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가 뒤늦게 졸업장 준 이유, 어느 의대생의 위대한 생애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제2공화국은 1년도 안 돼 군사정권에 의해 부정됐다. 제2공화국 정치인들은 정치활동정화법에 묶여 꼼짝달싹도 못 했다. 장면 내각이 추진했던 경제개발계획 등도 올스톱됐다. 1963년부터는 전혀 새로운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의미에서 제3공화국이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됐다.
1963년부터 시행된 제3공화국 헌법은 기존 헌법상의 개헌 절차를 무시한 채 등장했다. 이 헌법의 직전 헌법(1960.11.29.~)은 참의원과 민의원이 각각 개헌안을 의결하라고 규정했지만, 3공 헌법은 1962년 12월 6일 군사정부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처럼 제2공화국이 군사정권과 제3공화국에 의해 철저히 부정되는 속에서도 예외가 된 것이 있다. 의사 김중화(1888~1972) 같은 몇몇 인물에 대한 장면 정권의 국가적 칭송은 군사정권과 3공 정권하에서도 이어졌다. 장면 내각이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인물인데도 박정희 정권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던 것이다.
1960년 10월 1일 당시 최고 스포츠 시설에서 제2공화국 출범을 기념하는 성대한 의식이 거행됐다. 이날 <경향신문>은 "민권의 새출발과 새 공화국의 탄생을 축하하는 '신정부 수립 경축식'이 1일 상오 10시부터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거행"됐다고 한 뒤, 대통령·총리·민의원의장과 외교사절 등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여섯 인물이 특별히 조명된 일을 보도했다. 아래 괄호 속의 '학규'는 '김학규'로 정정돼야 한다.
"장 국무총리는 이날 단상에서 평생을 이 나라 독립운동을 위해 몸 바친 애국자를 시민들에게 소개하여 뜨거운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게 했다. 이날 단상에서 장 총리에 소개를 받은 애국자는 이(이강), 신(신숙), 오(오광선), 김(김성숙), 김(김중화), 김(학규) 씨 등 6명이었다."
신공화국 출범을 축하하는 국가 의식을 통해 특별한 주목을 받은 여섯 인물 중에서 김성숙을 제외한 다섯 인물은 군사정권 시절인 1962년과 1963년에 훈장이나 표창을 받았다. 장면 내각을 철저히 짓밟은 군사정권도 장면 내각이 부각시킨 이 인물들에게 존경을 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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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용 처단 의거를 앞두고 찍은 기념 사진. 좌측부터 오복원, 이재명, 김중화, 이교담. |
| ⓒ 오복원 지사 후손 제공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24년 제86집에 수록된 이규원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객원교수의 논문 '독립운동가 김중화의 생애와 활동'은 김중화가 1959년 11월 28일 위 야구장에서 거행된 광복선열합동추도회에서 '선열의 시범' 대표로 연단에 올랐고, 1960년 9월 8일에는 보수신당 창당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일을 열거한 뒤 "1960년 전후에 사회 주요 인사로 부상"했다고 평한다.
그는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정치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장면 내각에 의해 거국적으로 부각됐는데도, 군사정권은 그를 폄훼하지 않고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정치활동에 몸담았던 인물들은 5·16 이후에 핍박을 받았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4·19 직후에도 부각되고 5·16 얼마 뒤에도 부각된 이례적인 인물이다.
그가 2공 사람들과 군사정권 사람들의 마음을 끈 이유가 있다. 그는 의대생 시절인 스물한 살 때 이완용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암살미수(1909.12.22)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다. 국가보훈부가 1990년에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8권의 설명이다.
"1909년 11월경 이재명·오복원 등과 서울에서 만나 이완용 등 매국적(賣國賊) 처단을 계획하고 11월 하순경부터 평양·서울 등지에서 동지 규합과 거사 준비에 힘썼다. 이때 그는 이재명의 지시로 이완용의 동정을 탐지하고 12월 23일(22일의 오타) 이완용 등이 명동성당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알고 동지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이재명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찔러 중상을 입힌 후 붙잡히자, 공범으로 연루(되고)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7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한 살 많은 동향 선배인 이재명과 함께 이완용을 공격한 뒤 1914년(위 공훈록에서는 1916년)에 가석방된 김중화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08년에 대한의원 의학교가 선정한 우등생이었던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만주 벌판으로 이주했다.
