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벼랑 끝 대치에…韓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나틱시스, 韓성장률 1.0%로 대폭 하향
“에너지 충격 장기화시 스태그” 물가 4%대 압력

중동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21시간 마라톤 협상이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중동발 긴장이 한층 고조되면서, 올해 한국 실질 GDP 성장률이 1%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과 함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협상은 11일 오후부터 12일 새벽까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약 21시간에 걸쳐 진행됐지만 합의 없이 종료됐다.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미국 협상단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한 이란 대표단과 이날 새벽까지 장시간 담판을 벌였으나 핵 프로그램과 제재 완화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국교가 단절된 이후 47년 만에 열린 미국과 이란 간 고위급 회담이었던 만큼 기대가 컸지만, 양측은 ‘레드라인’을 두고 끝내 평행선을 달렸다.
미국 측 협상단을 이끈 JD 밴스 부통령은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레드라인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결코 수용할 수 없는지 최대한 명확히 전달했다. 그러나 이란은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다”면서 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이어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움직임에 맞선 ‘역(逆) 봉쇄’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서 “세계 최강인 미 해군을 동원해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에 통행료를 낸 선박에 대해서도 공해상 차단을 지시하며 “이 모든 것은 핵 개발 야욕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군사 행동 가능성도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이란의 해군은 사라졌고 공군도 없어졌으며 방공망도 무력화됐다”며 “적절한 시점에 남은 이란 군사력을 완전히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를 향해 발포하는 이란인은 누구든 지옥으로 보낼 것”이라며 군사적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양측 협상이 결렬된 직후 국제 원자재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브렌트유 가격은 하루 만에 8% 이상 급등해 배럴당 103달러를 넘어섰고, 유럽 가스 선물 가격도 18% 가까이 치솟았다.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며 유가가 더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구 트위터)에 워싱턴 지역 휘발유 가격 지도를 올리고 “지금 가격을 즐기라. 곧 갤런당 4∼5달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며 맞불을 놨다.
커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저성장의 늪
중동발 충격은 한국 경제 전망을 빠르게 뒤흔들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원유 수입액은 28억4000만달러(약 4조233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했다. 지난 2월 20억달러, 3월 23억달러에 이어 석 달 연속 증가세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유가 상승은 곧바로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 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을 합친 용어다. 통상적으로 경기가 호황일 경우 실업자 수는 감소하고 물가가 상승한다. 반대로 불황일 경우 물가 상승 속도가 늦춰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이같은 상식에서 벗어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진입하면, 시장의 불확실성과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소비를 제한한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줄인다. 그 결과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또 다시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소비와 고용이 타격을 받으면 성장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시장과 산업이 경직돼 저성장의 늪에 갇히는 상태가 된다. 한국은 이미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체감한 나라다. 1975년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24.7% 상승했고, 국제수지는 18억9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삶도 그만큼 팍팍해졌다.
해외 투자은행과 국제기구들도 일제히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는 올해 한국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1.0%로 0.8%p 내렸다. 나틱시스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 아시아 국가들이 중앙은행이 도울 수 없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며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수입 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에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도 2.0%에서 1.6%로 하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지난 10일 중동 전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충격을 한국 경제에 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2022년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지역이 충격을 많이 받은 반면 이번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율이 큰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중”이라며 “미래에 에너지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영향이 장기화하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고 경고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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