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줄 알았던 시간대... '역대급 캐릭터'로 대박난 시트콤

양형석 2026. 4. 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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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는 아재] 방송가에시트콤 열풍 주도했던 <순풍 산부인과>

[양형석 기자]

방송가에서 특정 장르가 사랑을 받으면 타 방송국에서도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유행처럼 번질 때가 많다. KBS의 공개 코미디 <개그콘서트>가 크게 흥행하자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MBC의 <개그야>가 신설됐다. 2000년대 중·후반 <무한도전>이 '대세 예능'으로 큰 사랑을 받은 후에는 각 방송국에서 경쟁적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을 신설해 <무한도전>에 도전장을 던졌다.

1993년 <오박사네 사람들>, 1995년 <LA 아리랑>을 방송하며 '시트콤의 선구자'로 떠올랐던 SBS는 1998년 3월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시트콤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 시트콤은 2년 9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영되면서 평일 저녁 시청자들의 웃음을 책임졌다. 한국 방송가에 본격적으로 '시트콤 열풍'을 몰고 왔던 오지명과 선우용녀, 박영규, 박미선 주연의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였다.
 <순풍 산부인과>는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은 '국민 시트콤'이었다.
ⓒ SBS 화면캡처
코믹함과 진지함 사이를 넘나드는 배우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1980년대 초반 극단 생활을 하면서 연기를 시작한 박영규는 1985년 MBC 베스트극장 <초록빛 모자>에 출연하며 TV 연기를 시작했고 이듬 해 MBC 특채 탤런트로 선발됐다. 1980년대 후반 준수한 외모와 신사적인 이미지를 앞세워 많은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던 박영규는 1989년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 활동을 병행했고 타이틀곡 <카멜레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이렇다 할 대표작을 내지 못한 박영규는 슬럼프에 빠졌다. 그렇게 1980년대 후반에 잠시 사랑 받았던 '반짝스타'로 남는 듯 했던 박영규는 1998년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기존의 신사적인 이미지를 버리고 미달이 아빠를 연기하면서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영규는 1999년 MBC 드라마 <국희>에서 절친을 배신하고 암살을 사주하는 악역 송주태 역을 맡았는데 당시 시청자들은 미달이 아빠와 송주태 사이에서 커다란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1999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순풍 산부인과>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주유소 사장을 연기한 박영규는 2002년 훗날 '거장'이 되는 장항준 감독의 데뷔작 <라이터를 켜라>에서 비리 국회의원 박용갑 역을 맡았다.

2003년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와 드라마 <다모>를 통해 또 한 번 시청자들에게 큰 혼란을 준 박영규는 2004년 교통사고로 아들을 떠나 보내며 5년 넘게 활동을 중단했다. 2010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2>로 복귀한 박영규는 2014년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을 맡아 엄청난 연기 내공을 보여주며 KBS 연기대상 우수상을 받았고 시상식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한 소절을 불러 현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박영규는 <정도전> 이후 <어셈블리>와 <화정>, <김과장>, <다시 만난 세계>, <너의 등짝에 스매싱>,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 <런 온> 등 현대극과 시대극, 코믹한 역할과 진지한 역할을 가리지 않고 연기 활동에 매진했다. 박영규는 어느덧 연예계에서 '원로'라 불릴 수 있는 만 72세의 노장 배우가 됐지만 작년에도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와 시트콤 <빌런의 나라>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9시 뉴스와 맞대결을 벌인 '국민 시트콤'
 젠틀한 이미지의 배우 박영규는 <순풍 산부인과>를 통해 코믹한 밉상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 SBS 화면 캡처
아직 케이블TV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종편이나 OTT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1990년대까지 지상파 방송국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그리고 매일 밤 9시는 당연히 '엄마가 좋아하는 일일 드라마가 끝나고 아빠가 뉴스 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순풍 산부인과>는 9시 뉴스가 한창 방송되는 9시25분에 '무모한 편성'을 했음에도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방송가에 '시트콤 열풍'을 주도했다.

<순풍 산부인과>는 20세기말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을 배경으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오지명 원장의 집안과 그 주변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다룬 시트콤이다. 특히 처갓집에 더부살이를 하는 민폐 사위 박영규를 통해 IMF 외환위기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몰락한 아버지의 모습을 어둡지 않고 코믹하게 그려내면서 경제위기로 고통 받던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과 위로를 선사했다.

<순풍 산부인과>는 3년 가까이 방영되면서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상당히 잦았지만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을 통해 등장인물 교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특히 오원장의 셋째 딸 오소연(김소연 분)이 유학을 이유로 하차한 후에는 미국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둘째 딸이 귀국했다는 설정으로 이태란이 투입됐다. 송간호사(송선미 분)가 하차한 후에는 오혜교(송혜교 분)의 동창 허영란이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순풍 산부인과>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일일 시트콤의 특성상 여러 명의 작가가 함께 각본을 썼다. 그 중 양희승 작가는 <오 나의 귀신님>과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일타 스캔들>의 각본을 썼고 송재정 작가도 <W>,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유미의 세포들> 시리즈를 집필한 스타 작가가 됐다. 정진영 작가와 김의찬 작가 역시 <황태자의 첫사랑>, <그저 바라보다가> 등을 공동 집필했다.

폭발적인 사랑 받았던 미달이

젊은 시절 악역 전문으로 이름을 날렸던 오지명 배우는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과 <오경장>을 거쳐 1998년 <순풍 산부인과>의 오원장 캐릭터로 '시트콤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1996년 MBC의 청소년 드라마 <나>에 출연하며 주목 받기 시작한 허영란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이 크게 위축됐지만 <가을동화> 전까지는 송혜교 못지 않게 주목 받던 라이징 스타였다. 허간호사는 귀엽고 발랄하면서 엽기적인 면까지 갖추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로 짝사랑하는 권오중에 대한 집착이 스토커 수준이다. 하지만 후반부 권오중이 아프리카 오지로 촬영을 떠나면서 허영란도 함께 하차했다.

김소연과 이태란, 송혜교, 김래원 등 많은 라이징 스타를 배출했던 <순풍 산부인과>에서 탄생한 최고의 스타는 역시 '미달이' 김성은이었다. 미달이는 <순풍 산부인과>의 마스코트로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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