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화장이야”… 냉소서 찾은 블루오션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공부보다는 자신을 가꾸는 일에 관심이 많던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고향은 경남 양산의 한 시골 마을. 그의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동네는 좁았다. 영상 편집이나 미용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몰래 고데기를 만지며 '꾸미는 즐거움'을 알아가던 소년은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헤어 미용사 국가자격증을 따냈다. 청년이 된 소년은 전역한 지 일주일이 흐른 2018년 7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군적금으로 모은 30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그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9.9㎡(약 3평) 크기의 지하방에 짐을 풀었다. 낮엔 미용사로 일하며 가위를 잡았고 퇴근 후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다. 고향에서부터 갈망했던 영상 편집과 앱 개발 공부를 하면서 주경야독의 삶을 이어갔다. 미용 기술자로서의 숙련도만큼이나 그것을 세상에 퍼뜨릴 '그릇'에 대한 갈증도 컸던 시기였다.
구독자 35만여명, 남성의 ‘자기 관리’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브 채널 ‘관리는 하고 살자’의 운영자 김정원씨의 유튜버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남성 뷰티 브랜드 ‘두잉왓(Doing What)’ 대표이기도 한 그는 최근 청담동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 상경했을 당시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가진 미용 기술,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고 싶었어요. 낮에는 고객 머리를 만졌지만 밤에는 제가 세상에 던질 메시지를 편집했습니다. 그렇게 가위 대신 카메라를 잡는 시간이 점점 늘었는데, 이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믿었습니다.”
2019년 6월쯤 김씨는 일하던 미용실을 그만뒀다. 이렇게 살다간 평범한 기술자로 남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변에선 “유튜브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무슨 남자가 꾸미고 화장이냐”며 만류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독학으로 익힌 영상에 대한 기획력과 감각으로 김씨는 미용실을 관둔 직후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첫 영상은 ‘손으로만 하는 초간단 남자 쉼표머리’.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조회수는 100회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일종의 도박이었지만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었습니다. 남성 뷰티라는 낯선 문화가 유입될 때 발생하는 대중의 차가운 반응이 오히려 그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이며, 먼저 깃발을 꽂을 가치가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3년을 ‘무명 유튜버’로 살았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현장’으로 나갔다. 생계를 위해 영상 콘텐츠 강사로 뛰며 10대들을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의 한 산골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상 제작을 가르치던 중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 김씨의 눈길을 끈 것은 교실에서 만난 열 살 초등학생들의 가방에 있던 선크림과 립밤이었다.
“수업하던 도중 남학생들이 ‘수학여행 갈 때 뭐 발라야 하느냐’고 묻더군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관리는 당연한 것’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어요.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남성 뷰티는 몰래 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불러온 외모에 대한 대중의 갈망에도 주목했다.
“몇 년 동안 마스크에 얼굴을 가리고 살면서 사람들은 은연중에 자기 외모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쌓아왔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가려졌던 외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인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특히 10대와 20대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2022년 6월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기 시작할 무렵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업로드하는 영상마다 조회수가 수백만회를 기록했다. 1만명도 안 됐던 구독자는 단 2주 만에 10만명을 돌파했다.

김씨는 유튜브에서 단순히 ‘예쁜 남자’가 되는 법만 가르치지 않는다. 그의 콘텐츠는 눈썹 정리와 머리 스타일, 선크림 활용법부터 체형별 코디, 털 관리, 피트니스까지 남자가 일상에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관리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실용적인 콘텐츠 덕분에 시청자의 94%는 남성이다. 18~24세 시청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특징이다.
김씨는 2023년 직접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며 ‘운동도 좋아하고 가꿀 줄도 아는 건강한 남성’임을 몸소 증명하기도 했다. 이런 삶을 통해 화장하는 남성에 대한 편견을 ‘자기 관리 잘하는 남성의 경쟁력’으로 바꿔놓았다.
김씨가 ‘두잉왓’을 설립한 건 남성의 화장을 단순한 ‘치장’이 아닌 ‘관리’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귀찮다는 이유로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는 걸 포기하는 남성들에게 주목했다. 로션과 선크림, 피부톤 보정 기능을 하나에 담은 올인원 제품을 만들었고, 얼굴의 번들거림을 잡아주는 파우더도 출시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2023년 설립한 회사는 불과 3년 만에 수십억원대 매출을 바라보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실 뷰티산업의 주 소비층인 여성을 공략하는 게 훨씬 쉬운 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곳에서 기회를 찾는 ‘청개구리’ 같은 기질이 있어요. 제가 뛰어들어 ‘거 봐, 되잖아’라고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김씨는 2022년부터 전국의 구독자를 직접 찾아가 ‘변신’을 시켜주는 ‘메이크 오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때 김씨는 화려한 크리에이터가 아닌 고향의 정취가 묻어나는 사투리를 쓰는 친근한 ‘동네 형’이 된다.
김씨가 대구에서 만난 스물한 살 대학생은 외모 콤플렉스로 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광주에서 만난 스무 살 청년은 입대를 앞두고 자신감이 바닥이었다. 그는 이들에게 뷰티 팁을 전수하며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야, 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니 얼굴형엔 이런 머리가 어울리고, 피부는 요것만 발라도 확 산다. 거울 좀 봐라, 훨씬 낫제?”
실제로 대구의 한 구독자는 채널을 통해 관리법을 익힌 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외적인 변화가 결국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의 대우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김씨는 지금도 직접 인스타그램 DM이나 유튜브 댓글을 하나하나 챙긴다. 제품 정보를 묻는 사소한 질문부터 인생의 고민까지 모든 내용이 그의 답변 대상이다. 소통이야말로 브랜드와 채널을 지탱하는 가장 큰 뿌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제 김씨의 시선은 1020세대로만 향하지 않는다. ‘남성 웰니스(wellness)’ 분야로 도전의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 피부 관리를 넘어 신체와 정신, 건강한 생활 습관까지 아우르는 남성 전용 관리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그의 다음 목표다.
“과거엔 1020의 문화를 바꾸려 했다면 이제는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3040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손바닥 위에 짜낸 로션 한 줄기가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한 사람의 인상을 정돈하고 무너진 일상의 자신감을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이 변화가 결국 남성 모두에게 정답임을, 저는 계속해서 증명해 나갈 겁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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