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이름만 돌림자 안썼다” MB, 친모 일본인설에 꺼낸 말 [이명박 회고록]

서승욱, 박진석, 김상진, 김기정, 왕준열 2026. 4. 1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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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귀국선’과 ‘6·25’...끝모를 가난의 시작 」

" 그래? 난 정말 몰랐어! "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깜짝 놀랐다. 현대건설 사장이 된 뒤 힘들었던 성장기를 처음으로 그에게 얘기한 직후였다.

" 당신한테는 가난하게 자란 티가 안 나. 그래서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어. 나도 없이 자랐지만, 당신 얘기를 들으니 난 아무것도 아니네. "
그랬다. 누구나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가난은 특히 심했다. 그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어머님의 가르침은 엄격했다.

" 남을 돕고 살아라. 남에게 손 벌리지 말아라. "
동네 잔칫집 일을 도와주러 가서 떡 한 조각 얻어먹고 오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게 빈자의 티가 나지 않는 데에는 그런 어머니의 가르침이 깔려 있었다.

내가 가난을 극복한 과정은 우리 현대사와 정확히 닮았다.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겪은 세계 최빈국이 세계 10대 강국이 된 건 기적도 신화도 아니다. 다 함께 피땀 흘려가며 열심히 일한 결과다. 물론 나도 그렇게 했다.

이제부터 동기(同氣)들의 기억을 더 해 내 기억이 닿는, 가장 오래된 얘기부터 꺼내보려 한다.

1941년 12월 19일, 나는 오사카의 조선인 마을(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나미 후쿠이도정)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빈민촌이었다. 뒤에 대밭이 있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1938년 일본 오사카 조선인 밀집지역에 있던 시장의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내 위로 큰 누이 귀선(1930~2010년)과 큰 형 상은(1933년생), 작은 형 상득(1935~2024년), 작은 누이 귀애(1938~50년)가 있었고, 아래로 여동생 귀분(1943년생)이 있었다. 막내 남동생 상필(1946~50년)은 귀국 후 포항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되자 부모님은 다섯 살이던 나를 포함해 6남매를 부둥켜안고 일본 시모노세키 항에서 허름한 목조 어선에 올라탔다. 짐 속에는 10여년간 일본에서 갖은 핍박과 설움을 견디며 번 종잣돈이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고향에서 논 몇 마지기 살 정도는 됐다.

긴 기다림 끝에 오른 배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정원을 한참 넘겼다. 그 시절 귀국선 풍경은 대부분 비슷했다. 광복 이듬해까지 귀국선을 탄 조선인 수가 160만 명에 달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광복 이후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귀국선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진 알렉산더 턴불 도서관

거기서 나는 생과 사의 경계를 처음 마주했다.


절체절명의 난파 순간, 아버지가 사라졌다

" 어쩔 수 없다…. "
어머니는 절박했다.

" 각자 뭍으로 올라가자. 살 사람은 어떻게든 살 테니. "
그건 여동생 귀분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대마도(對馬島·쓰시마 섬) 앞바다는 긴박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실은 배가 좌초해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배는 서서히 물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시라도 빨리 하선해야 했다. 그러나 6명의 자식과 십수 년의 타향살이 결과물인 짐보따리를 어머니 혼자 건사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짐 속엔 가족의 목숨줄인 돈도 있었다. 결코 버릴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귀분은 혼자 배를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렸다. 어머니가 비장한 결심을 했던 이유다.

" 안 돼요! "
그 순간 큰 누이 귀선이 나섰다.

" 제가 막내를 업을게요. "
그는 기어이 귀분을 둘러업었다.

불과 다섯 살의 코흘리개였던 나는 얼이 빠져있었다. 지옥도(地獄圖)가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타인을 밀치고 밟고 떨어뜨리면서 앞다퉈 배를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쳤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 보였다. 선두에서 이고 지고 업은 채 길을 내야 할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바로 그때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왔다. 들어 올려진 배의 후미, 선장실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어이없게도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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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이름만 돌림자 안썼다” MB, 친모 일본인설에 꺼낸 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9441

■ 이명박 회고록 및 단독 인터뷰

「 〈이명박 회고록〉

“난 대통령 될거야, 당신은...” MB 경악한 정주영 폭탄 발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7558

“유인촌이 여의도 광장에서…” MB도 놀란 ‘야망의세월’ 찐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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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단독 인터뷰〉

“인정하자, 보수는 참패했다” 이명박, 13년만에 처음 입 열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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