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국서 나온 ‘강한 규탄’ 이례적”… 당혹스러운 외교가

최예슬,이형민,정우진 2026. 4. 13. 02:1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교전문가들이 보는 李 메시지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던 지난해 2월 13일 국회에서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 이스라엘대사를 접견하며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메시지에 대해 “인권에 관한 보편적인 책임과 중요성에 관한 메시지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엑스 메시지에 대해 이스라엘이 ‘강한 규탄’으로 반응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이스라엘의 ‘국가 이성’(레종 데타·국가 생존 논리)을 건드리는 중차대한 문제인 유대인 학살을 거론하면서 이스라엘도 높은 수위의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인류 보편의 가치로서 인권 문제를 거론했더라도 표현 수위에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소셜미디어 메시지가 아닌 국제사회의 규탄 동참, 외교 성명 등 전통적 방식을 택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홀로코스트는 레드라인”


12일 외교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대이스라엘 발언이 외교적 프로토콜에 어긋났다고 입을 모았다.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외교 전문가 A씨는 “(외교 관례상) 우호 관계의 국가원수에 대해 ‘강력한 규탄(strong condemnation)’이란 말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며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행위가 있었다면 대통령이 엑스에 언급할 문제가 아니라 외교부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하는 게 더 적절했다”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 B씨도 “솔직히 우리가 그동안 평소 국제 인권 문제에 강력하게 앞장선 국가는 아니었다”며 “대통령이 이스라엘 건만 특정해 언급하는 것은 다소 불필요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시작으로 일본 인도 튀르키예 우크라이나 등 여러 국가 정상이 ‘소셜미디어 정치’에 동참하는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B씨는 “우리는 트럼프(미국)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위상이나 환경이 다른 만큼 트럼프 대통령처럼 직설적·즉흥적 메시지를 활용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논란이 불러올 외교적 파장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A씨는 “미국 금융계·정계·언론계 등에서 유대인의 힘이 강한 만큼 우리 기업의 대미 활동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왜 서방국이 절대 홀로코스트 얘기를 안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못마땅해도 특정 사건 발생 시 지적하되 대체로 조용히 있는 건 유대인 사회가 미국 내 이런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당장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현 정부에 대한 미국 측의 반감까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특히 유대인 학살을 거론한 부분이 이스라엘의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해석됐다. 외교 소식통 C씨는 “이스라엘 입장에서 유대인 학살은 한 종족을 거의 절멸시킨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되는 문제로 여겨진다”며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강한 표현이 나온 것 같다”고 봤다. 외교가에선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는 국가 이성의 문제”라거나 “이스라엘의 레드라인”이라는 해석이 오랫동안 공유됐다.

“조율 필요…이스라엘도 괘씸”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외교적 언급에 있어서만큼은 참모들과 사전 정교한 조율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외교 소식통 D씨는 “외교적 메시지는 여러 당사자가 있다”며 “어떤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자칫 다른 의미로 읽힐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보다 이스라엘의 과한 반응이 외교적 결례라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외교 소식통 E씨는 “‘강력한 규탄’이란 이스라엘의 반응은 과하다”고 말했다. 전직 외교관 F씨도 “이스라엘이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외교 루트가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건 괘씸한 일”이라며 “한국 대통령을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일로 한·미 관계 악화를 예측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미국 내 유대인들도 최근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분위기”라고 반박했다.

야권은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안전항로 확보 등 중동 상황이 엄중한 국면에 이 대통령이 불필요한 외교적 긴장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정부의 외교적 자해 행위로 규정하고 오는 15일 열리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규탄에 나설 방침이다.

국회 외통위원장 출신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그 어떤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사실관계 확인 없는 메시지로 우방과의 불필요한 긴장을 초래한 것을 전략이라 부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통화에서 “대통령의 언어는 절제돼야 한다”며 “대통령 소셜미디어 메시지의 부정적 반향까지 사전에 헤아려 검증하는 필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외교관 출신인 김건 의원도 통화에서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고, 중동의 모든 나라가 잠재적 시장”이라며 “외교 관계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삼갔는데 그 기본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야당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국가원수가 타국 정부로부터 규탄을 듣는 것이 결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며 “그러나 다른 나라(이스라엘) 외교부 성명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감정적 단어를 동원해 대응하는 방식이 적절하느냐”고 지적했다.

최예슬 이형민 정우진 기자 smar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