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몸만 내려온 공공기관, 자금은 서울로…‘지방시대’ 역설 (上)

부산·대구 등으로 이전한 금융 공공기관들의 예치금이 여전히 서울 중심의 대형 시중은행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금의 선순환이라는 공공기관 이전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단위 예치금, 이전 지역 아닌 시중은행으로
12일 쿠키뉴스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방으로 이전한 금융 공공기관 5곳(한국예탁결제원·신용보증기금·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주택금융공사·기술보증기금)의 지난해 운용 예치금 14조원대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시중은행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으로 이전한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해 예치금 총액 6조8848억원 중 우리은행(1조4297억원), NH농협은행(1조4250억원), 신한은행(1조1450억원) 순으로 예치했다. 같은 부산 소재 한국주택금융공사도 NH농협은행(1조4300억원), 하나은행(8350억원)을 주거래은행으로 선택했고, 지역 거점인 부산은행은 2340억원으로 3순위에 그쳤다.
대구로 이전한 신용보증기금은 예치금 총액 3조1455억원 중 IBK기업은행(1조3730억원)·하나은행(6430억원)·우리은행(5975억원) 순이었다. 대구를 기반으로 한 iM뱅크(구 대구은행)는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부산에 있는 기술보증기금 역시 NH농협은행(4172억원)·하나은행(2531억원)·IBK기업은행(1560억원) 순으로, 지방은행은 상위권 밖이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만 지난해 은행권 운용 잔액 824억원 중 부산은행(344억원)이 1순위였지만, 전체 규모가 크지 않아 지역 환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흐름은 이전 초기와는 다르다. 기술보증기금은 2016년만 해도 부산은행, 전북은행, 광주은행이 예치금 상위 3개 은행을 모두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농협·하나·기업은행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도 2016년에는 부산은행·경남은행·광주은행이 상위권이었으나, 2018년 이후 하나은행이 1위를 이어가며 시중은행 중심 구조로 굳어졌다.
공공기관 측은 수익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의 기금운용평가에서 운용수익률 관련 지표 비중이 큰 만큼, 예치 시점에 수익률이 가장 높은 금융기관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금융 공공기관 관계자는 “운용자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신용등급 산출을 통해 예치대상 금융회사 풀(pool)을 구성하고, 예치시점에 예상수익률이 가장 높은 금융회사에 예치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에 남지 않는 돈…공공기관 이전 효과 반감
반면 이런 자금 운용 구조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자금의 지역 내 선순환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예치금이 여전히 서울 중심의 시중은행에 집중되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은행 입장에선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반발이 나온다. 공공기관은 수조원대 자금을 굴리는 이른바 ‘큰손’이다. 지방은행 입장에서 공공기관 예치금은 수신 기반과 직결되는 자금으로, 한 곳만 고객으로 확보해도 수천 명 개인 고객을 확보한 것과 비슷한 수신 효과가 난다는 설명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시중은행으로만 향하니 지방은행은 수신 기반이 흔들리고, 결국 지역 기업 대출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방은행은 단순한 이익 추구를 넘어 지역경제의 ‘생명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금을 바탕으로 지역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출을 공급하고, 벌어들인 이익 상당 부분을 지역 재투자·사회공헌·일자리 창출 등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구조다. 영업구역이 특정 지역으로 제한돼 자금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공공기관 자금이 지방은행으로 들어올수록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한 지방금융 관계자는 “시중은행이 수익을 내면 상당 부분이 결국 수도권으로 흡수되지만, 지방은행이 수익을 내면 지역사회 공헌·기업 대출·일자리 창출로 지역에 고스란히 환원된다”며 “지역은행이 잘 돼야 지역이 함께 크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반은행의 비수도권 여신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31.8%에 그친 반면, 지방은행은 81.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방은행이 지역 기업과 가계 금융을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유로 지방은행의 역할을 온전히 대체할 금융기관은 아직 없다고 보고 있다. 지역경제 성장과 지역금융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 지방은행은 지역 소재 기업 및 산업과 장기에 걸쳐 관계를 형성하며 정보를 축적해 온 만큼 위기 시 최후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다.
다만 행정안전부 연구에 따르면 지방은행은 지역경기 둔화와 디지털 금융 확산, 규제 부담이 겹친 복합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 예치금마저 시중은행으로 빠져나가면, 지역 안에서 돈이 돌고 도는 자금 순환 구조가 한층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껍데기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놓고 전세버스로 주말마다 직원들을 서울에 데려다주면 이전 효과가 없다”며 수도권 통근버스 운행 중단을 지시했다. 생활·소비 패턴까지 지역으로 옮기지 않으면 이전 효과가 반감된다는 취지다.
한 지방금융 관계자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킨 의도는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었는데, 막상 거래 은행을 고르는 단계로 내려오면 시장 경제 논리와 수익성이 먼저 작동하는 구조라 정책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방은행 관계자 역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이유가 ‘효율’은 아니지 않나”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서 내려왔다면 예치금고 주거래은행 선정 기준에도 이전 취지를 어느정도 반영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김태은 기자 taeeu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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