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가 황금 거위를 죽인 이유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연례 기자회견장. 프레드 리들리 체어맨에게 LIV 골프와의 갈등이나 골프볼 성능 제한 같은 묵직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후 한 기자가 "사소한 일이지만, 놈(Gnome)이 올해를 끝으로 단종되느냐"고 묻자 리들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 질문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도 물어봤는데 답을 안 해준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을 도와줄 수가 없다"고 했다. '오거스타의 군주(Lord of Augusta)'로 불리는 이 권력자조차 NCND(긍정도 부정도 않음)로 답을 피할 정도니, '그 놈'의 미래는 사소하지 않다.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올해가 이 요정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국인에겐 생소한 놈은 서양 전설 속 땅속에 살며 보물을 지키는 수염 난 난쟁이 요정이다. 흔히 서구권 가정의 앞마당을 지키는 투박한 정원 인형이지만, 마스터스가 이를 기념품으로 만든 2016년 이후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엔 마스터스의 VVIP 구역인 버크먼스 플레이스 귀빈들에게만 파는 한정품으로 시작됐다. 반응이 좋아 2018년 일반 패트런(갤러리) 샵에도 내놨다. 놈이 본격적으로 스타가 된 건 2020년이었다. 코로나19로 집에 틀어박힌 사람들이 인터넷을 뒤지면서 수집품 시장이 2~3배로 커진 가운데, 무관중으로 열린 그해 가을 마스터스에서 카탈로그를 통해서만 판매된 '산타클로스 놈'이 희소성의 정점을 찍었다.

매년 테마를 바꿔 입고 등장하는 이 14인치 세라믹 인형은 지난 10년 사이 '골프계의 에르메스'라 불릴 만큼 존재감을 굳혔다. 2021년 피멘토 치즈 샌드위치를 든 놈, 2022년 백팩을 멘 갤러리 가드 놈, 2024년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든 놈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2016년 놈은 당시 50달러였는데 수량이 적어 현재 리셀 시장에서 200배가 넘는 1만 달러(약 1350만 원)를 호가한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출시된 10종의 풀세트 가치는 4만5000달러(약 6100만 원), 웬만한 중형차 한 대 값이다. 가디언은 "보호 장치 없이 집 앞마당에 놈을 내놓기가 겁날 수준"이라고 썼다.
당연히 리셀러들이 판을 쳤다. 새벽 4시부터 주차장에 진을 친 패트런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숍을 향해 질주했다. 오거스타의 엄격한 규칙상 뛰지는 못하니, 경보 선수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돌진하는 '놈 사냥'의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부 리셀러들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줄을 세웠고, 숍 안에서는 몸싸움도 오갔다. 단종설이 확산된 올해는 그 열기가 더했다.

전세계 기자실 중 가장 점잖다는 오거스타 미디어 센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침 일찍 '전리품'으로 놈 한 박스를 들고 들어와 환한 웃음을 짓는 젊은 기자들이 가끔 보였다.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처럼, 놈의 위상은 점점 커졌고 오거스타는 이 '황금알을 낳는 요정'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베이에서 10~200배 가격으로 거래되는 현실은 오거스타가 지키려는 '비상업적 품격'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최고급 명품 에르메스 매장 오픈과 동시에 난투극이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의 당혹감과 비슷할 것이다.
골프는 고루하며, 마스터스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일종의 성지다. 휴대폰도, 달리기도, 소음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노숙하고 숍 안에서 고성이 오가는 풍경은 오거스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TV 중계권을 헐값에 주는 대신 중계 내용을 통제하는 오거스타에게, 놈이 벌어다 주는 돈은 없어도 그만인 푼돈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오픈런에 나서보려 했다. 취재하다 보니 올해는 원하는 기자들에게 하나씩 살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거스타가 평소 하지 않던 특전을 주는 걸 보면 올해가 마지막이 맞는 것 같다.

올해 가격은 59.50달러, 세금 포함 64.56달러였다. 며칠 새 환율이 좋아져 뿌듯했고, 사는 김에 미니 놈(29.5달러)과 소금·후추통 세트(39달러)까지 샀다. 나란히 세워두니 이 작은 요정 가족이 뿜어내는 묘한 마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올해 모델이 들고 있는 우산은 작별을 준비하는 '보호와 마무리'의 상징이라는 해석이다. 우산 살의 디테일이 실제처럼 작동하도록 정교하게 제작된 점을 들어 "오거스타가 마지막 에디션에 온 공을 들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놈은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됐다. 가디언의 표현처럼, 존재는 짧았으나 경이로울 정도로 유명해진 탓에 클럽의 아우라를 손상시키는 주범이 됐다. 돈보다 권위를 중시하는 오거스타는 기념품 매장이 투기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결단을 내린 모양새다. 놈은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전설로 완성됐다. 그것이 오거스타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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