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동해 (2) 고난 속 어머니 기도, 지구촌 오지 의료봉사 밀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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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동해(東海)'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따르셨던 외삼촌, 곧 청록파 시인 박두진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신 것이다.
어릴 적 묵향이 가득했던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갈 때면 어린 마음에도 그 이름의 무게와 기대감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맴돌았다.
그곳에서 5~6년간 청춘을 바치며 집안의 빚을 갚아 나가셨지만 아버지의 오랜 부재 속에서 삼남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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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계 감당하며 3남매 돌봐
청록파 시인 박두진 할아버지
‘동쪽 바다’ 축복의 이름 지어줘

내 이름 ‘동해(東海)’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따르셨던 외삼촌, 곧 청록파 시인 박두진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신 것이다. 동쪽 바다와 동쪽 하늘처럼 맑게 살라는 뜻과 함께 그 바다를 건너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축복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 묵향이 가득했던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갈 때면 어린 마음에도 그 이름의 무게와 기대감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맴돌았다.
하지만 내 유년기의 현실은 이름처럼 넓고 푸르지 못했다. 1971년.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서울 이태원에서 화양리로, 이어 경기도 광명의 가건물 주택으로 옮겼다가 다시 서울 신촌으로 이사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신촌은 서울에서 진학열이 가장 높은 학군이었다. 부모님은 팍팍한 살림 속에서도 장남인 내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맹모삼천지교를 택하신 듯하다.
똑똑하셨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다가 사업에 뛰어드셨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거듭된 실패와 빚보증으로 집에는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고 부모님의 다툼도 잦아졌다. 골목 어귀에서 술에 취해 큰 소리로 유행가를 부르며 귀가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하며 두려움을 달래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단상에 올라가 상을 여러 개 받았지만 사진사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값을 치를 돈이 없어 사진을 돌려보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아린 상처로 남아 있다.
결국 아버지는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셨다. 그곳에서 5~6년간 청춘을 바치며 집안의 빚을 갚아 나가셨지만 아버지의 오랜 부재 속에서 삼남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뼈아픈 장면이 있다. 학교에서 나눠준 갈색 육성회비 봉투에 아로새겨진 도장. 그리고 회색 표지에 매일같이 찍히던 어머니의 일수 도장이다.
어머니는 쉬는 날 하루 없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빚을 갚으며 일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지친 걸음으로 퇴근길을 돌아오시면서도 늘 크림빵 3개를 들고 오셨다. 삼남매를 먹이려 당신의 몫은 남겨두지 않았던 그 빵. 3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멘다.
가난과 우울 속에서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뿐이었다. 밖에서 뛰어놀기보다 방에 틀어박혀 닳고 닳도록 위인전과 SF소설을 파고들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문학자를 꿈꿨다. 비록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묵묵히 가정을 지켜낸 어머니의 뒷모습은 내게 가장 위대한 인생의 교과서였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어머니의 굽은 등을 보며 가슴에 새겼던 이 철칙은 훗날 척박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수많은 환자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울 수 있는 강력한 삶의 자산이 됐다. 눈물로 크림빵을 사 오시던 어머니의 기도가, 훗날 아프리카의 메마른 땅에 생명의 빛을 틔우는 거름이 될 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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