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부산·대구를 서울처럼...균형 발전의 '게임체인저' 등장
[안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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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5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가 뿌옇다. |
| ⓒ 연합뉴스 |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켰더니 직원들은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오고, 가족은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혁신도시는 숙소 도시가 됐고, 기업 생태계는 형성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서울 같은 도시를 몇 개 더 만들 수 있는가'다.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 서울의 역동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역동성을 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다른 지역에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의 목표여야 한다.
글로벌 데이터가 보여주는 두 가지 모델
도시 집중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쿄, 파리, 뉴욕, 런던 등 선진국 메가시티는 예외 없이 자국 경제의 거대한 엔진 역할을 한다. 그런데 동일한 메가시티 국가들 사이에서도 전혀 다른 두 가지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과잉 집중형'이다. 파리와 뉴욕은 도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자국 평균의 2.5배, 1.5배에 달한다. 한 도시가 국가 경제를 대표하는 구조로, 나머지 지역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성장의 동력을 잃어간다.
두 번째는 '분산 성장형'이다. 독일의 라인-루르 광역권과 도쿄는 흥미롭게도 도시 1인당 GDP가 자국 국가 평균과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 이는 도시가 작아서가 아니다. 독일의 경우 함부르크, 뮌헨,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복수의 경쟁력 있는 대도시권이 병렬로 발전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도시가 독보적으로 클 이유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서울 같은 도시를 여러 개 만드는 모델'의 실물 사례다.
중국도 주목해 볼 곳이 있다. 바로 '특구(特區) 경쟁 모델'이다. 특정 구역에 차별화된 규제와 세제를 허용하고, 그 성과를 다른 지역이 벤치마킹하며 전국으로 퍼트리는 방식이다. 중앙정부가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경쟁하며 자율적으로 최선을 찾는 구조다. 선전이 그랬고, 상하이 자유무역지구가 그 예다.
서울 같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일자리, 교육, 의료. 지금까지 이 세 가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대규모 물리적 인프라 투자가 필요했다.
인공지능(AI)은 이 방정식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AI 원격의료는 의료의 사막지대인 지방에도 사실상 '보이지 않는 3차 병원'을 세운다. AI 기반 온라인 교육 플랫폼은 지방 학생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서울 학생과 동일한 품질로 접할 수 있게 한다. AI 행정 자동화는 인구 5만의 소도시가 인구 50만 도시 수준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AI가 새로운 산업 지형 역시 바꾼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용지만 있으면 된다. AI 스마트팜은 농촌에 첨단 제조업을 이식한다. AI 기반 콘텐츠·제조 스타트업은 반드시 강남에 있을 이유가 없다. 지방이 AI 인프라를 선점한다면, 오히려 수도권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질 수 있다. 싼 땅, 저렴한 에너지, 낮은 인건비, 이것이 AI 시대에는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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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이 스스로 '다른 게임의 규칙'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
| ⓒ 연합=OGQ |
법안의 핵심 철학은 간단하다. 지역이 스스로 '다른 게임의 규칙'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안은 크게 다섯 가지 핵심 조항으로 구성된다.
첫째, 초광역 AI 자치 특구 지정이다. 전국을 3~5개 정도의 초광역권으로 재편하고, 각 권역에 'AI 선도 특구' 지위를 부여한다. 특구는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다. 유럽의 지역혁신정책(Regional Innovation Policy)이 정의하는 '자립경제가 가능한 최소 인구 단위(300만~500만 명)'에 맞춰 설계된 실질적 경제권이다. 스페인 카탈루냐(750만), 싱가포르(563만), 홍콩(734만)이 독자적 경제 정체성을 갖는 것처럼, 한국의 초광역권도 독자적 성장 전략을 가져야 한다.
둘째, 차별화 세제 권한의 부여다. 초광역권이 기업·주민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와 주민세를 권역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현재 중국 선전은 홍콩 수준의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며 국제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 각 주(州)도 세율을 달리하며 기업 유치 경쟁을 벌인다. 한국에서도 '어느 지역에 기업을 세우면 세금이 더 유리하다'라는 선택지가 생겨야 한다. 이것이 지방의 자생력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셋째, 주력산업과 일자리 정책의 자율화다. 각 초광역권이 자신의 강점과 조건에 맞는 주력산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맞는 AI 기반 산업 지원·인력 양성·일자리 정책을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이 해양물류와 AI를 결합한 스마트 항만 클러스터를 선택한다면 중앙의 승인 없이 이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하고, 대구 경북이 AI 바이오 헬스를 선택한다면 독자적인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분야별 정책에서 지역별 종합 행정으로의 전환이다. 현재 우리나라 행정 구조는 '영역(Domain)별 칸막이'로 설계되어 있다. 교육부는 교육만, 산업부는 산업만, 보건복지부는 복지만 담당한다. 지역의 현실은 이 칸막이를 따르지 않는다. 청년 유출 문제는 일자리와 주거와 교육이 동시에 얽혀 있고, 고령화 문제는 의료와 돌봄과 재정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초광역 AI 자치 특구는 이 모든 분야를 하나의 지역 통합 플랫폼 위에서 AI로 연결하고 조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된다.
다섯째, 초광역 간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메커니즘이다. 권역 간 시스템 경쟁이 '제로섬 싸움'이 되지 않도록 성과 공유와 협력 제도를 병행한다. 한 권역에서 성공한 AI 정책 실험을 다른 권역이 신속하게 벤치마킹할 수 있는 공식 채널을 만들고, 권역 간 협력 사업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중국의 선전 특구 성공 사례가 전국으로 확산하며 중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한 것 같이, 이런 메커니즘을 한국형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 법안을 주목해 봐야 할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지방에 더 많은 권한을 주자는 기존의 지방분권 주장과 다르기 때문이다. 핵심은 시스템 경쟁을 통한 자원의 '자율' 재배분이다. 인구와 기업과 투자가 중앙의 명령이 아닌, 각 지역의 매력과 성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지역 격차 해소는 억지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뒤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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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55일 앞둔 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투표 참여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2047년이면 전국 229개 지역이 모두 크든 작든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전국 기초지자체의 40%는 사실상 기능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예측도 있다. 헌법적 해석을 두고 논쟁만 한다면, 그사이 지방은 소멸할 것이다.
그러니 2026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인물 선택이 아니다. 서울을 눌러서 지방을 살리겠다는 발상은 지난 30년의 실험으로 충분히 검증된 생각이다. 그 결과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반대 방향에서 생각해야 한다. 광주를 서울처럼, 부산을 서울처럼, 대구를 서울처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것, AI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기술적 수단이고, '초광역 AI 자치 특구법'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초의 제도적 수단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2881 필자 안준모는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기술경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 및 산업 혁신 정책, AI 거버넌스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상임대표, R&D Management Journal(SSCI) 부편집장,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중국기술굴기대응연구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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