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서명숙이 정한 비문 "쉿, 여왕님 깨실라"

이한기 2026. 4. 13.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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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기의 뷰] 4월 7일 '하늘올레' 만들러 떠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이한기, 김진석 기자]

[#1] 제주올레의 첫 보도자료와 '서명숙 부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김진석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2010년대 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제주올레 길을 낸 서명숙 이사장이 4월 7일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68세.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 서귀포 출신으로, 정치부 여기자 1세대로..."

2026년 4월 7일 (사)제주올레가 '서명숙의 부고(訃告)'를 보도자료로 냈다. 19년 전인 2007년 8월 31일에는 '제주올레의 탄생'을 알리는 첫 보도자료를 냈다. 3827자, 873개 낱말, 12개 문답, 200자 원고지 25매, A4 용지 4장 분량이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는데, 서명숙 이사장이 <오마이뉴스> 후임 편집국장인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며 보낸 것이다. 제목은 '제주올레 보도자료예요(서명숙)'. 친구인 허영선 시인의 메일 계정으로 보냈다.

'제주올레'라는 이름은 김진애 건축가(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아이디어를 채택한 것이었고, 당시 성신여대 교수였던 손석희 전 JTBC 총괄대표는 초대 이사진 8인방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세계자연유산의 섬, 제주도는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그 기막힌 아름다움에 반하는 섬이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음미하면서 느린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길은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차를 타고 훌쩍 둘러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쉽게 그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걸은 만큼 제주도가 보인다. 머무른 만큼 제주도가 보인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국내외 도보여행자들은 물론 가족단위, 개인이 여행을 왔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길, 그런 아름다운 제주도 길을 찾고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만든 비영리 법인단체이다."

"걸은 만큼 제주도가 보인다. 머무른 만큼 제주도가 보인다." 제주올레의 미션은 탄생 때부터 명확했고, 20주년을 눈 앞에 둔 지금까지 일관됐다. 서명숙은 "조금이라도 느리게 음미하는 길을 걷고 싶은 건 누구나의 욕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 나서줘야 했다"면서 "제주도에 길을 내면 (스페인 산티아고처럼) 전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먼저 걷기축제에 스며들었다.
ⓒ 김진석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먼저 걷기축제에 스며들었다. 맨 왼쪽이 안은주 대표, 바로 옆이 서명숙 이사장.
ⓒ 김진석
지금은 고유대명사가 된 '올레'라는 이름의 탄생 뒷이야기도 소개했다. "올레는 제주어로 집으로 통하는 골목길을 뜻한다. 올레는 고어로 '오래'이며 이는 '문'을 뜻하는 말"이라며 "길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올레는 매우 적합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발음과 영어자로 표기할 때 그 역시 어감이 효과적이고, 어감상 '제주에 올래?'라는 의미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이름 후보를 놓고 몇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건축가 김진애가 내놓은 이름 '제주올레'가 최종 낙찰됐다".

제주올레의 시발점, 1코스를 '말미(오름)~섭지코지'로 정한 까닭은 "예부터 제주도 한바퀴를 '시흥에서 종달까지'라고 했고, 시흥에서 보는 세계자연유산 성산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밝혔다. 360도로 제주도를 조망할 수 있는 말미오름은 제주도 동서횡단의 축이다. 서명숙은 이런 1코스를 구상하면서 '시흥→말미오름(두산봉)→종달리→성산포갑문→통밧알(조개체험장)→성산일출봉 해변→동암사절→수마포→광치기→사구언덕→신양해수욕장→섭지코지'를 열 번도 넘게 걸으며 사전답사 했다.

제주올레를 처음 만들 때부터 서명숙은 '느리게 (걷고), 오래 (머무는)'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느리게'는 여행자의 힐링, '오래'는 제주도민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위한 것이었다. '느리게, 오래'를 제주올레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본 것이다. 제주올레의 지향은 "인간이 인간답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찾고, 걷는다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미래를 여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 산티아고 길을 걷고, 제주올레 길을 내다
 서명숙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내정자와 편집국 차장급 이하 평기자들이 2005년 4월 15일 밤 '100분토론'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김진석
정치부 여기자 1세대인 서명숙은 22년가량 언론계에 몸담았다. 제주올레보다 더 긴 세월이다. <월간 마당>과 <월간 한국인>을 거쳐 1989년 창간 멤버로 참여했던 <시사저널>(현 <시사IN>)은 서명숙에게 친정 같은 곳이었고, 기자로서 '화양연화' 시절이었다. 당시 '편집장의 편지'는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서명숙은 글 잘쓰기로 소문난 기자였다. 나 또한 서명숙의 '편집장의 편지' 애독자였다.

