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보다 더 값진 건 복음… 생명 지키는 거룩한 일터로”
건설·설비 업계 살아있는 신화
임정열 전무이사 신앙 간증

대한민국 건설·설비 업계에는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인물이 있다. 공학 전공자도 어렵다고 하는 소방시설관리사·소방기술사·건축기계설비기술사를 50대에 모두 취득한 ㈜영설계엔지니어링 임정열(65) 전무이사다.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그는 수많은 중년에게 새로운 도전에 나설 용기를 북돋아 줬다. 세상은 그 도전과 공부 비법에 주목한다. 그러나 임 전무는 지난 7일 경기도 안양의 한 카페에서 “앞이 보이지 않던 삶의 어둠 속에서도 끝까지 나를 붙들어 주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 전무는 6·25 전쟁 직후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 마을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세 명의 형제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지극한 사랑 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하나뿐인 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나간 교회는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이자 삶의 전부였다”고 추억했다.
그의 신앙의 뿌리는 어머니의 치유 경험에서 비롯됐다. ㄱ자로 굽어 평생 고통받던 어머니가 기도를 받은 뒤 허리를 펴게 된 것. 임 전무는 “어머니는 평생 똑바로 누워 자는 게 소원이라 하셨는데 그날 이후 ‘정열아 엄마가 똑바로 잔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말했다. “그 일을 본 아버지가 ‘교회에 가도 좋다’며 길을 열어주셨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새벽기도에 나가며 강대상 앞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학창 시절 임 전무는 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장학금을 받아온 막내딸을 기특하게 여긴 아버지는 대학 등록금을 위한 통장까지 만들어주며 꿈을 응원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언니 집에 머물며 왕복 두 시간이 넘는 통학을 해야 했고 결국 인문계 대신 공고에 진학해 대학 진학의 꿈도 포기했다”며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컸던 만큼 상실감도 깊었지만 교회가 유일한 위로였다”고 말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3년간 일하며 돈을 모아 상경했고 헌책방에서 교과서를 구해 독학한 끝에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공부를 돕겠다’고 약속한 교회 오빠와 결혼했지만 단칸방 신혼살림에 아이가 생기면서 형편상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임 전무는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퇴사하면서 갓난아이를 두고 새벽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며 “폭우 속에서 손수레가 뒤집혀 흙탕물에 나뒹구는 우유팩을 보며 길 위에서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생계를 위해 청소와 가사도우미 일을 하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갈망으로 그는 뒤늦게 백석예술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 피아노 교습소를 열며 안정된 생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잇따른 사업 실패로 결국 집까지 처분해야 했다. 절망 속에서 그는 “하나님은 제게 어떤 분이신가요.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라며 원망 섞인 기도를 쏟아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어요. ‘너의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나를 주로 시인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만 바라보고 걸어오너라. 그것이 신앙이란다’라고 말이죠.”
그 깨달음은 부(富)나 성공이 아닌 오직 주님과의 동행 그 자체가 신앙이라는 본질적인 의미였다. 임 전무는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고 고된 삶이 이어졌지만 더 이상 환경은 내 평안을 흔들지 못했다”고 했다.
큰아들을 의대에 보낸 뒤 그는 50대에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소방 분야를 접하게 됐고 이를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다. 임 전무는 “업계 최고 권위인 소방기술사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며 “높은 연봉보다 다시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2007년 소방설비기사 취득을 시작으로 2011년 소방시설관리사, 2014년 소방기술사에 이어 2017년 건축기계설비기술사까지 차례로 합격했다. 엔지니어들의 꿈이라 불리는 자격증 3종을 준비한 그의 공부방은 교회였다. 임 전무는 “남들이 절에 들어가서도 공부하는데 교회라고 못 할 이유가 없었다”며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공부와 기도, 예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겼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억대 연봉의 전문가로서 고·초고층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 국가 주요 시설 안전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임 전무는 “영혼 구원이 신앙의 목적이듯 하나님이 맡기신 일터 역시 생명을 지키는 거룩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영혼 구원’이다. 매주 화요일 새벽기도 후 출근길 전도에 나서는 그는 자격증보다 더 값진 복음을 전하며 남은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임 전무는 과거 자신과 같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간을 지나며 깨달은 것은 내가 홀로 걸어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업고 오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걷는 그 걸음 끝에는 반드시 예비된 은혜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안양=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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