흑룡강성(헤이룽장성) 통하현에 정착한 그는 황무지도 개간하고 병원(송강의원)도 세우고 독립운동도 하면서 무엇보다 한국인 보호에 힘을 기울였다. 위의 이규원 논문은 "통하현 농무계의 의사로도 활동하면서 농지 개간을 이끌고 이주 조선인의 권익을 보호하였다"라며 "다른 한편으로 농무계 산하 양진학교를 설립하여 조선인 교육과 지역 봉사에 관여하였다"라고 기술한다.
의학교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우수한 의대생이었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병원을 세워 의료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도 하고 학교도 세우고 민권 보호 활동도 했다. 이 중에서 한 가지만 해도 훌륭한 사람인데, 이 여럿을 열정적으로 다 해냈던 것이다. 독립운동이나 의료봉사의 범주에 구애되지 않고 세상을 살리기 위해 다각도로 힘쓴 의인이었다.
그는 열정도 대단했지만, 에너지도 강렬했다. 예순 살을 넘긴 나이에 육군사관학교에도 진학했다. 국문학과나 영문학과 같은 일반 학과의 만학도가 아니라 사관학교의 만학생도가 됐던 것이다.
위 논문은 "군사력의 중요성을 일찍이 체득한 그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만 61세에 육군사관학교에서 1개월 군사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했다고 알려준다. 그 뒤 실제로도 장교로 복무했다. "육군통신학교 의무과 의무관으로 4년간 복무하고 소령으로 진급"했다고 논문은 말한다.
해방 이전에 했던 그의 훌륭한 일들은 60대 후반이 된 한국전쟁 휴전 이후로도 계속됐다. 위 논문은 "종전 후에는 종교계와 원호사업단체를 통하여 적극적인 사회참여활동을 전개하였다"라며 "선열의 사적 편찬과 유가족 원호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결성된 애국동지원호회의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고 기술한다. 한국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그 유가족을 돕는 일에도 나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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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튜브에 올라온 이규원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객원교수의 <이재명 의사의 의열투쟁과 오복원, 김중화의 생애와 활동> 발표 중 일부 |
| ⓒ 서울대 의과대학 유튜브 캡처 |
이 성명서는 "과거 8년간의 체험을 미루어 앞날의 4년을 전망하면서, 국민들의 말 못 할 사정과 고동(鼓動)된 심경을 우리들은 어찌 맹종이나 방관만으로 안연(晏然)할 바이랴"라고 탄식한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난 8년의 폭정이 향후 4년에도 되풀이될 게 뻔한데 국민들의 고동치는 심정을 어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라볼 수 있겠느냐며 김중화 등이 궐기 촉구에 나섰던 것이다.
모범적인 의대생으로 살다가 이완용도 공격하고 일본제국주의에도 맞서고 이승만도 질타한 데서 나타나듯이, 김중화는 세상을 살리는 일에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4·19 뒤에 크게 부각되고 5·16 뒤에도 계속 부각됐다. 그를 부각시키는 일은 6월항쟁 뒤에도 있었다.
이전 정권들에서 외면받은 사회주의 성향의 독립투사들은 1987년 이후의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 독립유공자로 대거 지정됐다. 1972년에 세상을 떠난 김중화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흐름에 힘입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가로 받았다.
한국 현대사를 요동치게 만드는 정치적 격변 때마다, 새로운 기운을 이끄는 사람들은 김중화의 존재와 공적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의 공로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이런 현상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일은 아니지만, 촛불혁명 얼마 뒤인 2019년에는 서울대 의대가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이완용 암살미수 의거로 인해 받지 못했던 졸업장이 입학 112년 만에 나온 것이다. 독립운동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의로운 길을 걸은 김중화의 희생과 노고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 이처럼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를 좀 더 많이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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