장을 쓰면 티켓 판매 수입보다 밴드와 기타 인력의 인건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공연 회수를 늘릴수록 수익이 적어지는 상황. “그래도 작은 공연장이라, 팬들과 확실히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아는 얼굴들을 발견하면 반갑기도 하고,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면 가슴 벅차기도 하고.”

11일 신승훈의 '리미티드 에디션' 공연장을 찾은 이문세가 공연 후 분장실에서 신승훈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 도로시컴퍼니

이날 객석에 있던 선배 가수 이문세는 공연이 끝난 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라는 말로 신승훈을 칭찬했다고 합니다. 사실 데뷔 36년차 가수를 ‘호랑이 새끼’라고 부르는 건 데뷔 48년차 가수나 할 수 있는 농담이겠죠. 신승훈은 이날 무대에서 이문세에 대해 “언제나 내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표”라며 변함없는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한국 발라드의 계보를 잇는 두 사람의 관계가 훈훈하기만 합니다.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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