<시사저널>을 그만 둔 뒤 잠시 공백기를 가진 서명숙은 2005년 4월 18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언론계에 복귀했다. 비슷한 시기 <한겨레>에선 권태선 편집위원장이 취임해 여성계에서는 '한겨레-오마이뉴스 여성 편집국장 취임 축하모임'(5월 19일)을 마련했다. 축하연 타이틀은 'We are the sisters, Good sisters'.

서명숙 편집국장은 답사를 통해 "선후배들에게 보여준 게 있다면 기자로서 끝까지 살아남아 여성 정치부장, 여성 편집국장이 된 것"이라며 그동안의 고충과 함께 "앞으로 오마이뉴스가 여성, 동성애자 등 소외된 약자와 마이너리티(소수자)에 대해 적극 관심을 갖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가게 하는데 일조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했던 문정우 <시사저널> 편집장은 "일상생활에서는 허술하고 '얼빵'한 서명숙 선배가 일에서만은 자신을 포함해 후배들에게 완벽하길 바랄 정도로 전력투구 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자타공인 다혈질인 언론인 서명숙의 별명은 '왕뚜껑'이었다. 일을 할 때는 불 같았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다.
 20년 전인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국여자 헤니를 만났고, 그와 함께 걸으며 각자 고향에 산티아고와 같은 길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 제주올레
 20년 전인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국여자 헤니를 만났고, 그와 함께 걸으며 각자 고향에 산티아고와 같은 길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 제주올레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가끔 의자 위에 올라서서 <곡예사의 첫사랑>을 흐드러지게 불러제꼈다.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 공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 흰 분칠에 빨간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언론계를 떠나서도 이 노래를 즐겨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서명숙은 2년의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2006년 7월 31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그만 두면서 언론계와 작별했다. 이유는 딱 하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과로와 경쟁에 내몰려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그에게 길은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어줬다. 편집국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서명숙은 임기 말에 나홀로 독서와 사색, 가벼운 산책을 일상의 루틴으로 삼으며 생기를 되찾아갔다.

2006년 9월 산티아고 도보 순례에 나선 그는 36일 동안 '꼬닥꼬닥, 놀멍 쉬멍'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온전한 치유와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 만 1년 뒤인 2007년 9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발족했고, 1코스를 개장했다. 2012년 11월 제주올레 21코스까지 완성했고, 제주의 해안 길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됐다. 제주올레를 시작한 지 5년만의 일이다. 현재 제주올레 길은 전체 27개 코스, 총 길이 437km다.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주올레는 없었을 거라고 서명숙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전진할 수 없는 구간에 뗏목이나 징검다리를 놓고, 울퉁불퉁한 돌멩이를 평평하게 고르고, 토사가 쓸려나가지 않게 잔디로 뗏장을 입히고, 말과 소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목장문을 해달아야 비로소 하나의 길이 되는", 그래서 "이들의 수고로운 손과 발, 굵은 땀방울이 아니었더라면 당신이 오늘 걷는 올레길은 없었을 것"이라며 '올레 탐사대'의 수고를 늘 가슴에 새겼다. 안타깝게도 1·2대 탐사대장을 맡았던 두 동생 서동철·서동성은 누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올레 탐사대뿐만이 아니다. '바당올레'라고 불리는 올레 8코스. 제주도 남쪽 월평마을에서 시작해 대평포구에서 끝나는 16.3km 구간. 난이도는 상. '바다에 밀려 내려온 용암이 굳으면서 절경을 빚은 주상절리와 흐드러진 억새가 일품인 열리 해안길'을 지나는 이 코스는 해병대의 도움을 받아서 '해병대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제주도 북쪽 13코스에는 민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길을 만들어준 특전사 숲길도 있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전투를 벌인 군인들이다.

