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아직도 암기?”…美 석학이 韓 로스쿨에 던진 경고

2022년 챗GPT 출시 후 생성형 AI는 3년여 만에 법조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판례 검색, 서면 초안 작성 등 저연차 변호사가 맡아 온 업무는 점차 AI에게 넘어가고 있다. ‘AI의 습격’에 미국 법학교육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 2일 만난 전 미국로스쿨협의회 회장 오스틴 패리시 교수(UC어바인 로스쿨 학장)는 “AI 시대에는 로스쿨이 로펌의 교육 기능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한국에서는 AI 발달로 저연차 변호사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지적이 있다.
A :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법조계가 겪고 있는 변화다. 초기에는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변호사가 수요가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반복적 업무는 AI가 대체할 수 있겠지만, 의뢰인과의 소통, 비판적 사고 등 핵심 역량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Q : 예를 들어 어떤 역량인가.
A : 저소득층 가정을 대리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내놓는 단순한 답이 아니라,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복잡한 절차를 어떻게 함께 헤쳐 나갈지 안내해 주는 사람이다. 또 AI에 여전히 부정확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것도 변호사의 몫이다.
Q :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면 저연차 변호사들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기르나.
A : 로스쿨이 실무 교육을 더 많이 맡아야 한다. 시장도 이를 요구할 거다. 암기보다는 실무 중심 교육을 늘리고, AI를 활용해 더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될 거다. 미국에서는 과거 로펌 내부에서 이뤄지던 교육이 점점 더 로스쿨로 이동하고 있다. 어떻게 AI를 활용하는지도 로스쿨에서 가르친다. 한국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로펌도 인력 승계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니어 변호사를 완전히 배제하는 구조는 지속되기 어렵다.

미국 로스쿨들은 이미 2010년대부터 AI 관련 교육을 도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예일대 로스쿨은 2014년 ‘AI·로봇과 법’ 과목을 개설했고, 하버드대·컬럼비아대·스탠포드대 등에서도 2017년 전후로 AI 규제와 법적 쟁점에 대한 과목을 신설했다. 챗GPT의 등장 후엔 실무적 AI 활용법을 가르치는 로스쿨이 늘었다. 2024년 미국변호사협회(ABA)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9개 로스쿨 중 83%가 AI 활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응답했다. 55%는 AI를 핵심적으로 다루는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Q : 미국에서는 AI 도입 후 커리큘럼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
A : 크게 세 가지다. AI 기술 자체를 가르치는 과목이 생겼고, 법윤리 같은 전통적 과목에서도 AI로 인해 생긴 여러 쟁점을 다룬다. 법률정보조사, 법문서작성 등 기초 과목들에서도 AI를 활용한다. 학생들에게 과제 수행 과정에서 AI를 실제로 활용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평가한다. 그 과정에서 AI가 내놓은 답변의 적절성을 가려내는 능력도 함께 가르친다.
Q : UC어바인 로스쿨은 언제부터 AI 교육을 시작했나.
A : 2018년부터다. 수업은 대체로 실무 전문가인 겸임교수들이 강의를 맡는다. 현직 변호사나 판사 등이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에서는 대형 로펌에서 운영을 담당하는 팀장급의 변호사가 AI 활용법을 가르친다. 일정 관리 같은 기초적인 활용부터 법원 제출 서면에 AI를 쓸 경우 이를 검증하는 법, 검증을 소홀히 하면 직업윤리 위반으로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까지 가르친다.

한국 로스쿨은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합격에 유리한 헌법·민법·형법 위주로 학점을 채우는 게 보편적이다. AI 수업은 대부분 일회성 특강에 그치고 있다. 올해는 23개 로스쿨의 1학년 ‘법률정보조사’ 등 교과 과정에서 리걸테크 기업들이 참여해 한 두 번의 특강 형식으로 AI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한양대 로스쿨이 ‘인공지능 법률 실무’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Q : 변호사시험 합격 위주로 운영되는 한국 로스쿨의 상황은 AI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보나.
A :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비슷한 논의가 있었다. 많은 암기를 요구하는 전통적 변호사시험이 실무에 필요한 능력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변호사시험이 맞는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변호사시험도 최소한의 실무 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패리시 교수는 2025년 미국로스쿨협의회(AALS) 회장을 역임한 법학교육 전문가다. 패리시 교수는 “AI로 실무가 크게 바뀔 거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관세나 이민처럼 사회의 핵심 이슈가 모두 법률의 맥락에서 전개, 논의되는 점을 보더라도 변호사의 역할과 영향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한밤중 왜 호텔서 외박했나…‘김건희 쌍욕’ 사건의 전말 | 중앙일보
- “이명박 이름만 돌림자 안썼다” MB, 친모 일본인설에 꺼낸 말 [이명박 회고록] | 중앙일보
- “트럼프, 이란 제대로 없애라”…Mr.에브리싱도 못하는게 있다 | 중앙일보
- '29금 영화' 따라하며 아내와 성관계…그 남편 법정 선 이유 | 중앙일보
- “성과급 13억” “5년 뒤 파이어”…삼성·SK하닉 ‘입사 고시’ 열풍 | 중앙일보
- 두바이 재벌들 몰려간다…중동 전쟁에 새 피난처로 뜬 이곳 | 중앙일보
- “중요부위 체모에 기름 붓고 불”…해병대 선임 끔찍 가혹행위 | 중앙일보
- 개미들 10일도 못 버텼다…‘육천피’ 가로막는 의외의 변수 | 중앙일보
- “민주당이 경북 빼고 다 휩쓴다”…국힘 내부서도 이런 전망 [6·3선거 D-51] | 중앙일보
- 父 영치금 벌러 학업 대신 막노동…고1 아들은 가장이 됐다 [부모 형벌 나눠 지는 자녀] | 중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