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다더니 메가폰 잡은 거장, 사생활까지 좇은 다큐팀

김상목 2026. 4. 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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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김상목 기자]

2013년 9월 6일, 애니메이션 거장, 스튜디오 지브리 간판 미야자키 하야오가 공식 은퇴 기자회견에 등장한다. 일본 바깥으론 그다지 공개되지 않던 가정사 경험담이 듬뿍 담긴 <바람이 분다> 공개와 맞물려 이미 수차례 은퇴를 고려하던 감독의 확실한 마침표다. 앞으로는 신작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70줄 고령이라 현실적이란 반응이 뒤따른다.

하지만 '신화'가 된 노장은 은퇴를 번복하고 10년 만에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복귀한다. 2023년 7월 14일 개봉한 신작은 포스터 1장 외에 아무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신비주의 마케팅과 압도적 흥행을 선보인다.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상도 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2023년 12월 NHK에서 방송한 특집 다큐에 각종 미공개 영상 등을 더해서 재편집해 이듬해 3월에 나온 확장판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새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미야자키 감독의 작업 과정과 일상,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70대 은퇴를 선언한 날로부터 신작을 개봉하기까지 3598일 여정을 담았다.

3598일 장대한 여정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 (주)엔케이컨텐츠
지난 2016년 다큐멘터리 <네버 엔딩 맨: 미야자키 하야오>를 공개할 만큼 미야자키 하야오 기록 작업에 정통한 NHK 다큐멘터리 PD 아라카와 가쿠는 복귀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신작은 도무지 완성될 기색이 없다. 평화로운 은퇴 생활을 누리며 '지브리 할아버지'로 동네 아이들의 인사와 이웃의 존경만 받아도 충분한 노장이 굳이 명예에 누가 될 험한 길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팀은 7년여 시간 동안 몇 차례 변곡점을 경유한 신작 과정을 꿋꿋하게 담아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한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 거치는 여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을 드러낸다.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설'이 되기에 차고 넘칠 위업을 축적한 상태다. 수많은 거장이 말년에 범작을 내놓으며 완벽한 경력 대미를 밋밋하게 마치는 경우는 수많은 사례로 모자를 텐데, 전성기 자신과 경쟁해야 하는 황혼의 노장은 굳이 모험을 감수하는 걸까? 솔직히 하고픈 이야기가 남아 있긴 할까? 누구라도 궁금한 질문을 제작진의 카메라는 심연을 파헤치며 도전하는 셈이다.

다큐멘터리 기록자의 제 1 덕목, 친밀한 관계 형성에 기반한 근접성을 제작진이 확보하고 있음을 영화는 시종일관 드러낸다. 대개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사내 풍경'과 대외 활동 위주로 소개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궤적을 내밀한 주거 공간, 개인사 밀착 취재, 다면적 접근법으로 파훼하며 지브리와 하야오의 오랜 팬이라도 쉽사리 보기 힘든 지점까지 끌어낸다.

오랜만의 신작, 스튜디오 역대 최대 제작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 Risk, Hi Return'의 제작 방식, 어마어마한 제작 기간은 관록이 붙은 지브리 역전의 용사들에게도 처음 경험하는 도전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시나리오를 직접 창작하고, 원화의 기초가 되는 스토리보드를 손수 그리는 방식을 고수하는 하야오의 작업은 그야말로 사람을 '갈아 넣는' 차원인 데다, 70에서 80줄로 향하는 고령은 과거의 속도를 내기 벅차기만 하다.

'방망이 깎는 노인' 혹은 '이태리 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 (주)엔케이컨텐츠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도리가 없으니 최선의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 오랜 기간 함께한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를 구박하며 예산을 조성하고, 지브리 정예 스태프는 물론, 후배 감독도 총출동한다. 게다가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의도적인 경쟁 구도를 도입하기까지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역작들에 필적할 몇 안 되는 콘텐츠, <신세기 에반게리온> 작화감독 혼다 타케시를 영입한 것. 서로 다른 화풍과 성향에 우려를 표하는 이도 나오지만, 하야오는 그래서 뽑았다고 밝힌다.

왜 경지에 오른 거장은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신작에 매달리는 걸까? 차기작 제작에 망설이던 즈음 미야자키 하야오는 본인과 더불어 지브리 스튜디오의 양대 산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오랜 동료이자 애증의 라이벌, 타카하타 이사오의 타계 소식을 접한다. '파쿠상'이라 호칭할 만큼 각별한 관계이자 <반딧불이의 묘>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 등의 스튜디오를 상징하는 대표작을 완성했던 그의 죽음은 거대한 영향력을 차기작에 더한다. 어쩌면 감독의 인생 복기 형태에 머무를 뻔한 신작의 세계는 몇 단계 더 확장한다.

물론 진통이 없을 리 없다. 파쿠상에 이어 오랜 동료 스태프들이 줄줄이 세상과 작별한다. 은퇴 선언 당시 그냥 한 편 더 하라고 응원하던 친구도, 오랜 업계 스승이자 '사부'라 부를 몇 안 되는 선배도 연달아 별세한다. 정작 감독은 자신이 제일 먼저 죽을 줄 알았다며 착잡함에 빠진다. 한 번 부고 소식을 접하면 몇 달 내내 진도를 내지 못한다. 생각은 복잡계로 무한정 진입하는 중이다. 주변에서 빤하게 바라보는 스태프들 근심도 함께 증폭된다.