[#3] "길에는 좌우도 없고, 국경도 없다"
 2017년 6월 몽골올레 1·2코스 개장 행사가 열렸다.
ⓒ 김진석
 2017년 6월 몽골올레 1·2코스 개장 행사가 열렸다.
ⓒ 김진석
"나는 올레가 역사나 생태, 문화가 아닌 치유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뭘 가르쳐주는 길이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의 시련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를 성찰토록 하면 된다. 제주도에 역사유적이 많고 빼어난 경치도 많지만 올레는 평범한 제주 주민들의 삶을 보고 그동안 숨어 있던 은은한 아름다움의 숲과 해변들을 지날 뿐이다. 이야기는 올레를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다."|<조선일보> 2010년 7월 4일 인터뷰

"십수년 동안 나눴던 이야기보다 제주올레 일주일 동안 나웠던 이야기가 더 많았다는 어느 부자(父子)의 이야기, 이별여행으로 왔던 올레였는데 재결합여행이 돼버린 젊은 커플,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던 차에 올레를 경험하고 제주 이민을 준비하고 실행한 사람들, 한 번 발을 잘못 들여놔 돌아가는 그 순간부터 다시 찾아올 준비를 하는 올레 중독자들…."|<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2010년 8월 출간)

한 번은 서명숙에게 '제주올레를 만들고나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게 무었이냐'고 물었다. 조건반사처럼 답했다. "올레 길을 걸으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고. 힘들 때마다 그는 올레꾼들의 이런 사연들을 떠올리며 치유를 받았다. 그는 늘 "길은 제주올레가 냈지만, 그 길의 주인은 걷는 사람들"이라고 되뇌였다.

제주올레 초기부터 그가 강조했던 것은 '올레꾼, 제주 사람들, 자연'이 모두 행복한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안티 공구리(콘크리트)'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 번은 지자체에서 길을 정비한다고 올레 코스의 흙길에 공구리를 친 걸 보고, 한탄하며 안타까워 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있던 공구리도 걷어내야 할 판에, 없던 공구리를 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2013년 12월 일본 규슈올레의 고코노에·야마나미 코스 개장 행사에 참석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김진석
 제주올레와 규슈올레의 '올레교류의 밤' 행사.
ⓒ 김진석
"길에는 좌우도 없고, 국경도 없다"는 게 서명숙의 지론이다. 이게 현실로 나타난 게 '규슈올레'다. 2011년 8월 제주올레는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와 '규슈올레 조성을 위한 업무제휴 협약'을 맺었다. 올레라는 용어 사용은 물론이고, 간세(조랑말을 형상화한 제주올레 상징물)와 리본, 화살표 등의 표지까지 한국에서 만들어 보내는 방식에다 로열티까지 받기로 한 '문화 브랜드 수출'이었다. (관련기사 : 규슈올레, 지친 일본을 치유할 수 있을까? http://bit.ly/FPGluv )

이듬해인 2012년 2월 29일부터 3월 3일까지 사가현 다케오 코스, 오이타현 오쿠분고 코스, 구마모토현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코스 등 규슈올레 1~4코스가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다. '무늬만 협약', '무늬만 수출'이 아니었다. 기획 단계부터 코스 선정 및 수정 작업, 개장 행사까지 제주올레가 함께 했다. "올레에서 중요한 건 생태관광(eco-tourism)보다 힐링(healing)"이라는 '올레정신'에 초점을 맞췄다.

규슈올레 첫 개장 행사 전날, 서명숙 이사장은 한일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규슈올레가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고도성장과 아스팔트 문화에 지친 일본인들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레 정신을 살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일본 관계자의 말처럼 제주올레는 제대로 된 길을 만들기 위해 깐깐하게 심사하고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섰다. 서 이사장이 규슈올레에 대해 "자연만 일본 것이지, 명칭과 시스템을 전부 수출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자부심에 바탕을 둔 것이다.

올레 철학은 '연대'에서도 드러난다. 제주올레는 여러 나라와 인연을 맺고 있다. 2010년부터 스위스 레만호수 와인길, 영국 내셔널 트레일인 코츠월드 웨이, 캐나다 브루스 트레일 구간 등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다. 개방하되 강요하지 않으며, 서로의 장점이 상대방에게 스며들도록 천천히 기다려주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2017년 6월에는 두 번째 나라 몽골에 '몽골올레'가 탄생했다. 2018년 10월에 문을 연 일본 혼슈의 '미야기 올레'는 쓰나미 여파로 힘들어하던 미야기현의 간청을 '올레 정신'으로 수락한 결과다.

