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갔다 눈물 쏟은 이유, 달력 보니 알겠네
[송주연 기자]
나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세 살배기 비숑 프리제 라온이를 반려하고 있다. 얼마 전 예방 접종 차 동물병원에 들렀을 때였다. 평소처럼 금세 마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청진이 길어졌다. 수의사는 '서맥과 부정맥'이 잡힌다며 심장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강아지별에서 지내는 나의 첫 반려견 은이(내가 쓴 책 <개와 살기 시작했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도 심장병을 앓았기에 나는 '철렁'했다. 그렇게 심장 검사를 예약했다.
|
|
| ▲ 나의 두번째 반려견 라온이. 이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모든 슬픔과 불안 쯤은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 |
| ⓒ 송주연 |
도대체 내가 왜 이랬을까? 달력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이는 일종의 '기념일 반응(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상실을 경험한 시기에 느끼는 정서적 파동)'이었다. 오는 14일은 나의 첫 반려견 은이의 세번째 기일이다. 또 그 잔인한 시기가 온 것이다.
돌아보면, 은이를 보내고 라온이와 시작된 두 번째 반려생활엔 행복 만큼 언제나 한 웅큼의 불안이 깔려 있다. 아마도 이 불안은 사랑하는 존재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실존적 진실에 맞닿은 불안일 것이다.
이 불안이 은이의 기일 즈음에 라온이의 건강 문제와 맞닿으면서 툭 튀어나와 나를 휘감았던 것이다. 나는 불안을 없애고 반려 생활의 기쁨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 책 <네 눈엔 온 세상이 나다>(2026년, 2월 출간)를 집어 들었다.
|
|
| ▲ 책표지 |
| ⓒ 테라코타 |
나의 기대대로, 책의 초반에는 반려인으로 살아가는 기쁨들이 가득했다. "잠에서 깼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솔솔(14쪽)"나고,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강아지들의 시선을 느끼고 사는 모습을 담은 장면들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강아지가 자는 모습만 봐도 "이뻐 죽을 것 같고" 그래서 강아지들이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자꾸만 뽀뽀 세례를 날리는 장면은 마치 내 모습 같았다. "너의 표정, 너의 몸짓 어느 것 하나 싫은 것이 없다"며 "서로 이렇게 사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 줄 알아?(77쪽)"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반려인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반려견에게 침대의 대부분을 내어주고 쪼그리고 자는 모습(96쪽), 여행을 좋아하던 남편이 강아지들 때문에 고민도 없이 "그냥 안 갈래"라고 말하고(117쪽), 개의 식사 시간과 산책 시간 등을 일상에 녹여내기 위해 시간을 쪼개 쓰는 모습(147쪽) 등은 반려인으로 겪는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듯 그 모습마저 행복해 보였다. 나는 이런 행복한 모습만 기억하며, 과거의 슬픔과 미래에 겪을 슬픔, 그리고 이에 따른 불안 같은 건 잊어버려야지 다짐했다.
행복 속의 불안
그런데 어딘가 좀 찜찜했다. 분명 행복한 반려인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페이지가 넘어 갈수록 행간에서 자꾸만 불안이 감지됐다. 이건 '불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는 내 감정이 투사된 것만은 분명 아니었다.
저자는 맥주의 눈에 다래끼만 나도 걱정을 하고(86~88쪽), 홍춘이가 입맛이 없자 곧바로 병원으로 향하며 "유별난 보호자"라고 고백한다(111쪽). 홍춘이가 이개혈종에 걸렸을 때도 근심 가득한 시간들을 보낸다. 수술로 말끔히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그마저도 피하고 싶어 전전긍긍하기도 한다(135쪽). 소소한 질환에도 철렁 하는 그 마음엔 분명 불안이 묻어 나고 있었다.
