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신인이 한 자리에, 당신의 눈길을 붙잡은 작품은?

전사랑 2026. 4. 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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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미술제에서 만난 작품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과감하고 신선한 시도들을 만나다

[전사랑 기자]

지난 8일부터 열린 화랑미술제가 폐막을 앞두고 있다. 1976년부터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 온 갤러리들의 주력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지난 10일 이곳을 찾았다. 비교적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작품과 작가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특히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자리"라는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의 말처럼, 이번 미술제는 원로 작가들의 작품과 신진 작가들의 작업이 어우러지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화랑미술제 창립 50주년을 기념한 아카이브 전시와 더불어 신인작가 발굴 프로젝트 'Zoom In'을 통해 신진 작가들 12명을 선발, 특별전을 함께 개최했다. 한국현대미술의 역사를 이끌어온 작품들과 신진 작가들의 신선한 시각들, 갤러리들의 안목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개막 보도자료에 따르면 가격 차이는 있을지라도 '블루칩' 작가부터 중진, 신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작품 판매도 골고루 진행됐다고 한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밀도 높은 감정들을 표현한 작가들의 작품이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시선을 붙잡는 것은 가격도 유명세도 아닌 밀도 있는 감각, 작가가 작품을 붙들고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이 아닐까. 눈길을 끌었던 몇몇 작품들을 소개한다.

내면을 조각하다
 감성빈 작가의 작품. 2026.
ⓒ 전사랑
나무로 조각한 프레임 안 모자상이다. 정신없이 분주한 아트페어에서도 정제되고 밀도 있는 감정에 이끌린다. '슬픔을 조각하는 작가' 감성빈의 작품이다. 짙은 감정의 농도는 '피에타'를 연상시키며, 원숙한 작가의 작업처럼 보이지만 그는 1983년생 작가다.
창원 공단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주경야독 끝에 경남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진학한 이력 또한 인상적이다. 인물의 어두운 내면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그의 아늑한 나무 프레임의 작품이 나의 발길만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나보다. 감성빈 작가의 작품은 이미 '완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감성빈 작가 작품
ⓒ 전사랑
물성의 변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 갤러리 조은의 공간도 독특한 분위기를 끌며 관람객을 맞이했다. 특히 조원재의 도예 작업은 권용래의 스테인리스 작품과 어우러졌다. 단단함의 상징인 스테인리스는 빛과 공간을 만나며 나비의 날개처럼 가벼워져서 공간에 따라 변화하며 유영했다. 물방울 모양의 조원재의 도예 작업은 담백하고 고요한 현대적 달항아리 같았다.
 갤러리 조은. 조원재, 권용래 작품
ⓒ 전사랑
잔잔하게 그린 치명적 귀여움
 서안나, <행복하다개>, 2023.
ⓒ 전사랑
반려동물과의 애정 어린 시간을 담은 서안나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주로 추상 작품을 해오던 작가는 코로나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자 일상에서 '진짜 존재하는 것들'을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작가의 반려견과 반려묘, 그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동화적인 색감과 질감의 작품들은 일상 속 잔잔하게 행복한 순간을 그린다.
'연필'의 가능성
 김은주, <그려보다>, 2025.
ⓒ 전사랑
김은주 작가는 20년간 이어온 드로잉을 통해 연필이라는 단순한 재료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가까이에서 드러나는 압력과 결은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빛에 따라 변화하며 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가 온몸으로 눌러낸 연필의 '결'은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갈 만큼 고혹적이었다.
벼루에 새긴 작은 세계
 이상용 작가의 벼루 연작
ⓒ 전사랑
이상용 작가는 의자, 상여, 조약돌 등 독특한 소재로 작업을 하는 작가다. 위 작품은 버려질 운명에 처한 벼루를 조각한 작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벼루 안에 사람, 달, 해 등 작은 세상이 조각돼 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작가는 비누를 조각하고 소나무로 목상 하며 놀았다고 한다. 이 작품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동심이 담겨있는 듯, 한 편의 시가 그려져 있는 듯했다. 버려진 나무가, 빨랫비누가 작가에 의해 생명을 되찾았듯, 쓸모를 다한 벼루가 새로운 세계를 품고 있다.

캔버스에 쌓은 벽돌
 김강용, REALITY + IMAGE, 2024.
ⓒ 전사랑
'벽돌 작가' 김강용의 작업은 물성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 든다. 그는 40년간 캔버스에 모래를 붙이고 극사실적으로 벽돌을 그린다. 원초적인 재료인 흙과 고운 모래가 만져질 듯하고, 작은 옥색 벽돌이 벽에서 툭 돌이 튀어나온 모양새이다.
 김강용, REALITY + IMAGE, 2026.
ⓒ 전사랑
초기에는 모노톤의 벽돌을 그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과감한 색이 입혀지면서 화면의 공간감을 확장시켰다. 흙을 붙이고 색을 입히고, 긁어내고,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흡사 벽돌을 쌓아 집을 만드는 건축을 하는 과정과 같아 보인다.

신선한 시도로 눈길을 끄는 작품들

화랑미술제는 갤러리 규모에 상관없이 동일한 크기의 부스에서 저마다의 주력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루이즈 부르주아, 제프 쿤스, 줄리안 오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뿐 아니라 한국 미술의 거장들, 그리고 1990년대생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동일하게 선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가격 뿐.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익은 작품들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과감하고 신선한 시도로 눈길을 끄는 작품 앞에 더 멈춰 서게 된다. 동시대 한국 미술에서 꿈틀대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 그리고 꿋꿋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중견, 원로 작가들의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작업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화랑미술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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