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주 화욜 물어볼께여"... 토요일 새벽 문자에 돌아온 아홉 글자

오성훈 2026. 4.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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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4년 차 직업계고 교사로 살면서 우리 아이들을 '따개비'에 비유하곤 했다.

지난 9일 목요일, 분당 두산타워에서 열린 KSVF 포럼에서 나는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다(관련 기사: 학교 화장실을 빌려줬더니...기회로 되돌아왔다 https://omn.kr/2hq8h). 그날 주고받은 명함들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로 연결될 소중한 '씨앗'이었다.

"간절한 설계를 하곤 했습니다.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중심인 기업과 우리 아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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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이 맺어준 인연, 직업계고 아이들에게 닿은 어른들의 응답

[오성훈 기자]

씨앗을 얻다, 그러나 미뤄진 마음

나는 34년 차 직업계고 교사로 살면서 우리 아이들을 '따개비'에 비유하곤 했다. 바위에 딱 붙어 거친 파도를 견디듯, 학벌 중심 사회의 틈새를 비집고 오직 기술 하나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 외로운 따개비들에게 어른들의 따뜻한 손길이 닿는 일은, 결코 우연을 기다리는 요행이 아니라 치열하게 기회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지난 9일 목요일, 분당 두산타워에서 열린 KSVF 포럼에서 나는 수많은 기업인을 만났다(관련 기사: 학교 화장실을 빌려줬더니...기회로 되돌아왔다 https://omn.kr/2hq8h). 그날 주고받은 명함들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로 연결될 소중한 '씨앗'이었다. 당장이라도 감사의 메일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로 돌아오니 산적한 업무들이 나를 붙들었다. 아이들의 일상은 늘 긴박했고, 그렇게 금요일 하루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마음 한구석엔 '그들이 나를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또박또박 써 내려간 진심

결국 토요일 새벽,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교 문을 열었다. 존 크롬볼츠가 말한 '계획된 우연'은 행동하는 자에게만 미소 짓는 법이다. 고요한 교정에 앉아 책상 위에 명함들을 펼쳐 놓았다. CEO들의 기억 속에서 서울로봇고라는 이름이 흐릿해지기 전,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메일을 써 내려갔다. 특히 D그룹의 부회장에게는 오랜 시간 가슴에 품어온 '설계도'를 꺼내 보였다.

"간절한 설계를 하곤 했습니다. 대한민국 로봇 산업의 중심인 기업과 우리 아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이었습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채용의 기회를 열어달라는 간곡한 요청. 토요일 새벽의 정적을 깨고 전송된 이 '또박또박한 진심'에 부회장으로부터 짧고도 명쾌한 답신이 돌아왔다.

"담주 화욜 물어볼께여."

미사여구 없는 아홉 글자였지만, 주말에도 실무를 챙기겠다는 기업 리더의 실행력이 담긴 묵직한 응답이었다. 뒤이어 K 교수를 통해 인천의 강소기업으로부터 "세계 1등으로 키울 인재를 추천해달라"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전해졌다.

안개 속의 거미줄, 그리고 완성된 연대
▲ 짙은 안개가 걷힌 산책길에서 마주한 거미줄 밤새 이슬을 맞으며 한 줄 한 줄 엮었을 거미의 노동에서 실습실 아이들의 숙련된 손길을 본다.
ⓒ 오성훈
일요일 아침, 산책길에서 마주한 짙은 안개가 걷히자 나뭇가지 사이로 정교한 거미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밤새 이슬을 맞으며 한 줄 한 줄 엮었을 저 고된 노동의 결과물. 누구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겠으나, 내게는 아이들이 실습실에서 묵묵히 갈고닦는 기술의 숙련 과정처럼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거미줄의 마지막 매듭이 지어졌다. K 교수가 보낸 메시지에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박사-삼성 출신의 취업 전략 전문가로, 전국 최하위권 취업률을 기록하던 대학을 불과 수년 만에 전국 1위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가 서울로봇고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준비된 행동이 끌어당긴 인연들이 그물망처럼 엮이며, 따개비처럼 버텨온 아이들에게 마침내 어른들이 지지대가 되어주는 순간이었다.

다시, 내일을 설계하며

토요일 새벽의 정성이 맺어준 인연은 일요일 저녁 전문가의 교육 지원 약속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거미가 한 줄의 실을 뽑아내기 위해 수천 번의 몸짓을 반복하듯, 금요일의 분주함을 넘어 토요일 새벽의 고요 속에서 '또박또박' 진심을 전해온 시간들이 '계획된 우연'이라는 이름의 촘촘한 연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거미는 안개가 걷힐 때를 기다리며 밤새 그물을 짠다. 나 역시 다가올 화요일을 기다리며 아이들의 미래를 정교하게 설계한다. 화요일 아침, 안개 걷힌 자리에 우리 아이들의 꿈이 눈부신 거미줄처럼 선명하게 빛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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