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파마 알츠하이머 진단 ‘핵심 파트너’ 부상한 뉴로핏 [글로벌 트렌드로 읽는 K-제약바이오]
일라이 릴리, 인실리코 메디슨과 4조 원대 비만약 기술이전… 엔비디아와는 1.4조 원 AI 연구소 공동 설립
앤트로픽은 5800억원에 신약 업무 프로세스(워크플로우) AI 스타트업 품어
국내에서는 뉴로핏이 릴리의 알츠하이머 PET 분석 자동화 성공… 연내 공동 논문 출판으로 ‘특허 장벽’ 구축 나설 것으로 알려져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는 매일같이 대형 M&A, 신약 허가, 임상 데이터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 이슈들이 국내 시장 및 관련 업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주는 보도는 많지 않다. [글로벌 트렌드로 읽는 K-제약바이오]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주요 흐름을 추적하고, 그 안에서 국내 시장 및 기업의 좌표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최근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인공지능(AI)은 단순한 후보물질 발굴 보조 도구를 넘어, 천문학적인 자본이 오가는 핵심 파이프라인이자 업무 프로세스(워크플로우)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AI 기반 신약 개발사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과 27억5000만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대규모 R&D 협력 및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업프론트(선급금)만 1억1500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다.
이번 계약으로 릴리는 인실리코의 전임상 단계 경구용 치료제(GLP-1 수용체 작용제)에 대한 글로벌 권리를 확보하게 됐다. 상용화를 앞둔 릴리의 경구용 비만약 ‘오포글리프론’이 1일 1회 복용인 반면, 인실리코의 생성형 AI 플랫폼 ‘파마닷에이아이’를 통해 도출된 이 후보물질은 일주일에 한 알만 복용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AI 기반 신약이 기존 희귀질환 타깃을 넘어 글로벌 메가 트렌드인 ‘대사질환(비만)’ 주요 파이프라인으로 첫 진입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임상 단계 물질임에도 대형 제약사로부터 대규모 선급금을 이끌어내며, AI가 도출한 신약 물질에 대한 데이터 신뢰도가 크게 상승했다는 평가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도 제약 분야 AI 투자에 본격 나섰다. 올해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릴리와 공동으로 최대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5년간 투입하는 AI 공동혁신 연구소 설립을 발표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릴리의 신약 R&D 전문인력과 엔비디아의 AI 엔지니어를 한 공간에 배치해, 실험실(웻랩)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AI 모델이 24시간 학습하는 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릴리는 이에 앞서 엔비디아 블랙웰 울트라 GPU 1000기 이상으로 구성된 자체 AI 슈퍼컴퓨터 ‘릴리팟(LillyPod)’도 가동을 시작한 바 있다.
신약 발굴과 인프라를 넘어 바이오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AI를 접목하려는 빅테크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앤트로픽(Anthropic)은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코에피시언트 바이오(Coefficient Bio)를 약 4억 달러(약 5800억원)에 인수했다. 코에피시언트 바이오는 신약 개발 기회 발굴부터 임상 및 규제 전략 관리까지 바이오테크 워크플로우 전반을 지원하는 AI 플랫폼을 개발해 온 곳으로, 빅테크의 헬스케어·생명과학 분야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에서는… 뉴로핏, 글로벌 빅파마 알츠하이머 진단 ‘핵심 파트너’로 부상
빅파마, 빅테크, 반도체 기업까지 AI 헬스케어에 공격적으로 자본을 투입하는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 중 주목되는 곳이 뇌 질환 진단·치료 AI 전문기업 뉴로핏이다.
뉴로핏은 최근 릴리가 활용 중인 뇌 양전자단층촬영(PET) 영상 분석 방식을 자사의 AI 기술로 자동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릴리와 본격적인 상업화 협력을 위한 핵심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는 앞서 2024년 양사가 체결한 2건의 데이터 공유 계약(DTA)에 따른 후속 조치로 파악된다.
알츠하이머병을 확진하고 릴리의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와 같은 신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환자 뇌 속에 원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나 타우가 얼마나 축적되었는지 확인하는 PET 영상 검사가 필수적이다. 특히 릴리의 임상 결과, 타우 PET 정량값에 따라 치료제의 반응성과 효능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나 정밀 판독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판독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 숙련된 국내외 의료진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며, 기존에는 릴리 연구팀조차 복잡하고 수동적인 방식에 의존해야 했다. 이에 뉴로핏은 자사의 정량 분석 소프트웨어 ‘뉴로핏 스케일 펫(Neurophet SCALE PET)’을 적용해, 릴리 측의 수동 분석과 자사의 AI 자동 분석 결과 간에 매우 높은 수준의 일치도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양사가 연내 공동 논문 출판에도 전격 합의했다는 점이다. 뉴로핏의 독자적인 AI 기술력이 글로벌 주요 임상 현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바이오헬스케어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가 자사의 핵심 데이터 분석을 한국 기업의 자동화 기술로 구현하고 이를 공동 논문으로 출판해 학계에 알린다는 것은 사실상 기술적 진입장벽을 구축하는 것과 같다”며 “알츠하이머 진단 시장에서 뉴로핏의 글로벌 입지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빅파마가 AI로 비만약 파이프라인을 사들이고, 반도체 기업이 신약 연구소를 짓고, 빅테크가 임상 프로세스 자동화 기업을 품는 시대다. 천문학적인 자본이 오가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패권 경쟁 속에서, 알츠하이머 신약 처방의 필수 관문인 ‘진단 자동화’를 이뤄내며 릴리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뉴로핏이 어떤 좌표를 찍을 수 있을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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