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상의 브랜드 스토리] 나이키·파타고니아… 20세기 브랜드와 21세기 브랜드

20세기엔 TV로 강력한 브랜드 구축
자사 제품 사지 말라는 파타고니아
철학·리뷰 중요한 21세기 대표 사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1999년,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두 단어가 신문과 방송에서 화제가 됐다. 그중 하나는 천년 단위를 의미하는 밀레니엄이었고 다른 하나는 Y2K였다. Y2K는 연도의 뒤 두 자리만 사용하던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잘못 인식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의 상태를 뜻하는 단어였다. 다행히 세상의 컴퓨터들은 2000년을 1900년으로 오인지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고 인류는 대혼돈의 시대를 무사히 피해갔다.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나의 관심사는 컴퓨터 오작동으로 인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세계적 문제보다 Y2K에 대처하는 각 기업과 브랜드의 광고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광고는 ‘문제없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와 같은 것들이었지만 나이키의 Y2K 광고, ‘the morning after’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20세기가 끝난 다음 날인 2000년 1월 1일 아침, 한 남자는 Y2K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어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달린다. 그가 달리는 길은 Y2K로 인한 혼란으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아침 루틴을 완수한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 광고는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으로 마무리된다.
20세기를 이렇게 기발한 광고로 마무리했던 나이키는 20세기 브랜드의 대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1971년 스우시 로고를 달고 세상에 태어난 나이키는 1987년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을 장착하면서 브랜드 파워를 더욱 강력하게 키워갔다. 그 중심에는 텔레비전이 있었다.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은 나이키의 모든 제품은 기술력을 갖춘 세계 각국의 하청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나이키는 TV 광고를 통해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당시 전 세계를 휩쓸었던 글로벌 브랜드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런 브랜드들의 광고를 담당했던 광고회사들도 함께 성장했다. 코카콜라 같은 메가 브랜드의 광고를 담당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었다는 것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주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우리나라 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광고는 소비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고 수많은 브랜드가 광고의 힘을 빌려 그 영향력을 키웠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부자 되세요’ 같은 광고 카피가 브랜드를 띄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 제품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광고 캠페인만으로도 강력한 소비자 인식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 유명한 광고 카피나 CM 송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이텔, 천리안 같은 컴퓨터 통신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프리챌이나 싸이월드 등의 초기 SNS로 전환됐던 시점은 21세기로 넘어가던 때와 거의 맞아떨어진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것이 산소처럼 원래 존재했던 것인 양 빠르게 적응했다. 이러한 패러다임 시프트는 브랜드 시장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표면적으로는 디지털 광고로 통칭되는 온라인 채널상 광고가 늘어났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TV 광고에 투입되는 예산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온라인 채널의 양방향성으로부터 시작됐다. 제품 사용이나 서비스 경험에 대한 리뷰와 공유가 일상화됨으로써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광고가 만들어주는 이미지의 힘보다 실제 사용자 후기와 그로 인한 구매 증가(또는 감소), 그리고 후속 공유 과정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급자가 결정한 메시지를 수용자가 받아들여 광고가 의도한 대로 브랜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사용자의 리뷰와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그 브랜드의 존재 이유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게 됐다.

21세기에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20세기(1973년)에 만들어진 브랜드지만 개인적으로 이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11월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를 창업한 이본 쉬나드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면서 환경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브랜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런 파타고니아의 생각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 바로 2011년 11월 블랙프라이데이였다. 모두가 세일을 통해 더 많이 팔기 위한 경쟁을 하는 이 시기에 파타고니아는 뉴욕타임스에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헤드라인이 쓰인 광고를 게재했다. 단순히 역설적인 카피로 주목을 끌기 위함이 아니었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수선센터를 운영하며 자신의 고객들이 입던 옷을 고쳐 입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아웃도어 의류를 많이 팔아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겠다는 생각 대신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비즈니스가 의미 있도록 만들겠다는 철학을 실천에 옮기는 여러 활동 중 하나였다. 이 광고를 계기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타고니아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고, 브랜드가 가진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옷을 사지 말라는 광고 메시지와는 달리 매출도 함께 늘어났다.
파타고니아가 강력한 브랜드가 된 과정을 되짚어 보면 나이키가 걸어온 길과는 사뭇 다르다. TV 광고가 역할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 브랜드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광고용 브랜드 슬로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창업자가 갖고 있는 강력한 철학이 브랜드에 그대로 투영됐고 진정성 있는 그런 모습들이 온라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공유됨으로써 브랜드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는 브랜드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기발한 발상의 TV 광고가 브랜드를 만들던 시대에서 창업자의 진정성 있는 철학이 브랜드의 영향력을 키우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근상 KS’ IDE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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