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니 중동전쟁…겨우 버티던 ‘동네 사랑방’ 문 닫았다

임성빈 2026. 4. 1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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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영업 중인 서울 한 대중목욕탕. 임성빈 기자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소외 계층에겐 복지 시설의 역할도 해온 대중목욕탕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서 30년 가까이 영업을 이어온 한 대중목욕탕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로 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코로나19 시기의 경영 위기도 버텨냈지만, 최근 중동 전쟁과 유가 상승 등이 치명적이었다. 인근 쪽방촌 주민들도 자주 와서 몸을 씻고 쉬어가던 이곳이 폐업하게 되면서, 동네엔 이제 대중목욕탕이 한 곳도 남지 않게 됐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목욕장업 영업소는 2001년 1만98곳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매년 줄어들며 지난해에는 5668곳만 남았다. 거의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은 것이다. 전년인 지난 2024년과 비교해도 69곳이 감소했다.

김경진 기자


목욕탕 업계 관계자들은 앞서 코로나19 대유행이 큰 타격이 돼 영업을 접고 떠난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게다가 그 시기를 겨우 버티고 남아있던 곳들은 최근 발생한 중동전쟁으로 또다시 운영비 폭등이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 마포구에서 24년째 목욕탕을 운영하는 손모(75)씨는 “한 달 도시가스 요금이 겨울엔 1200만원, 여름엔 700만~800만원 정도 나온다”며 “과거 해외에서 전쟁이 났을 때의 경험으로 보면,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공공요금이 따라 오르면 우리 같은 업장의 운영비용은 월 수십만원씩 뛰어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때는 운영비 부담도 커지는데, 물가가 올라서 손님도 같이 줄어든다”며 “그렇다고 우리까지 당장 목욕 요금을 올리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 휴전이 이뤄졌지만, 국제유가는 여전히 전쟁 전 대비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도시가스 가격은 1년 전보다 0.3% 상승했고, 지역난방비도 0.3% 높은 수준이었다.


요금 올리고, 한시 폐쇄한 곳도


주거생활 양식 변화로 인해 앞으로도 대중목욕탕이 설 자리는 계속 줄어들 확률이 높다. 동네 목욕탕의 감소는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이 모여 소통하는, 모임의 장소가 하나씩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포의 한 목욕탕을 오랫동안 다녔다는 한 70대 주민은 “지인이나 이웃과 인사도 할 수 있는 곳이라 동네 사우나 오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경기 김포시에 사는 60대 황모씨는 “목욕이 거의 유일한 취미생활이라 매일 간다”며 “동네 친구들도 다 목욕탕에서 사귀었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목욕탕에 제일 많이 듣는데 하나둘 사라진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남은 곳들도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이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목욕탕조차 운영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한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하거나 요금을 올릴 정도다. 수도권에 위치한 한 공공기관은 청사 내 운영 중이던 에너지 위기 극복 차원에서 구내 한증막 시설을 한시적으로 휴업하기로 했고, 김포시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시설 내 목욕탕은 기존 ‘세대당 월 1만5000원’이던 요금을 다음 달부터 ‘1인당 1만5000원’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목욕탕 업주인 손모씨는 “보일러나 사우나 설비가 있다는 특성상 목욕탕이 헬스장 등 시설로 바뀌는 사례가 늘고 있고, 건물을 임차해 운영하는 곳은 임대료 부담도 갈수록 커서 폐업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며 “앞으로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아질 것 같다”고 전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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