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로봇공학자 된 로봇덕후 “내가 만든 로봇이 TV 나오는” 꿈 이뤘죠

김현정 2026. 4.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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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공학자에게는 관찰력과 상상력,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변을 깊이 있게 관찰하다 보면 ‘이런 것을 이렇게 만들어볼 수 있겠다’라는 도전정신 같은 것이 막 생겨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적용해 나만의 로봇을 만드는 과정이 즐겁고 그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에 로봇 한길만 걸어온 것 같아요.”
한국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 스타트업 *에이로봇에서 기구설계팀장으로 일하는 강기훈(1996년생)씨는 초등생 때부터 20년 가까이 오직 ‘로봇’ 한 우물만 판 ‘로봇덕후’예요. 기훈씨가 나고 자란 울산광역시 울주군 구영리는 2000년대 초반 신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논밭이 전부였던 곳곳에서 아파트 건축공사가 이뤄졌죠. 터를 고르기 위해 땅을 파고 흙을 퍼담아 옮기는 포크레인(굴착기) 같은 중장비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요. 초3 때부터 방과후 활동으로 로봇창작 동아리에서 과학상자 키트로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는 평소 보던 포크레인을 로봇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에이로봇 소속 로봇공학자 강기훈씨가 2025년 11월 프랑스 낭시 ‘Humanoids 2025’ 학회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4를 선보였다.

“그동안은 과학상자 키트에 있는 매뉴얼(설명서)대로만 만들었어요. 그러다 차츰 매뉴얼을 벗어나는 작업을 상상하게 됐죠. 포크레인이나 소방차 같은 움직이는 자동차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오기가 생겨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보니 마침내 매뉴얼에는 없는, 제 머릿속 설계도에만 존재하던 것들이 눈앞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걸 보게 됐어요. 내 상상이 살아있는 실체가 되어 움직이던 그 순간이 저를 진짜 로봇공학자의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그저 로봇을 만드는 일에만 급급하다 초등 고학년이 돼 각종 로봇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기훈씨의 로봇사랑은 차원이 달라졌어요. 다른 친구들이 피아노나 태권도학원에 다닐 때 기훈씨는 엄마를 졸라서 사설 로봇학원을 가기로 했죠. 마침 집 근처 로봇학원에서 만난 정일창 울산창의로봇 원장은 그의 로봇 인생을 바꾼 첫 번째 운명 같은 존재였어요.
“선생님은 정해진 시간만 채워 수업만 하는 그저 그런 강사가 아니었어요. 저희랑 같이 날밤을 새우며 로봇을 같이 연구하셨고요.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로봇이 좋아서 학원을 운영했던 분 같았죠.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로봇을 만들다 보니까 대회도 나가게 됐고, 또 크고 작은 상도 받게 됐죠. 그런 것들에 고무돼서 로봇을 더 열심히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025년 2월 열린 MWC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4를 조립하는 에이로봇 연구진.

중·고교 시절에는 연 6회 이상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빠져들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이 시내 노래방이나 PC방으로 향할 때 기훈씨는 로봇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냈죠. 특히 중2 때 참가한 국제로봇올림피아드(IRO) 대회가 기억에 남아요. 기훈씨는 친구들과 팀을 이뤄 미션형 창작 부문에 참가했는데, 2시간 내에 볼링을 하는 로봇을 만드는 게 미션이었죠. 어떤 방식으로든 로봇을 만들고 10개의 볼링핀을 세운 후 로봇이 볼링공을 굴려 핀을 많이 쓰러뜨리는 팀이 승리하는 겁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미션을 받아 수행하는 방식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기훈씨가 처음 해보는 팀플레이라 더욱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죠.
보통 로봇대회는 로봇을 설계하고 조립하는 하드웨어와 로봇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게 코딩하는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는 ‘융합’의 과정이자 현장입니다. 팀플레이의 경우 아이디어는 팀원 전체가 함께 짜고 각자 역할을 나누어 한쪽에서 로봇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 코딩한 뒤 하나의 로봇을 완성해나가죠. 잘 안 풀릴 땐 서로 도우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팀플레이의 진짜 묘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로보컵 2024 현장서 보행 알고리즘을 테스트하는 모습.