아플 때 뿐만이 아니다. 저자와 남편은 그저 잘 자고 있는 반려견을 바라보다가도 이렇게 고백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제 네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너를 보내줘야 하는 날도 올 것이다." (128쪽)
"맥주야 안 죽지? 안 죽을 거지? 30년 살 거지? 지금부터 30년이지?" (220-221쪽)
나는 마치 나의 불안을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책의 중반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처럼 첫 번째 반려견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음을 말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잔잔한 날들이 이어지다 갑자기 몰아치는 폭풍 같은(253쪽)" '펫로스'의 경험은 아마도 현재 반려하고 있는 개들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했을 것이다.
언젠가 오고야 마는 그 슬픔을 경험해내고 다시 반려 생활을 결심한 이들은 그 슬픔의 무게를 결코 비껴갈 수 없다. 슬픔은 현재에 불안으로 되살아나고, 이를 감내해야만 계속해서 반려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불안을 밀어내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반려인의 숙명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묘한 위로와 함께 말이다.
무지개 다리 건너
급기야 책의 후반부는 '펫로스'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고야 만다. 첫 반려견 메롱이를 입양해 떠나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 저자는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쑥불쑥 슬픔이 밀려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현재의 반려견 홍춘이와 맥주를 바라보며 이렇게 적었다.
"숨 쉬듯 당연해서 좋은지도 몰랐던 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손 위의 모래처럼 사라진다." (235쪽)
"그리움인지 미안함인지 구분도 안 되는 범벅이 된 마음을 붙들고,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그렇게 산다." (236쪽)
이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모래처럼 사라지지만, 너무나 행복하고 충만한 그 시간들을 잊을 수 없어 또 다시 시작하게 된 반려인으로서의 삶. 은이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과 지금 내 곁에 있는 라온이와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애틋하게 느껴졌다.
|
|
| ▲ 2023년 4월 14일. 강아지별로 돌아간 은이는 지금도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다. |
| ⓒ 송주연 |
"개를 키운다는 것은 슬픔을 저축하는 일 같기도 해." (221쪽)
책을 덮으며 마음에 깊게 새겨진 구절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이 모든 슬픔을 감내할 만큼 개에게 받는 사랑이 크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불안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상담심리사로서 배워온 모든 심리학 이론에서도 이런 감정들을 밀어내기보다 수용할 때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저자가 강아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숫자'에 민감해졌듯 나 역시 그럴 것 같다. 체중, 호흡 수, 혈액검사 수치들과 더불어 이젠 라온이의 심장 박동수까지 챙겨야 하니 말이다(라온이는 체질적으로 미주신경이 강해 서맥을 만든다는 진단을 받았고, 수시로 모니터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숫자들을 볼 때마다 기저에 깔린 불안들이 또 고개를 들고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잊지 않을 것이다. 불안은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더 우리를 괴롭히는 감정임을, 그리고 나의 개는 내 감정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전염되는 존재임을 기억할 것이다. 라온이를 위해서라도 이 불안을 더 잘 껴안아 봐야겠다. 저자의 말처럼 "나의 평화가 내 개의 평화니까(153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2년 걸린 '박근혜 7시간'... "위로 아닌 법과 제도로 증명해야"
- 공개 단체를 불법 지하조직으로 둔갑시킨 이유
- 방 안에 가득 찬 곤충... 여든셋 동충하초 박사의 운명 바꾼 결정적 순간
- 슬프기보다 아름다웠던 제주올레 '서명숙의 영결식'
- 법원에 가야한다는 고딩 딸, 새벽 5시에 차 시동을 켰다
- 물 먹는 양까지 메모... '갓생러'들이 이렇게까지 쓰는 이유
- 당신이 바이브코딩으로 만든 앱, 출시 즉시 '폭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밴스 미 부통령 "이란, 우리 요구 안받아들여... 미국 복귀한다"
- '삭발' 박형준 국힘 부산시장 후보로... 전재수와 맞붙는다
- '재학생 11명 기소'에 거리 나온 동덕여대생 "여성 입 막는 오만한 탄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