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건설안전, 처벌을 넘어 ‘예방 문화’ 정착을

2026. 4. 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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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건설산업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핵심 동력이었지만 이면에 ‘사고 공화국’이라는 불명예가 드리워져 있다. 2025년 기준 국내 건설업 부문에서 1만 명당 사고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경제 10대 국가만 놓고 보면 가장 높다. 건설안전은 이제 단순한 산업 이슈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주목하는 의제다.

「 처벌 위주로 경직된 중대재해법
건설안전특별법 발의로 부담 커
문화가 뒷받침돼야 제도 작동

건설 사고 예방을 위해 현장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한화 건설 부문은 지난해 9월 타워크레인의 핵심 부품인 와이어로프에 스마트 안전 진단 장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스마트 안전진단장비를 활용해 와이어로프를 점검하는 모습. 연합뉴스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2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돼 시행됐다.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안전의식 고양 등 긍정적 변화도 있었지만, 법 시행 후 재해 피해자가 오히려 늘었다. 특히 사망자 수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이는 기업 규모나 위반의 경중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결과 및 처벌 위주’라는 제도 자체의 경직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도 취지와는 다르게 산업에서는 경영자 개인의 징역형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기업들은 안전 시스템을 바꾸기보다 법적 대응에 내부 자원을 쏟고 있다. 건설투자 위축, 건설비 상승, 기술인력 부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업의 경영 환경을 중대재해처벌법이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장의 실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도 모자라 또 다른 처벌법이 건설업계를 압박할 움직임을 보인다. 발주자를 포함한 모든 산업 참여자들의 책임을 강화하는 ‘건설안전특별법(가칭)’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설계 단계부터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발주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확보하도록 의무화한 영국 사례를 벤치마킹한 법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법도 산업 현장의 수용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과 제도는 상식적이어야 공감대를 얻고 합목적적으로 해당 산업 현장에 수용된다. 어느 발주자가 최대 7년의 징역형을 무릅쓰고 건설 관련 사업을 하겠나. 물론 어떤 이념이나 경제적 성과도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할 수는 없다. 건설 현장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강조하는 방식이 관리자 처벌 강화에만 집착하면 곤란하다.

자동차 안전사고의 가장 큰 요인은 운전자의 안전의식이다. 우천시에 노면이 미끄러우면 도로관리자도 역할이 중요해지지만 그래도 기본은 운전자 본인의 주의 의무다. 자동차 결함이면 제조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현행 건설안전제도는 이런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고속도로 빙판 사고에서도 운전자의 주의의무보다 도로책임자만 탓하는 구조와 같다. 관리자에게만 처벌의 무게를 지우고, 현장에서 안전규정을 이행해야 하는 작업자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 속도 제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시속 30㎞로 제한하는 스쿨존이 처음 도입됐을 반발이 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쿨존 감속은 운전자의 안전의식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교통 문화로 자리 잡았다. 스쿨존의 핵심 교훈은 처벌보다 예방이다. 속도 제한은 사고 발생 후에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규율하는 장치다. 처벌 기준이 결과가 아니라 규정 준수에 놓여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건설안전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스쿨존에서 사고 여부와 무관하게 과속이 단속되는 것처럼 건설 현장에서도 이미 법제화한 규정에 따라 위반 자체에 대해 제재가 실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위험한 공법 선택이나 안전장비 미비 및 관리 부실은 관리자의 책임이지만, 안전장비 미착용이나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작업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경영책임자 또는 관리자에 대한 일방적 처벌만으로는 안전사고의 가장 큰 요인인 작업자의 안전의식을 바꿀 수 없다. 스쿨존 감속이 운전자의 의식을 바꾸고 안전운전 문화로 정착했듯이 건설 현장에서도 안전이 비용이나 규제가 아닌 가치로 인식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제도는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건설산업은 성장과 퇴보의 변곡점에 서 있다. 성장통이 있다고 성장을 멈출 수는 없다. 그 여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균형이다. 관리자와 작업자, 처벌과 예방, 제도와 문화 사이의 균형. 그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는 것이 ‘건설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현실적인 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문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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