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할 만큼 위험? '크록스'는 왜 학교에서 추방됐나

임정훈 2026. 4. 1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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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자치가 민주시민 교육이다 3] 신발이 아니라 학생의 삶에 더 주목해야

민주시민, 민주시민 교육과는 거리가 먼 교칙(생활규정)을 중심으로 학생자치의 실태,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 문화 등을 두루 살피며 학생과 학교를 짚어보려고 한다. <기자말>

[임정훈 기자]

 교실에서 크록스를 신고 있는 학생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지난 7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서는 보도자료와 익명결정문(25진정0513100 고등학교의 과도한 신발 규제 등) 하나를 내놓았다. 익명결정문은 2025년 8월에 나온 것인데 해당 학교 측이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자 이를 공개하며 다시 첨부한 것이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생이 "(학교가) 실내에서 크록스 등 슬리퍼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 시 적발하고 있다. 이는 학생이 누려야 할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 및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진정한 사건에 대한 권고였다. 인권위는 이를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개선을 권고했으나 학교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왜 '크록스' 징계를 포기할 수 없었을까.

사실 '크록스'를 싫어하고 금지하는 것은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여러 중고교에서는 대놓고 교칙으로 금지하고 징계 조항까지 만들어놓았다. 도대체 왜, 크록스는 학교에 미운털이 박혔을까.

삼디다스에서 크록스로

돌아보면 학교가 크록스보다 먼저 금지했던 신발이 있다. 삼선 아디다스 슬리퍼의 모조품, 이른바 '삼디다스'. 삼디다스 열풍은 오랫동안 전국 초중고교를 가리지 않았다. 학교는 이를 막으려 등굣길을 막고 학생을 검열-단속했다. 징계도 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학교에서 학생들의 애착 신발은 '삼디다스'였다. 삼디다스를 신고 등·하교하는 학생들 때문에 학교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삼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것을 교칙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학생이 삼디다스를 신고 와서 걸리면 압수를 당하거나 벌점 혹은 징계를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삼디다스를 신고 다녔다. 학교와 학생 사이 '신발전쟁'의 시작은 삼디다스부터였다.

영구집권 할 것 같았던 삼디다스를 권좌에서 몰아낸 것이 바로 '크록스'이다. 크록스는 미국 Z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 브랜드 10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고(미국 증권사 파이퍼 샌들러의 설문조사 결과) 알파세대에게도 인기 있는 신발이었다.

2007년 크록스코리아가 설립되면서 한국에서도 학생과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층에서 두루 신는 레저 신발로 부상했다. 삼디다스를 신던 한국 학생들도 크록스로 갈아탔다. 학교 역시 발 빠르게 삼디다스를 지우고 크록스 금지를 교칙에 고쳐 넣었다. 교칙 표기에서 삼디다스는 '슬리퍼'였지만 크록스는 크록스였다. 특정 제품명을 그대로 교칙 금지 사항에 명시했다. 학생이 크록스를 신고 와서 걸리면 압수를 당하거나 벌점 혹은 징계를 받는 것은 고치지 않고 그대로였다.

삼디다스나 크록스 모두 학교가 금지하는 이유는 같다.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들은 앞이나 뒤가 트인 신발, 실내화, 슬리퍼 같은 것을 신고 오는 것을 금지한다. 앞이 막힌 신발, 뒤꿈치에 끈이나 뒷부분이 있는 신발을 착용해야 한다. 학생자치회에서 학생들에게 안내한 크록스 관련 교칙 실제 내용 몇 가지를 보자.

"크록스는 발을 완전하게 감싸고 있지 않은 신발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을 염려해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울 ○여고 학생회)

"크록스는 비오는 날만 허용되고 나머지는 다 안 됩니다." (전남 △여고 학생회)

"등교 시에는 운동화만 착용 가능하며, 슬리퍼, 크록스 등은 벌점 부여함." (인천 ▽고 학생회)

"실내화의 종류는 자유이지만 실외화는 안전상의 이유로 앞뒤가 모두 막힌 신발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기 ◇고 학생회)

정말 그만큼 위험할까? '해제할 결심'이 필요

실내화와 실외화를 구분하여 등교 후 신발을 갈아신고 교실로 들어가도록 교칙으로 정한 학교들이 많다(코코나19 시절에는 이를 해제한 학교들도 있었다). 실내화 갈아신기는 일본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서당이나 사숙에서 일반 민가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신발을 벗고 교장에 들어가도록 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 학교에서 하고 있는 실내화 갈아신기 교칙의 근원이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하얀 실내화'도 한국과 일본이 똑같다. 실내화에 집착하고 삼디다스나 크록스를 금지하는 교칙도 결국 에도시대의 악습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크록스는 교칙으로 금지하고 학생을 징계할만큼 위험할까? 글머리에 이야기했던 인권위 결정문에 그 답이 있다.

"슬리퍼 자체가 단독으로 학교 내 안전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될 수준에 이르러야 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 또는 통계는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부의 「제4차 학교안전사고 예방 기본계획(2025~2027)」등은 …… 슬리퍼 등 특정 신발이 학교 안전사고의 주요 요인이라는 구체적 언급이나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신발 종류와 사고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나 실험 연구 결과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타 국내 연구 및 정책자료에서는 슬리퍼 착용이 학교 안전사고의 주요 원인임을 명확하게 제시하거나 입증하는 데이터를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크록스(슬리퍼)가 안전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될 연구 결과 또는 통계를 확인하기 어렵고, 교육부와 국내 연구 및 정책자료에서도 안전사고의 원인임을 명확하게 제시하거나 입증하는 데이터를 찾기 어려운 상태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를 근거로 인권위는 학생의 크록스(슬리퍼) 착용을 징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인권위는 이러한 근거와 판단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권고를 하나 더 덧붙였다. 크록스(슬리퍼) 착용을 징계할 수는 없으나 생활지도는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학생들이 원하는 신발이나 옷을 선택해 신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에 따른 자기표현과 개성 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타당한 이유 없이 제한하는 것은 이러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라고까지 명시해놓고도 인권위는 학생의 크록스(슬리퍼) 착용을 생활지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인권침해인데 생활지도가 가능하다니 세상에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 있을까. 학교들이 안전과 교칙이라는 이유로 크록스 착용을 금지하고 학생을 단속-징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1920년대에는 학생이 안경을 쓰고 학교에 오는 것이 금지였다(지금은 안경 대신 서클렌즈를 금지-징계하고 있다. 이유는 역시 건강과 안전). 1950년대에는 금지 물품인 '나일론 양말'을 신고 학교에 오면 압수당했다. 당시 '나일론 양말'은 고급 허영·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이를 일종의 '등골 브레이커'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학생의 양말을 압수한 것이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20년대의 안경 금지, 1950년대의 나일론 양말 금지와 압수, 21세기 2026년 현재의 크록스 금지가 다를까. 더욱이 크록스는 '등골 브레이커'도 아니지 않은가. 크록스뿐만 아니라 학교가 그저 교칙이라는 이유로 금지하고 징계하는 잡다한 것들을 '해제할 결심'을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에 따른 자기표현과 개성 발현을 부당하게 금지해서는 안 된다. 신발이 아니라 학생의 삶에 더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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