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戰 끝나도 유가·운임 불안"…비상등 켠 금융권

권해영 2026. 4. 1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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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공급망 복구 수개월 소요
해상 운임 동반 급등에 산업계 전반 '비용 쇼크' 우려
기업 부실·충당금 부담 확대…하반기 연체율 상승 압력 커질 듯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결렬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기대가 꺾인 가운데 국내 금융권은 비상 대응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 정세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설령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이미 촉발된 유가 상승과 해상 운임 급등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은행들의 판단이다. 이에 금융권은 전쟁발 '비용 쇼크'의 여파로 향후 가시화될 기업 부실과 충당금 부담 확대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고유가·고운임 장기화 전망…산업 전반에 번지는 '비용 쇼크'
연합뉴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중동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리스크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고유가·고운임 장기화 시나리오를 전제로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종전이 이뤄지더라도 훼손된 에너지 인프라 복구와 공급망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국제유가와 해상 운임, 환율이 동시에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취약 업종 여신 건전성을 일 단위로 점검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은 고위험 업종을 선별해 영향을 분석하고 기업 신용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유가와 금리 상승 충격을 반영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한층 고도화했다.

실제로 유가·운임 등 비용은 쉽게 안정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단기 에너지 전망에서 글로벌 원유 가격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현물 가격의 올해 전망치를 기존 배럴당 78.84달러에서 96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정상화되더라도 공급망 복구와 생산 정상화에는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다.

해상 운임 역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쟁 전인 2월 27일 1333.11에서 이달 10일 1890.77로 약 42% 급등했다. 중동 노선 축소와 우회 운항, 전쟁 리스크에 따른 보험료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또 다른 은행 임원은 "중동 원재료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등 유가 민감 업종이 먼저 타격을 받겠지만, 원자재와 운임 동반 상승으로 수입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석화와 항공뿐 아니라 산업 전반으로 비용 부담이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동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중고차 업계 역시 수요 위축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물발 충격, 금융 부실 전이 우려…은행 건전성 관리 '비상'

은행권은 경기 회복 지연 속에서 중동 리스크까지 겹치자 기업의 상환 능력 저하와 대출 연체·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은행의 조달 비용과 기업의 이자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휴전 이후 일부 하락했지만 현재 3.8% 수준으로, 중동 사태 이전(3.5%대)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중동 사태의 직격탄을 맞는 업종은 석화업계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원재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가동률 저하가 장기화되고 있고, 이에 따라 올해 적자 폭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는 나프타분해시설(NCC) 5개사의 부채비율이 30% 상승하고 순차입금 규모가 15조원 안팎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동 리스크에 따른 은행권 익스포저 규모도 상당하다. 유가 민감 업종인 석화·해운·항공 관련 여신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기준 약 30조원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관련 산업 대출은 지난해 4분기 기준 99조3200억원에 달해 간접 영향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부실 여신 규모가 이미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은행권의 체력은 약화되는 모습이다. 4대 시중은행의 무수익여신 잔액은 지난해 말 3조8468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다. 이 가운데 기업대출이 2조6123억원으로 가계대출의 두 배를 웃돌며 기업 부문을 중심으로 부실 압력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전체 은행권의 기업대출 연체율 역시 같은 기간 0.5%에서 0.59%로 상승했다.

금융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유가를 핵심 변수로 반영한 은행권 정기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필요시 추가 자본 확충을 요구할 방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단기적으로 순이자마진(NIM)이 확대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기업 부실 증가와 채권 평가손실 등으로 자산 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중소기업 경영난과 자금 부담 심화, 수입물가 상승까지 겹치며 하반기 연체율 상승 압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사상 최대 순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수익성보다 건전성 관리가 우선되는 국면에 진입했다"고 덧붙였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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