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SNS, 이재명의 SNS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2026. 4. 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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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SNS 글 한줄에 전세계 경제·산업·안보 '요동'
외교적 결례 아랑곳없이 동맹국 정부, 정상까지 비난
우리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난' SNS 글, 트럼프와 다를까
북한 천안함 폭침에는 "사과하란다고 사과를 하겠나" 더니...
AI 생성 이미지

전세계 소셜미디어(SNS) 사용자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꼽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SNS에 올린 한 줄의 글에 주가와 환율, 유가, 코인 가격이 출렁이고, 주요국 정부와 기업에 비상이 걸리니 전 세계가 트럼프의 SNS 계정을 숨죽여 지켜봅니다.

애초에 일국의 대통령이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 자체가 트럼프 등장 이전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가 SNS에 올리는 글의 내용과 화법은 더 상식을 벗어납니다. 자국 내에서 정적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적성국, 심지어 동맹국까지 적나라하게 비난합니다. 동맹국 정상을 저속한 용어로 조롱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동맹국을 돈 뽑는 기계 취급을 하거나, 주권 국가의 영토를 자국에 편입하겠다거나, 국제 협약의 존재를 무시하는 식의 언사가 모두 미국 대통령의 SNS 계정을 통해 올라옵니다.

이 정제되지 않은 트럼프의 SNS 행보를 보며 다른 나라 국민들은 ‘그래도 우리 대통령은 저런 일까진 벌이지 않아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엑스(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옥상에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쓴 것입니다.

그러자 다음날 이스라엘 외무부가 공식 X 계정을 통해 “이 대통령이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앞두고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고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영상의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경솔하게 의견을 올렸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즉각 X에 글을 올려 재반박했습니다.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은 접어두고라도 그 말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을 걸고, 전 세계인들이 즉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는 건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만큼 그 무게가 막중합니다. 미국 대통령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도 외교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설령 뒤에서는 온갖 욕을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온갖 외교적 수사를 갖다 붙이며 고상한 척 점잔 떠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나라든 우리와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크게든 작게든 얽혀 있고, 언젠가 그쪽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 외교부에는 외교관과 소속기관 직원까지 수천 명이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외국 정부와의 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물 밑에서 읍소를 하든, 협박을 하든, 뒷거래를 하든,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 궂은 일을 대신 해주는 분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직접 SNS에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외교관들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수습하느라 어떤 고충을 겪고 있을지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과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들의 입장은 또 어떨까요.

이재명 대통령은 토론에 능한 인물입니다. 승부욕도 강하죠. 그런 인물의 특징 중 하나는 말싸움에서 물러날 줄을 모르고, 그 과정에서 종종 냉소와 독설을 덧붙인다는 것입니다. 이번 이스라엘 외교부와의 SNS 충돌에서도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설전을 벌이며 논란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인권은 최후의 보루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프다”. 구구절절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대통령 이겨라”하고 마냥 응원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최근의 중동 전쟁 발발과 확전에도 핵심 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SNS에서 그걸 지적하고 비난한다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정부가 즉각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겠습니까.

불과 며칠 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아달라는 천안함 유족에게 “사과하란다고 사과를 하겠나”라고 답한 것으로 한 언론을 통해 전해진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북한과 달리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에 대해 ‘사과하란다면 사과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우리 경제와 산업, 안보까지 영향을 미치는 트럼프의 돌발적인 SNS 행보로 받는 스트레스는 우리 같은 소시민보다는 한 나라를 책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8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그런 심정은 접어두고 그를 한껏 띄워주는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 수사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트럼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그의 나쁜 점까지 배우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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