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고급 거실’…코레일이 눈 여겨 본 ‘고속열차’들 보니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우리나라의 고속철도(KTX)는 지난 2004년 개통했습니다. 초기에는 프랑스의 고속열차인 TGV(테제베)를 바탕으로 한 'KTX-1'이 운행했고, 이어 국내 기술로 개발한 'KTX-산천' 시리즈가 등장했습니다.
또 KTX 개통 20주년을 맞은 2024년에는 차세대 고속열차로 'KTX-청룡' 2편성(8량 1편성)이 선을 보였는데요. KTX-1이나 KTX-산천처럼 맨 앞의 기관차가 나머지 객차를 끌고 가는 ‘동력집중식’과 달리 KTX-청룡은 별도의 기관차 없이 객차 밑에 동력(모터)을 나눠서 배치한 ‘동력분산식’으로 가·감속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국내 고속열차는 이렇게 20년 넘게 여러 변화를 거쳤지만, 유독 별로 달라지지 않은 분야가 있는데요. 바로 열차 내 승객서비스 시설입니다. 식당이나 카페 칸은 고사하고, 음료와 과자 등을 파는 자판기가 사실상 유일합니다.

여행이나 출장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커피 한잔 마시며 편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공간도 없는 건데요. 객실 내에선 다른 승객을 고려해 가급적 조용히 짧게 대화하는 게 예의이기 때문이죠.
객실 좌석도 특실((우등실)과 일반실 2개로만 구분돼 있는 데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공간이 좁은 탓에 전동휠체어를 탄 승객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적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사실 우리 고속열차에 서비스 시설이 빈약한 건 열차를 설계할 때 최대한 많은 좌석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었기 때문인데요. 열차가 충분치 않다 보니 여전히 좌석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 시설을 확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고속열차의 서비스 시설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기회가 생길 듯합니다. 고속철도 개통 초기 도입한 KTX-1을 전면 교체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덕분인데요.
KTX는 기대수명, 즉 안전하게 운행이 가능한 최대연한을 통상 30년으로 잡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KTX-1(46편성, 20량 1편성)은 남은 수명이 8년 안팎이어서 코레일은 이를 KTX-청룡급의 차세대 고속열차(51편성, 16량 1편성)로 바꿀 계획인데요.
코레일은 차량 교체시기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 운행에 공백이 생길 걸 우려해 두 차례에 걸쳐 차세대 고속열차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1차 28편성은 내년에 발주와 계약을 마치고, 2033년까지 인수한다는 목표입니다. 2차(23편성)는 2032년에 발주해 2038년까지 모두 들여올 예정인데요.

코레일은 이를 계기로 빈약한 서비스 시설을 최대한 확충해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해외사례를 살펴보고 있다고 하는데요. 독일과 프랑스, 일본, 스페인의 고속열차가 그 대상입니다. 그럼 이들 열차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을까요.
코레일에 따르면 독일은 신형 고속열차인 ICE(이체)-3NEO를 2023년에 내놓으면서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머물고 싶은 고급거실' 컨셉으로 인테리어를 적용했다고 하는데요. 원목 분위기의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가 돋보입니다.

또 자전거 전용 거치 공간이 마련됐고, 승객이 가져온 여행가방 등 큰 짐을 놔둘 수 있는 넓은 보관대도 설치됐는데요. 간단한 식사는 물론 맥주도 마실 수 있는 식당칸도 운영합니다.
신형열차뿐 아니라 기존 ICE에도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패밀리객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가 설치된 전용출입문, 커피와 음료·간식 등을 즐길 수 있는 바(BAR) 등이 있습니다.

일본의 고속열차인 신칸센 N700S 열차는 비즈니스에 특화된 측면이 눈에 띄는데요. 비즈니스실 좌석에는 옆 승객을 신경 쓰지 않고 사무를 볼 수 있도록 두 좌석 사이에 큼직한 칸막이를 설치했습니다.
또 통화나 화상회의를 할 수 있도록 아예 개별 비즈니스룸도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보다 안락한 여행을 원하는 승객을 위한 프라이빗 객실도 도입할 예정인데요. 독립된 방 형태로 항공기로 치면 최고급 일등석 수준입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하거나, 기타 필요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침대형 좌석이 있는 다용도실도 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서 전동휠체어를 굳이 후진하지 않고 회전해서 나올 수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프랑스도 2층 형태의 TGV-M을 도입하면서 1층과 2층에 음료 및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비스트로를 마련했고, 객실에는 자전거용 거치공간도 설치했습니다.

또 휠체어를 탄 장애인 승객이 객실과 화장실 등으로 이동할 때 불편이 없게 회전형 리프트도 도입했는데요. 장애인용 객실이나 화장실도 사용이 편리하도록 공간과 구조를 설계한 게 돋보입니다.

스페인은 고속열차인 AVE(아베) S-106을 선보이면서 각종 음료를 마시며 환담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칸을 설치했습니다. 또 승강장부터 열차 전체에 걸쳐 바닥 높이를 일정하게 맞춘 덕에 노약자와 장애인의 이동도 한결 용이하다고 하네요. 유아용 미니놀이방이 설치된 열차도 있습니다.
이런 해외 사례를 보면 상대적으로 운행거리가 짧은 국내 고속열차에 도입하기 쉽지 않은 시설도 있지만, 당장 도입해도 될 만한 유용한 설비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는데요.

어떤 서비스 시설이 새로이 선을 보일지는 무엇보다 앞으로의 고속열차 수요전망에 달려있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지금처럼 여전히 좌석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좌석 확충이 최우선이어서 서비스 시설을 여럿 추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반면 공급과 수요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고 판단된다면 과감하게 신규 서비스를 도입할 수도 있을 텐데요. 차세대 고속열차를 발주하기 전에 향후 수요 전망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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