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동맹의 딜레마

미국-이란 전쟁이 한국에 안긴 가장 큰 고민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작전에의 참전 요청이었다. 한·중·일과 영국·프랑스 등 5개국에 군함을 보내 달라면서 “지원을 받든 받지 않든 참여 여부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미군 3만6591명이 전사한 한국전 지원에의 정리(情理)로는 단박에 ‘노(No)’를 하기가 참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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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트럼프의 군함 참전 요청은
한국엔 쉽지 않은 고민 안겨
연루와 방기 딜레마 풀어낼
전향, 적극적 대응법 찾아가야
」

동맹의 속성은 동맹국 간의 연루(連累, Entrapment)와 방기(放棄, Abandonment) 사이의 딜레마다. 상대국의 무모한 돌발 행동에까지 연루되면서 생길 국익 손실이나 자율성 훼손 등은 한쪽의 고민이다. 반면 강대국 동맹의 요구를 외면했다가 스스로의 위기엔 구조받지 못할 방기가 반대편의 두려움이다. 이번 미국의 개전 명분 역시 “이스라엘의 (대이란) 작전을 알았고, 그것이 미국을 향한 공격을 촉발할 것이므로, 선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루비오 국무장관)였다. 바로 ‘연루’였다.
방기, 교체도 다반사였다. 미·소 냉전의 1979년까지 이란은 영국·서독·터키·일본에 이은 미국의 5번째 동맹국이었다. 자원·중동의 핵심 거점이자 친서방의 팔레비 2세 왕조 때문이었지만 47년 만에 죽고 죽이는 적국으로 바뀌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전 참전 역시도 미국의 안보전략 재조정에 따른 ‘주한미군 철군, 감축’ 등 방기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작동했다.
연루와 방기 사이의 리더십이 국가 존망을 좌우한다는 교훈은 『펠로폰네소스전쟁사』(투키디데스) 속의 ‘멜로스 대화’다. 당시 아테네는 패권을 다투던 스파르타의 식민지였으나 중립을 지켜 온 멜로스섬을 침략, 복속을 강권했다. “정의냐 아니냐는 세력이 백중할 때 얘기이지, 강자는 원하는 걸 하고 약자는 겪어야만 할 것을 겪을 뿐”이라며 조공국으로 살아남기를 독촉했다. 반면 멜로스 지도자들은 “예속에 저항 않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라며 “정의를 유지해 줄 신들과, 맹방인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의 건설자)이 우릴 도와줄 것”이라고 버텼다. 멜로스섬은 멸망했지만, 철석같이 믿은 스파르타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투키디데스는 “국제 형세의 이해 부족, 유연한 생존의 타협 없이 도덕·정의만을 신봉한 멜로스의 리더십”을 지적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이 전제여서 호르무즈 참전을 피해 갈 명분이야 있다. 더구나 전쟁 선포권을 지닌 미 의회의 사전 승인이 없었다. 준비 부족 탓에 지상군 진입, 유가 폭등 압력의 변수들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트럼프였다. 무엇보다 세계의 화약고에 한국이 연루되며 낳을 미래의 비용은 그 누구도 감내하기 어려운 게 침묵 속의 현실이다.
한국 등 동맹의 침묵에 화난 트럼프의 대응을 알 수는 없다. 반면 트럼프의 ‘뒤끝’ 여부로만 상황을 지켜보기엔 미국 보수 진영의 여론 역시 심상치 않은 요즘이다. 카네기재단의 크리스토퍼 치비스 미국대외정책 총괄은 포린어페어스지(2월 25일)에 ‘미국은 동맹국 검증이 필요하다’는 기고를 했다.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미국이 실제 이행할 의지가 있는 약속으로만 동맹을 제한하자. 그 기준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 주는지 여부다. 북한 공격 시 미군 투입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겨우 절반을 넘는다. 경제 대국이지만 한국과의 관계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젠 북한이 핵으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주한미군 규모를 감축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중 관계나 대만·남중국·동중국해 분쟁이 우리에겐 동맹의 큰 위기와 도전으로 다가올 형국인 셈이다.
우선은 우리의 확고한 한·미 동맹 의지를 미국 정부나 여론·학계 등에 주지, 각인시켜야 하겠다. 주한미군의 지위, 전략 자산에 의한 북핵 확장 억제 등이 동맹의 근간으로 유지돼야 함은 물론이다.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이번 그의 첫 전쟁에서 동맹의 도움 없이는 결코 어떤 ‘국제적 성취’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동맹들에의 사전통보를 건너 뛴 건 실책이었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변수 앞 ‘비즈니스맨’의 한계이기도 했다. 굳건한 한·미 동맹의 기반 위에서, 유사시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줄 수 있느냐는 동맹 작동의 프로토콜을 명확하게 정비, 개선해 갈 필요도 그래서 생겼다.

캐나다 카니 총리의 다보스 명연설(1월) 역시 곱씹어 볼 때다. “지정학적 분열의 세계에서, 중견국들은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주요 진영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협력할 책임이 있다.” 한국도 이젠 중견국들과의 적극적 소통·연대로, ‘규칙 기반 질서’를 선도하기 위한 목소리를 늘려갈 필요가 있다. 이란의 사유재나, 미국 주도 회원국들만의 클럽재가 아닌, 호르무즈해협의 자유 통행을 국제적 공공재(公共財)로 전환하는 새 해협 관리체제 논의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위기이지만 기회”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각이 우리의 외교·경제 전 분야에 전향적으로 작동되길 기대해 본다.
최훈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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