고교생 기훈씨와 부모님은 로봇대회 수상내역으로 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요. 고3이 된 2014년, 입시제도에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적용되면서 대학 진학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기재 방식이 바뀌어 학교 내 활동 위주로만 기록하도록 지침이 내려와 학교 밖에서 받은 수상내역은 기재할 수 없게 된 거죠.
“한양대 로봇공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로봇 사교육 활동들을 생기부에 하나도 못 쓰게 돼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어요. 그때 인생 처음으로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재수를 선택한 그는 결국 성적만으로 2016년 한양대 로봇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기훈씨는 자신이 오직 로봇 한길만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로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해요. 시골에서 자라 열악했지만 창의력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 때마침 동네에 있었던 열정 넘치는 로봇 선생님, 묵묵히 자신의 꿈을 지원해주신 부모님 등이 다 그를 도왔다는 설명이죠.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열린 로보컵 2024에서 테크니컬 챌린지 1위를 하며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막상 로봇공학과에 입학하고 보니 이전까지 해왔던 로봇 제작 난이도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이전까지는 설계부터 코딩, 하드웨어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했었고, 그걸 전부 할 수 있어서 로봇을 좋아했는데요. 대학은 다 하기는커녕 전자·기계·코딩·AI 중 하나만 잘해도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죠.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를 깊게 할수록 결국 한 분야를 선택해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학 시절 내내 고민이 많았습니다.
코딩(소프트웨어) 위주로 연구해왔던 기훈씨는 4학년 들어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터닝포인트를 맞았어요. 에이로봇 창업자인 한재권 교수로부터 졸업작품 피드백을 받으면서 전공을 기구설계(하드웨어) 분야로 바꾸기로 결심한 거죠. 한 교수는 그의 로봇인생에 두 번째 운명 같은 사람이에요.

2025년 하반기, 에이로봇 연구실에서 바퀴 기반 이동형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 M1 개발을 마친 연구진들이 포즈를 취했다.

“자신만만하게 졸업작품을 보여드렸는데 교수님께서 조목조목 피드백을 자세히 해주셨어요. 그때 많은 깨달음을 얻었죠. 이후 몇 달간 교수님이 설명해 주신 것들을 곱씹으면서 저의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주변을 보는 시선이 생겼고 그동안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깨달았습니다.”
전공을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로 바꾸고 한 교수 지도 아래 2년간 융합로봇시스템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한 교수와의 만남은 기훈씨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었죠. 2020년부터 한 교수 연구실에서 휴머노이드를 연구하며, 매년 전 세계를 돌며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로봇 축구 대회인 ‘로보컵(RoboCup)’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기훈씨는 에이로봇의 독자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ALICE)’와 함께 매 순간 한계를 시험했죠. 에이로봇은 로보컵에서 2022·2023년 연속 ‘휴머노이드 어덜트 사이즈’ 부문 준우승(2위)을 했고, 2023·2024년에는 ‘테크니컬 챌린지’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세계 정상급 기술력을 입증했어요.

2025년 3월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엔터테인먼트 행사에서 앨리스 4가 음료 캔을 나눠주는 시연을 옆에서 지원했다.

2022년 에이로봇에 입사해 군 복무도 현역 입대 대신 3년간 전문연구요원으로 마친 기훈씨는 로보컵이 단순히 로봇이 축구 경기를 하는 대회가 아니라고 말했죠. 로보컵은 ‘2050년까지 인간 축구 월드컵 우승팀과 경기해 이길 수 있는 휴머노이드 팀을 만든다’는 담대한 목표 아래, 전 세계 과학자들이 로봇의 자율주행, 인공지능·제어기술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거대한 ‘집단지성의 실험장’이에요. 승패를 넘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를 앞당기기 위한 연구자들의 뜨거운 열정이 매년 축구장 위에서 펼쳐지는 셈이죠.
창업 8년차를 맞은 에이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 국내 최고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공동창업자 엄윤설 CEO와 한재권 CTO 등 소수 직원으로 시작해 2026년 4월 현재 직원 수는 50명이 넘죠. 엔비디아의 기술 지원 및 파트너십 프로그램인 ‘인셉션(Inception)’ 챌린지에서 최종 5개사에 선정된 에이로봇의 기술력은 특히 CES 2026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기조연설에서 소개할 정도로 그 역량을 인정받았어요.