옛 친우들과의 작별은 안 그래도 만만하지 않게 철학적 성찰로 출발한 신작의 세계관을 더욱 깊고 진하게 우려낸다. 생과 사의 경계를 초월하듯 점점 감독의 머릿속은 현실과 꿈의 간격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과 시대의 난맥상에 예술가가 대응하는 방식은 거대한 조화를 구축한다. 그렇게 미래 세대에 전하고픈 노익장의 한계를 초극하려는 의지가 분출된다.

상상력에 숨을 불어넣는 연금술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 (주)엔케이컨텐츠
이미 노년에 접어들며 삶 이후에 대해 성찰을 거듭하던 하야오는 파쿠상과 다른 지인들의 죽음에 깨달음을 얻는다. 슬픔과 연민에 더불어 살아남은 자가 생의 마지막까지 추구해야 할 실천 수행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이 시시각각 화면에 표시된다. 막히면 돌아가고, 때로는 정면 돌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놓칠 수 없는 몇 가지 절대 원칙을 제외하면, 그동안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않던 권위도 스스로 내려놓는다. 그를 아는 이들에겐 사뭇 놀라운 풍경이다.

마음대로 원화가 그려지지 않거나 아이디어를 확정하지 못 할 때 정신 사납게 떨어대는 발가락, 애증과 독설이 뒤섞인 신랄한 주변 인물 평가, 파쿠상의 고집을 점점 닮아가는 완벽하지 않으면 서두르지 않는 작업 태도가 한데 어우러진다. 제작 과정 전반을 조력하는 스즈키 토시오 PD는 자금 마련도 벅찬데 하야오의 푸념과 투정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 고생 잔뜩 시켜놓고 '사기꾼'이라며 작품 속에 박제까지 해 놓았다.

그런 밀도는 <그·어·살>이 황금시대 부활의 덧없는 욕망 대신 세상의 난맥상을 직시하면서도 열린 자세로 삶을 살기 위한 철학적 탐구로 직진하게 만든다. 이미 관객이 극장에서 확인한 '역대급' 신작의 여운이 다시금 소환되는 순간이다. 이게 이런 맥락과 배경 아래 탄생했구나 싶은 지적 흥분의 찰나가 연거푸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다큐멘터리는 오리지널의 역사적 탄생 배경을 거듭 복기하며 관람 당시의 감흥을 소환하려 한다.

그래서 본 작품을 보고 나면 <그·어·살>을 다시 찾게 되고, 영화만 봤다면 반가운 향수의 소환으로 답해야만 할 신세에 놓인다. 극장에서 볼 때 아리송하던 캐릭터와 설정 배경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 (주)엔케이컨텐츠
그렇게 역작이 탄생한다. <그·어·살>이 좌초하면 스튜디오 지브리 전체가 휘청거릴 위협에 가슴 졸이던 관계자들은 개봉 첫날 압도적 반응에 회색이 돌고, 연이어 아카데미상과 참 인연이 멀던 하야오에게도 경사가 닥친다. 감독은 덤덤할 따름이다. 세속적 성공에 매달리지 않는 거장의 품격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여정도 종착역에 다가간다. '동지'라 해도 어색할 것 없이 가까워진 피사체와 카메라의 상관성.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 마냥 자화자찬은 찾아볼 곳 없이, 질문은 거듭된다. 설마 또 다음 창작에 나설 건가요? 화면을 지켜보던 관객도 침을 꿀떡 삼키며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릴 법하다. 그러나 이미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소식을 접한 것처럼, 하야오는 더는 은퇴 예고를 날릴 생각이 없다. 앞서간 친구들의 몫까지 살아남은 자라면 슬픔과 함께 미완의 숙제를 생의 마지막까지 수행해야만 한다.

장난스럽게 영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차기작 구상과 함께 이제껏 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거장의 전모가 머릿속에 깊숙이 새겨진다. 우리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업들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들, 더 나은 세상을 희구하는 열망과 순수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모험 활극의 쾌감이 <그·어·살>말고도 화면에 속속 등장하는 지브리 대표작들의 클립을 통해 부활하기 시작한다. 추억 깃든 재회와 함께 관객이 그 영화들에서 느꼈던 감흥이 돌아온다.

거장은 이런 사서 하는 고생을 "결코 흉내 내지 마세요"라 충고한다. 그러나 녹슬기는커녕, 한층 더 깊어진 사려와 광폭 시야를 목격한 안팎의 누구나 기꺼이 동참할 수밖에. 제작진은 부르기만 하면 달려갈 테고, 관객은 가슴 졸이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음 신작을 기다릴 것이다. 그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 다큐멘터리는 그 믿음을 확고부동의 차원으로 승격하는 주문이다. TV 다큐멘터리 총집 구성은 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작품정보>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Hayao Miyazaki's how do you live
202|일본|다큐멘터리
2026.04.15. 개봉|120분|12세 관람가
감독 아라카와 카쿠
출연 미야자키 하야오, 스즈키 토시오, 혼다 타케시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2024 77회 칸영화제 칸 클래식 초청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 (주)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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