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전 세계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 사는 이유…한국은행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올해도 금 보유를 늘리고 있다. 연초에는 매입 강도가 다소 주춤했지만 2월 들어 다시 살아났고,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순매수 기조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금 상장지수펀드(ETF)를 외환보유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환보유액 다변화 흐름 속에서 중앙은행들이 다시 금에 주목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1일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 1월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금 순매입 규모는 5t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월평균(27t)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연초 고점 부담과 휴일 시즌 영향 등으로 매입 강도가 다소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우즈베키스탄이 9t으로 가장 많이 사들였고, 말레이시아가 3t, 체코와 인도네시아가 각각 2t, 세르비아가 1t을 순매입했다.
2월에는 매수세가 다시 강해졌다. 중앙은행 순매입 규모는 27t으로 늘었다. 폴란드가 20t으로 가장 적극적이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각각 8t, 체코와 말레이시아가 각각 2t, 중국과 캄보디아가 각각 1t을 순매수했다. WGC는 연초 둔화했던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이 다시 안정적인 흐름을 되찾았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금 매입 행보도 두드러진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3월 말 기준 금 보유량을 7438만 트로이온스로 늘리며 17개월 연속 순매수를 이어갔다. 전달보다 16만 온스 늘어난 규모로, 약 5t 수준이다. 금 보유액의 달러 환산 가치는 2월 말 3875억9000만달러에서 3월 말 3427억6000만달러로 줄었다. 다만 보유량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3월 국제 금값 조정에 따른 평가액 하락 영향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단기 가격 흐름과 무관하게 달러 자산 의존도를 낮추고, 준비자산 내 비신용 자산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은행들이 금을 다시 사들이는 배경에는 외환보유 전략의 재편이 자리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러한 흐름을 외환보유액 다변화와 준비자산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지정학적 긴장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통화와 채무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정치적·신용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산 비중을 높이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은 채권처럼 이자를 주거나 주식처럼 배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특정 국가의 부채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용위험이 낮고, 위기 국면에서는 가치 저장 수단이자 헤지 자산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들 입장에서 금이 여전히 의미 있는 준비자산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특히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매입 확대는 이런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금을 순매도했지만, 이후에는 대체로 보유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 인도, 터키, 폴란드 등은 2008년 이후 금 보유를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달러 중심 외환보유 구조의 취약성을 줄이고,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려는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 역시 이런 국제적 움직임에 맞춰 금 투자 재검토에 나섰다. 금 관련 금융상품 매입을 검토하는 것은 2013년 이후 13년 만이다. 직접 금괴를 사들이는 대신 해외 상장 금 현물 ETF 투자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한은이 금 투자에 신중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금은 채권이나 주식보다 유동성과 환금성이 떨어지고, 이자나 배당 같은 현금흐름도 없어 운용 효율성이 낮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현재 보유 중인 실물 금도 전량 해외에 보관돼 있어, 대여 수익이 나더라도 보관 비용으로 상당 부분 상쇄된다.
실물 금은 한 번 매입하면 매각이 쉽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외환보유액의 ‘최후 안전판’이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팔았다가 이후 가격이 급등하면 손실 논란이나 정책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한은은 2011년부터 2013년 초까지 약 90t의 금을 매입한 뒤 국제 금값 하락과 맞물려 손실 논란을 겪었고, 이후 추가 매입에 나서지 않았다.
외화자산 운용은 수익률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은은 외환시장 불안 시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수익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미국 국채 중심의 보수적 운용을 이어오면서도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채권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고 주식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왔다. 2024년 기준 외화자산 중 주식 비중은 10% 수준으로, 세계 중앙은행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실물 금 비중을 급격히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지만 현금흐름이 없고 정책 자산 성격이 강해 탄력적으로 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실물 금보다 ETF를 통한 간접 투자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금 현물 ETF는 실물 가격을 추종하면서도 시장에서 즉시 매매할 수 있어 유동성이 높고 보관 부담이 적다. 필요할 때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어 외환보유액 운용 원칙과도 비교적 잘 맞는다. 실물 금의 상징성과 경직성은 피하면서도 금 가격 움직임을 포트폴리오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한은 관계자는 “금 ETF 투자 여부를 검토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외환보유액 운용에서는 안전성과 유동성이 가장 중요한 만큼,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여러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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