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낳은 노래반주기…왕년엔 삽으로 동전 퍼날랐죠

고석현 2026. 4. 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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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환 TJ미디어 회장(왼쪽)과 윤나라 대표. 윤 회장은 “열심히 노래를 불렀는 데도 점수가 박하게 나와 노래방 기기가 괘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웃었다. 우상조 기자
음악을 알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1979년 군 복무를 마친 윤재환에게 고향 선배가 찾아와 일본에서 들어온 스피커 모양의 상자를 하나 보여줬다. 조용필이 일본에서 녹음한 8트랙 테이프 음원이 흘러나왔다. 청계천 ‘빽판’(불법복제 레코드판) 상가를 뒤져 부품을 구하고, 가구점을 찾아 껍데기를 맞춰 비슷한 기계를 만들어냈다. 한국 첫 ‘가라오케 박스’의 시작이었다.

국내 1위 노래방플랫폼사 TJ미디어(옛 태진미디어)의 윤재환(71) 회장은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첫 창업을 했다. 하지만 제품 출시 직후 터진 10·26 사건으로 국가적 애도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흥을 내는 ‘노래 사업’은 설 자리를 잃었다.

윤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2년 뒤, 아날로그 리듬박스와 에코 마이크를 들고 두 번째 창업에 나섰다. 사명은 ‘큰 별(太辰)’이 되자는 뜻의 ‘태진음향’. 그 회사가 TJ미디어가 됐다. 윤 회장은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기획과 엔지니어링에 전념하고 있으며, 경영은 장남 윤나라(42) 대표가 맡고 있다.

단순 기계 조립 수준을 벗어나 독자적인 개발 역량을 갖추기 시작한 분기점은 86년이었다. ‘라디오 기술’이란 일본 잡지를 읽던 윤 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반도체(음원 칩셋)에 컴퓨터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3년의 연구 끝에 89년, 8비트 중앙처리장치(CPU)를 탑재한 컴퓨터 자동반주기 ‘뮤지콤’이 탄생했다. 이제 뮤지콤이 연주할 곡을 담을 차례였다. 저작권 개념조차 희박하던 시절, 윤 회장은 집을 담보로 빌린 300만원을 들고 박춘석 당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확보한 18곡의 사용권이 TJ미디어의 자산 1호가 됐다. 뮤지콤의 첫 번째 수록곡은 남진의 ‘가슴 아프게’였다.

91년 부산대리점 점주가 “신기한 게 생겼다”며 윤 회장을 불러냈다. 그가 소개한 곳은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 한쪽 한평 반 남짓한 방이었다. 동전을 넣으면 컴퓨터자동반주기가 작동하며 화면에 노래 자막이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첫 노래방이었다. 로얄전자오락실 측과 협업하기로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윤 회장은 직접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자체 기술로 자막출력기를 만들고, ‘더 진짜같은 음악을 뽑아낼 수 있으면 인기를 끌겠다’는 생각에 악기제조사인 일본 롤랜드의 반도체를 제품에 탑재했다. 사람의 손으로 멜로디를 입력하는 걸 넘어서, 들리는 그대로 리얼 사운드를 입력하는 기술이 채용됐다. 600곡을 담아 93년 출시한 ‘프로500’은 업계의 센세이션을 일으켜 노래방과 유흥업소에서 큰 성과를 냈다.

판매가 폭증하면서 대리점들이 먼저 선수금을 들고 와 줄을 섰다. 매일 고속버스로 각지에 제품을 실어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전국을 돌며 수금할 정도였다. 윤 회장은 “수십만원 짜리 노래자동반주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어요. 당시 노래방은 1곡에 500원이었는데, 24시간을 돌려도 사람이 미어터졌죠. 삽으로 동전을 포대에 퍼 담을 정도였다니까요”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92년,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다. 세법 해석 변경으로 23억원의 ‘특별소비세 폭탄’을 맞은 것. 당시 그가 살던 목동 116㎡ 아파트 한 채가 3700만원 하던 시절, 사업을 포기하고 이민까지 고민했던 그를 살린 건 대리점주들이었다. 평소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점주들이 십시일반 선금을 내며 23억원을 모아준 것이다.

이 사건은 윤 회장에게 ‘초(超)준법 경영’이라는 철학을 심어주었다. 그는 “설사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회사는 더 깨끗하게 경영해야 하고, 회계와 세무는 한치의 흠결도 없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97년 코스닥 상장 역시 자금 조달보다는 “투명하게 경영해 업계의 무자료 거래 관행을 끊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무자료 거래’ ‘뒷돈 요구’ 같은 관행이 횡행했다. 대를 이어 이런 철학을 이어온 덕에 TJ미디어 윤나라 대표는 지난달 ‘납세자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제 시선은 세계로 향한다. 오티스엘리베이터에서 해외영업을 하던 장남 윤 대표가 2010년 회사에 합류해 동남아 수출을 본격화했다. 2020년 대표에 오른 직후엔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윤 대표는 “집합 금지로 노래방 산업이 고사 직전에 몰렸을 때, 오히려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는 역발상을 택했다”며 “더 정확한 점수를 측정하는 ‘퍼펙트 스코어’, 옆방과 대결을 펼치는 ‘방대방’이 그때 투자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공간을 더 작게 나눈 ‘코인노래방’도 생겨나며 노래방 트렌드는 이어지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TJ미디어가 현재까지 전세계에 판매한 노래방 기기는 100만 대가 넘는다. 국내 노래방 시장에서 TJ미디어의 점유율은 약 65%, 특히 코인노래방 시장에선 97%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윤 대표는 “세계적으로 노래를 ‘듣는 서비스’는 있지만, ‘부르는 서비스’는 아직 독보적인 기업이 없다”며 “신시장을 발굴해 새로운 플랫폼 기업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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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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