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8800억원 메가펀드 나오지만…중소 VC 한숨 쉬는 이유

박승욱 2026. 4. 1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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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대형화로 사실상 대형 VC 독식 우려
초장기 펀드 결성…전례 없어 대형사 유리
대형 VC 쏠림, 초기 스타트업 투자 위축될 수도

한국산업은행이 8800억원 규모 초장기 기술투자펀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스타트업·벤처기업에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형 VC와 중소형 VC 간 격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8800억원 초장기 기술투자펀드 시동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오는 8월 초장기 기술투자펀드의 자펀드 운용사 선정을 목표로 초안 마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반적인 VC 펀드 만기가 8년인 것과 달리, 이 펀드는 10~20년의 장기 투자를 목표로 한다. 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딥테크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회수(Exit) 압박 없이 연구개발(R&D)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앞서 지난 2월 우리자산운용이 재정모펀드 위탁 운용사로 선정되며 산은 기술투자펀드의 닻을 올렸다. 전체 8800억원 중 5000억원은 스케일업 전용 펀드로 배정되어 투자 건당 금액을 대형화할 방침이다. 운용사는 목표 결성액의 75% 이상을 첨단전략산업 기업에 투자해야 하며, 투자 수단은 보통주나 상환권 없는 종류주식으로 제한해 기업의 재무 부담을 최소화했다.

"결국 대형 VC가 GP 선정될 것" 우려

중소형 VC 사이에선 초장기 기술투자펀드가 대형 VC 쏠림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펀드 대형화에 따라 중소형 VC는 소외되고 대형 VC만 펀드를 늘리는 양극화가 두드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펀드 대형화로 대형 VC가 운용사(GP)로 선정될 것이라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업계에선 개별 자펀드 규모가 1000억원 안팎의 대형급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중소형 VC 대표는 "초기 라운드 투자를 주로 투자해 중소형 VC가 선정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자본력과 인력을 갖춘 대형 VC 위주로 GP를 뽑겠다는 것으로 들린다"며 "200억원 규모의 일반적인 VC 펀드와 달리 한 펀드당 1000억원 등으로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운용 역량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 결국 은행계 대형 VC나 사모펀드(PEF)를 낀 대형 하우스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초장기 펀드가 결성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 역시 중소형 VC에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현재 국내 VC 펀드의 만기는 대부분 7~8년 수준이다. 투자금 회수가 늦어질 경우 만기를 일부 연장하는 사례는 있으나 처음부터 20년에 달하는 운용 기간을 설정한 경우는 거의 없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장기 프로젝트를 맡길 파트너 선정 시 딥테크 발굴 전문성보다는 VC의 영속성을 우선 지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신생 VC 대표는 "장기 펀드가 결성된 적이 많지도 않고 이를 운용한 곳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굳이 중소형 VC에 기회를 주긴 어려울 것"이라며 "경영 환경 변화에도 펀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형 VC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에선 중소형 VC의 기회는 줄어들면서 업계 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대형 VC 쏠림으로 생태계 위협

이런 상황에서 VC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VC 업계는 액셀러레이터(AC)나 중소형 VC가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 및 투자하고, 검증된 기업에 대형 VC가 후속 투자를 이어가는 구조다. 그러나 자금이 대형 VC 위주로 몰리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초기 라운드 투자 비중이 줄어들 수 있다.

대형 VC가 초장기 기술투자펀드로 초기 기업에 투자하더라도 스타트업 생태계 양극화는 피하기 어렵다. 수천억 원대 펀드를 굴려야 하는 대형 GP 특성상, 관리 효율을 위해 건당 투자 단위를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으로 크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자본이 소수의 기업에만 쏠리며 기업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부풀려지는 한편 수많은 초기 기업은 외면받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초기 라운드 투자는 이미 부진한 상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초기 라운드의 신규 투자 비중은 2024년 22.3%, 지난해 16.5%, 올해 15.2%로 감소세다. 이와 달리 후기라운드 투자 비중은 2024년 41.7%, 지난해 51.6%, 올해 52.0%로 증가세다.

VC 업계 관계자는 "정책 자금 배분 시 중소형 VC가 들어갈 수 있는 초기 기업 투자 전용 리그를 별도로 구성해 전문 분야에서 경쟁하며 초기 기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중소형 VC 역시 대형 VC가 하지 않는 특화 펀드를 조성해 차별화 전략을 내세울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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