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전쟁을 애도하는 일

정강현 2026. 4. 1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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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워싱턴 특파원

10년 전쯤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을 인터뷰했다. 그의 소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전의 참혹함과 사랑의 애잔함을 함께 그린 작품으로 유난히 영미권에서 화제가 됐다. 그 자신 베트남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생생한 경험이 아프게도 녹아든 작품이었다. 공식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하노이 집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취기가 오른 그가 반복해서 하던 말이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저는 결코 전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지 한 달 반이 넘어간다. 워싱턴 특파원의 일상은 트럼프의 말 폭탄을 실어나르는 일로 분주하다. 어디까지가 허풍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도 없는 그의 말들은, 지금의 전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하다 하다 “문명 말살”까지 겁박했던 트럼프는 돌고 돌아 2주 휴전에 동의했고, 지금은 출구를 찾는 다급함이 읽힌다. 그러나 이렇게 전쟁을 털고 나가기 전에, 그가 반드시 응답해야 할 일이 있다. 바오 닌 작가의 습관 같았던 절규처럼 “결코 전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애도하는 것.

11일 공습 희생 어린이들의 영정사진을 싣고 미국과의 협상장으로 향하는 이란 전용기 내부. [사진 X 캡처]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열어젖히던 2월 28일, 이란 남부 미나브 초등학교에서 170여 명이 폭격으로 숨졌다. 대다수가 열 살 전후 어린아이들이었다. 학교는 모두 세 차례나 피격됐고, 아이들은 몸에 몸을 포개가며 스러졌다. 학교를 때린 건 미국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특정됐는데, 트럼프는 “이란이 한 짓”이라고 우겼다. 오폭 정황에도 미 국방부는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을 뿐,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한 적은 없다. 지난 한 달간 트럼프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이, 졸지에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까.

치솟는 기름값에 중간선거 부담이 커진 트럼프는 어떤 식으로든 명분을 찾아 종전 합의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나브의 아이들과 순직한 미군 등을 포함해 이번 중동전쟁의 사망자만 5000명을 넘어선다. 언젠가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말한 것처럼, 이것은 ‘50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000건 일어난’ 것이다. 트럼프가 그 어떤 명분으로 출구를 찾아내더라도 이번 전쟁의 끝은 저 개별적인 죽음들에 대한 제대로 된 애도가 전제돼야 한다. 10년 전 하노이에서 바오 닌은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 또 말했다. “전쟁을 딱 하루만 겪어도 인간은 파괴됩니다.”

정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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