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옥금의 한국에 산다는 것] 이직의 자유라는 숨구멍

2026. 4. 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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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바다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풍요의 상징이라지만, 그 바다 위 배 한 척에 몸을 실은 이주노동자에게 바다는 거대한 감옥이다. 최근 상담실을 찾아온 어업 노동자 A의 이야기는 내가 지난 수년간 마주해온 절망의 집약체였다. 그는 한국의 선진화된 국가 이미지를 믿고 타국에서 건너왔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현대판 노예제의 민낯이었다.

「 ‘사업장 변경 제한’ 족쇄에 묶여
선주 횡포 감내하는 어업 노동자
떠날 권리 보장돼야 인권 선진국

김지윤 기자

어업노동자는 한번 바다에 나가면 밤낮없이 작업을 해야 하고, 날씨에 따라 출어를 못 하거나 육상에서 작업하는 등 근로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사정을 고려하여 월급제로 계약해야 한다. 그러나 A의 계약은 시급제로 되었고 현실과 맞지 않는 계약은 고용기관이나 감독기관에 의해 걸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급제로 계약했음에도 실제 임금은 근로 시간에 상관없이 배를 타면 하루 10만원, 육상 작업은 하루 8만원으로 일방적으로 정해졌다. 이마저도 선주가 부르면 나가고 부르지 않으면 하릴없이 낡은 숙소에 갇혀 지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발이 묶여 있었다. 현행 고용허가제하에서 사업장 변경은 노동자의 권리가 아니라 선주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 비극의 뒤편에는 제도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입출항 시 해경에 승선 인원을 신고해야 하는 당연한 절차조차 현장에서는 무시되기 일쑤다. 선주가 인건비를 떼어먹기 위해 승선 신고를 누락해도 이를 감시해야 할 공권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승선 기록이 없으니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시간을 증명할 길은 막막하다. 여기에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등장하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막마저 사라진다.

이런 참담한 현실 속에서 최근 국회에 발의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가뭄 속 단비 같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안의 핵심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덧씌워진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사업주가 때리거나 임금을 떼먹는 등 명백한 귀책사유를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만 겨우 이직의 기회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러한 제한 조항을 삭제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고 일터를 옮길 수 있도록 원칙적 자유를 부여한다.

이 법안의 통과는 단순히 법률의 수정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부속품’이 아닌,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하겠다는 선언이다. 이직의 자유가 보장될 때 비로소 시장의 자정 작용이 시작된다.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고 임금을 후려치는 선주는 더는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력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선주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와 상식적인 근로 계약을 고민해야만 한다. 법이 강제하지 못하는 인권의 최저선을 ‘이직의 권리’가 지켜주는 셈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인력 유출과 지역 소멸을 우려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편하고 돈 많이 주는 수도권으로 몰려가면 농어촌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 겁을 준다. 하지만 묻고 싶다. 왜 그 문제를 가장 약자인 노동자의 인권을 저당 잡아 해결하려 하는가. 지역의 인력난은 정당한 대가와 정주 여건 개선으로 풀어야 할 문제지, 사람을 강제로 묶어두어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강제로 붙잡아둔 노동력이 만들어내는 풍요가 과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정의인가.

국제노동기구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강제 노동의 소지가 있음을 경고해 왔다. 인권 선진국을 자임하며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이중성은 이제 멈춰야 한다. 바다 위의 고립된 배에서, 먼지 날리는 공장에서, 뙤약볕 내리쬐는 비닐하우스에서 삶을 일구는 이들에게 떠날 권리를 주는 것은 그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강력한 방패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조속히 시행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은 오늘도 억울함을 삼키며 바다로 나가는 수많은 A들의 간절한 비명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고 부당함에 맞서 제 발로 걸어나갈 수 있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 시작은 바로 이 법안의 통과에 있다. 이제는 쇠사슬을 풀고, 그들에게 숨 쉴 구멍을 열어주어야 할 때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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