[#4] "하늘올레 만들려고 서둘러 가셨나요?"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복공원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2026.4.10
ⓒ 연합뉴스
▲ '헤니'의 영상편지 서명숙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국 여성 '헤니'와 만나 "돌아가면 서로의 길을 내자"고 약속한 게 제주올레길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지난 2월 헤어진 지 20년 만에 극적으로 재회했던 ‘헤니’ 씨가 보내온 영상편지가 영결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 황의봉
서명숙의 부고 소식을 전해듣고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이 또다른 길에 만난 인연, 캐서린 헤니(Katherine Henny)였다. 올해 그는 20년만에 헤니와 해후했다. 두 사람은 2006년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처음 만났다. 서명숙은 기자를 그만두고 왔고, 다섯살 위인 헤니는 오페라 제작자를 그만 두고 왔다. 짧은 만남에도 말이 잘 통했던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다짐했다. 돌아가면 "한국에서, 영국에서 각자 길을 내고, 서로 교류하자"고. 헤니의 제안이었다.

지난 2월 우여곡절 끝에 기적처럼 다시 만난 서명숙과 헤니는 그게 마지막 만남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서명숙의 부고 소식을 전해들은 헤니는 4월 10일 오전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영상 편지'로 서명숙에게 이별의 말을 전했다. 헤니는 "우리의 만남은 운명적인 조우였고, 우리의 이별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고,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산티아고에서처럼 다시금 길에서 만났고 길에서 작별했다.

"아, 명숙! 우리 곁을 떠나기에 이보다 더 안타까운 때가 있을까요? 내년이면 나의 아름다운 스페인 마을에서 함께 하이킹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나의 영혼의 단짝을 이제야 막 찾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만큼 당신이 우리 곁에 충분히 머물러 주었으니,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오래 전, 제가 씨앗 하나에 물을 주었을지는 모르나 그 땅과 햇살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씨앗으로부터 당신은 제주 해안선을 따라 마법 같은 정원을 일구어냈고, 고통받는 수백만 영혼을 위한 치유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 명숙, 당신을 발견하고, 당신의 그 비범하고 초월적인 업적을 목격하며, 제가 그 과정에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고 느낀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서명숙 이사장의 유해는 4월 10일 영결식을 마친 뒤 남국선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남국선원은 서귀포시 천연계곡 돈내코에서 산쪽으로 약 2km 정도 올라간 한라산 국립공원의 경계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 김금숙
 2017년 6월 몽골올레 1·2코스 개장 행사가 열렸다.
ⓒ 김진석
이사장 서명숙과 대표이사 안은주는 제주올레의 전체 역사와 맞닿아 있다. 기간도 그렇고, 기여도도 그렇다. 제주올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두 사람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안 대표는 이번 장례식에서 또다른 상주였다. 누구보다도 상심이 컸을테지만, 의연하게 장례 절차를 밟았던 그는 영결식장에서도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선배이자 동지인 서명숙에게 이별의 말을 전했다.

"'오감을 열고 길을 느리게 걷다 보면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만나고 그 끝에서는 결국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늘 하셨습니다. 길 위에서 내가 나를 마주하는 그날, 세상에 못 할 것도 없고 세상 두려울 것도 없다는 것을 이사장님은 자신의 인생 여정을 통해서 저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몸집은 작고 늘 흘리고 무언가를 늘 잃어버리기 잘하는 아주 지극히 인간적인 이사장 서명숙은 그래서 혼자보다는 늘 같이, 늘 함께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녀의 몸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서명숙의 길과 서명숙의 정신은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습니다."

1000만 영화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올레꾼이고, 그 누구보다 길에 진심인 배우 류승룡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부지런히 새끼 새에게 먹이를 물어나르는 어미 새처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고 응원이 되셨다"면서 "산이 보이면 마운틴뷰, 바다가 보이면 오션뷰, 서명숙 이사장님 알러뷰"라고 아쉬운 감정을 추도사에 녹였다. 서명숙의 부재를 너무나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은 "하늘올레를 내려고 그렇게 서둘러 갔느냐"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안은주 대표에게 "올레길에서 행복하라"는, 사람들에게 주는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고 떠난 서명숙 이사장의 유해는 4월 10일 영결식을 마친 뒤 남국선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남국선원은 서귀포시 천연계곡 돈내코에서 산쪽으로 약 2km 정도 올라간 한라산 국립공원의 경계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서명숙의 위패석에는 출생, 영면 연월일과 함께 묘비명 같은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30년 전쯤 서명숙 본인이 정한 문구라고 한다.

"쉿, 여왕님 깨실라"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먼저 스며들었다.
ⓒ 김진석
 올레꾼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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