2025년 대만 InnoVEX 현장서 글로벌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엔비디아 인셉션’에 참가한 에이로봇이 2관왕을 달성했다.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전에 나왔던 로봇과 다른 점은 외형에 크게 신경을 썼다는 점이죠. 기구설계를 맡은 기훈씨는 이 부분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어릴 적 꿈이 “내가 만든 로봇이 TV광고에 등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기훈씨는 이미 그 꿈을 이뤘죠. 눈 깜짝할 순간이지만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와 엄 대표, 그리고 연구원들이 우리금융그룹의 2026년 새해 광고에 등장했거든요.
아이로봇(I, Robot·2004)이나 월 E(WALL-E·2008) 그리고 AI와의 감정교류와 윤리문제를 다룬 그녀(HER·2013)까지…. 기훈씨는 어린 시절 감동적으로 봤던 로봇이 등장하는 SF영화가 그리는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됐다고 말합니다.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를 이끄는 아틀라스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일자리는 더욱 더 빠르게 사라질 것이며 이미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수많은 개발자를 해고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로봇공학자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요.

AI 및 로봇 산업 지원을 주제로 한 우리금융그룹 CF의 한 장면. 기훈씨는 미래 첨단 전략 산업의 주역으로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와 함께 등장해 기술력을 뽐냈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람이 하기 어렵고 힘든 일은 로봇이 다 대체할 겁니다. 코딩도 이젠 AI가 다 작성하죠. 그렇다면 사람은 로봇을 어떻게 잘 사용할 건지를 고민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더욱 더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기훈씨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문제나 AI가 인간의 삶에 깊이 침투해 일으키는 문제들을 깊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은 결국 철학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죠. “먼저 자기 주변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에너지를 쏟아붓는 경험을 꼭 해보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사실 수학·과학은 로봇이 물리적인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이기도 하니 로봇과 대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공부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요.”

*휴머노이드(Humanoid·인간형) 로봇: 인간 형태를 한 로봇. 인간처럼 생기고, 걷고, 말하고, 사물을 조작하고, 인간의 움직임과 상호 작용 방식을 흉내 내 일터와 가정에서 일을 대신하거나 함께하며 대화도 나눈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스스로 움직이며 학습하고 경험으로 체득해 다양한 환경에서 유연하게 적응하며 응용도 한다. 핵심 기술로는 센싱(감각), AI(인공지능), 액추에이션(구동·제어) 시스템이 꼽힌다.

*에이로봇(AeiROBOT): 2018년 설립된 한국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 스타트업.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내 창업보육센터에 있다. 로봇 디자이너 출신 엄윤설 CEO와 한재권 CTO(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피지컬 AI 기술을 접목한 이족보행 및 세미 휴머노이드 로봇(앨리스 시리즈)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작업 환경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인간 친화적 로봇을 통해 공장 자동화 및 물류 등 다방면에서 ‘모두를 위한 로봇’을 지향한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을 보완해 2014년 도입된 대학 입시(수시) 전형. 교과 성적(내신)을 정량화하여 줄 세우는 대신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전체 내용을 바탕으로 학업 역량, 진로 역량, 공동체 역량을 정성적으로 종합 평가한다. 2014년(2015학년도 대입)부터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에 공인어학성적 및 수학·과학·외국어 교외 수상 실적을 적으면 ‘0점’ 처리하거나 불합격시키는 규정이 본격적으로 강화됐다.


글=김은혜 객원기자, 사진=강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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