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호르무즈 통행료, 한국 보고만 있나

1452년, 오스만 제국의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보스포루스해협의 가장 좁은 목에 요새 ‘루멜리 히사르’를 세웠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던 최소 폭 700m의 바닷길을 대포로 움켜쥔 것이다. 통행 허가를 무시하던 베네치아 상선이 격침되자 바다에는 공포가 엄습했다. 해협 봉쇄는 이듬해 천년 제국 비잔티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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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이란 협상, 통행자유 훼손 우려
무역 의존하는 한국엔 큰 리스크
관련국들과 연대해 목소리 내야
」
해협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 15세기부터 400년간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외레순해협을 막고 ‘사운드 듀스(Sound Dues)’라는 통행료를 뜯어낸 덴마크 왕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문명사는 이런 독점적 횡포를 용납하지 않았다. 1857년 미국 등 해운 강국들은 “자연 해협에서의 통행료 징수는 부당하다”며 덴마크를 압박했고, 결국 ‘코펜하겐 협정’을 통해 통행세를 폐지했다. ‘자연 해협은 인류 공공의 자산이며 무상 통행이 원칙’이라는 원칙이 확립된 계기다. 튀르키예 역시 1936년 몽트뢰 협약을 통해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해협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는 대신 평시 상선의 자유 통항을 보장하고 있다.
이런 통행 자유의 역사가 호르무즈해협에서 도전받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과에 따라 통행료 징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란은 VLCC(초대형 유조선) 한 척당 200만 달러를 주장하고 있다. 당혹스러운 것은 미국의 태도다. 트럼프는 특유의 장사꾼 기질을 앞세워 이란과의 ‘통행료 조인트 벤처’ 구상까지 띄웠다. 그간 항행의 자유를 앞세워 세계 바다를 누벼온 미국이 지정학적 골칫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구축한 국제 질서 규칙을 해체하려는 꼴이다.

통행료가 배럴당 1달러 수준이라 당장 큰 타격은 없으리라는 낙관은 본질을 비켜간다. 제방은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지는 법이다. 자연 해협에 통행료를 허용하는 순간, 바다의 주인은 인류가 아닌 특정 국가로 전락한다. 무역에 생존을 건 한국에는 치명적인 리스크다.
이란은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해협 사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위생, 구조, 등대 운영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엄연히 여러 나라가 참여한 다자간 합의(몽트뢰 협약)다.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소련 등 인접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이해 당사국들이 서명했다. 더구나 보스포루스해협은 튀르키예의 내해지만, 호르무즈는 오만이 접한 엄연한 국제 해로다. 수수료 수준도 원유 배럴당 가격으로 따졌을 때 이란이 요구하는 통행료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다. 최근 대폭 인상했음에도 그렇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실적 모범은 말라카해협이다. 이곳의 하루 석유 물동량은 약 2300만 배럴로 호르무즈(약 2100만 배럴)를 웃돈다. 항로 혼잡도도 더 심하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연안국들은 직접적인 통행료를 걷지 않는다. 대신 한국, 일본, 중국, 사우디, UAE 등 주요 이용국과 함께 ‘항행 안전 협력기구(Cooperative Mechanism)’를 꾸려 관리한다. 통행하는 선박마다 수수료를 내는 게 아니라 해적 소탕이나 항로 유지 등을 위해 이해 당사국들이 ‘안전 분담금’을 낸다. 한국도 2007년 기금 출범 이후 누적 100만 달러 정도를 냈다. 의무적 통행료가 아니라 자발적 기여금 형식이다. 연안국의 주권과 국제사회의 통행권이 공존하는 가장 성숙한 대안이다.
호르무즈 위기 역시 말라카 방식의 다자간 논의 구조로 풀어야 한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중재 아래 ‘실비 기반의 안전 분담금’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호르무즈에서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 전 세계 주요 길목마다 통행료를 들이미는 ‘해상 할거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정부는 중동 에너지 수출국, 주요 소비국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호르무즈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또 다른 시험대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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